멈춰선 삼성 시계, 새해에 다시 돌리자

데스크 칼럼입력 :2016/12/30 17:08    수정: 2016/12/31 00:15

삼성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입니다. 비단 갤럭시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메모리반도체, 평면TV, 플렉시블 OLED 등등 수십여 종의 세계 일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처음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변방 기업에 불과했습니다. 그때까지는 GE-소니-파나소닉-노키아-필립스-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비교해 소비자 서비스와 브랜드 경쟁에서는 많이 밀렸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소비자 범용 제품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글로벌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 정도라고 할까요.

2002년 2분기 삼성전자 매출은 9조9천400억원, 영업이익은 1조8천700억원 정도였습니다. 그때까지 역대 최대 실적이었죠. 언론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이후 10년 만에 무려 60배 이상 수익이 증가하고 세계 1위의 브랜드 가치 증가율의 새 역사를 썼다며 샴페인을 터뜨릴 때였습니다.

올해 초 열린 CES 2016에 마련된 삼성전자 부스 (사진=씨넷)

하지만 정작 삼성은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삼성전자의 모 임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삼성전자의 여러 제품 중 (애니콜을 제외하면)히트작이 그리 많지 않다. 진정한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세계 시장, 아닌 전 세계 가정 곳곳에 범용으로 깔아놓을 수 있는 제품이 나와야 한다. 삼성은 메모리, 휴대폰, TFT-LCD 등 전방위 시너지 사업을 필두로 지금 미국의 신경제를 근간으로 성장해 온 세계 IT 시장의 조정기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그 문을 더욱 활짝 열수 있는 일등 제품과 인재가 필요하다. 이제 시작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50조9천371억원, 영업이익 8조1천4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14년 전에 비해 5배 정도 껑충 성장한 셈입니다.

삼성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기자 입장에서 삼성이 오늘날 구글, 애플 등 세계 유수의 IT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하는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결코 멈춰 서지 않는 '삼성의 시계'라고 생각됩니다. 삼성은 태평성대에도 위기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너무 엄살만 부린다'고 핀잔도 듣습니다. 하지만 절대 호황기에도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돌아가는 삼성의 시계가 바로 오늘날 삼성의 경쟁력입니다.

그런 삼성의 시계가 멈춰 섰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정치 풍파에 휘말린 탓입니다. 박영수 특수검사팀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이 어떤 반대급부를 바라고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승마훈련을 지원했는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모녀가 삼성이 지원한 돈으로 강아지 패드까지 샀다는 각종 의혹보도까지 나오자 그동안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삼성의 위신과 직원들의 사기는 한순간 나락으로 추락한 느낌입니다. 삼성은 새해 설계나 전략을 짜야 할 사장단 및 임원인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하루아침에 전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다니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서 "세세하게 챙겨보지 못한 점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고 했겠습니까. 삼성이 오늘날 다른 기업들보다 더 큰 비난에 직면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이러한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추문에 연루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룹의 경영승계와 관련해 편법과 특혜 시비에 따른 국민적 공분도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유독 삼성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삼성이 이번 일을 계기로 낡은 경영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혁신하고 새로 태어나야 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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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이건희-이재용 오너 일가의 사적 재산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삼성에는 수십만명의 일자리와 수만명의 주주,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 등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경영승계 과정에 불법이 저질러졌다면 누구나 법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함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특검이 삼성에 대해 보여주기 식 반복 수사와 과잉 수사로 이어져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관계가 명확치 않는 의혹 제기는 해외에서 전체 매출의 9할 이상을 버는 글로벌 기업 삼성에게는 회복 불능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 병신년 한해도 이제 서서히 저물고 있습니다. 2017년 정유년 새해엔 삼성의 경영 시계가 다시 쉼 없이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