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잡스 함께 부활시킨 '넥스트 인수'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데스크 칼럼입력 :2016/12/21 18:27    수정: 2016/12/22 14:35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역사는 참 오묘합니다. 때론 전혀 엉뚱한 사건이 역사적 격변의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914년 6월28일 사라예보의 한 골목길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이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치 나비효과 같은 사건이었지요.

시작이 좀 거창했나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12월 20일. 미국 주요 언론들은 흥미로운 소식을 하나 전해줍니다.

애플이 넥스트 소프트웨어(NeXT Software)를 인수했다는 소식입니다. 넥스트는 지금은 잊혀진 회사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적어도 애플 입장에선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과 비슷한 나비 효과를 불러 옵니다. 그 얘길 한 번 해 볼까요?

청년 스티브 잡스. (사진=씨넷)

넥스트 인수가 성사되던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길 아밀리오입니다. 잡스를 쫓아냈던 존 스컬리가 실적부진으로 해고된 뒤 영입된 인물입니다.

1996년 당시 애플엔 잡스가 없었습니다. 존 스컬리에게 쫓겨났던 잡스는 애플에 인수된 넥스트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애플이 인수한 넥스트는 스티브 잡스가 1985년 설립한 기업입니다. 잡스가 맥과 IBM PC에 맞설 컴퓨터를 만들겠단 야심을 갖고 만든 회사입니다.

■ 넥스트와 함께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

요즘 우리에게 잡스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잡스는 심심찮게 ‘호수비’를 하지만 실책도 곧잘 범하는 야구 선수 비슷했습니다. 넥스트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 결합을 꽤했던 넥스트의 전략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잡스는 1993년 넥스트 하드웨어 사업을 캐논에 매각합니다.

1996년 애플에 매각된 것은 남은 소프트웨어 사업 부문이었습니다. 미국 경제 전문잡피 포천에 따르면 애플은 넥스트 매입 당시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 환경 개발에 강점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넥스트의 기술은 이후 애플 맥OS의 기초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얘기만으로 ‘넥스트 인수’를 거대한 변화의 시초라고 평가하는 건 다소 성급합니다.

1997년 아이맥을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 (사진=씨넷)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번들 상품(?)’이 하나 더 딸려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잡스는 당시 애플 CEO였던 길 아밀리오를 상관으로 모시게 됩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7년 9월. 애플은 깜짝 발표를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임시 CEO를 맡기로 했다는 발표였습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잡스는 CEO가 되자마자 뉴턴 PDA를 비롯한 여러 제품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이 때부터 애플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택과 집중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잡스가 합류하던 1997년 무렵 애플은 벼랑 끝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자신들이 인수한 기업 대표에게 SOS를 쳤을까요?

■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대단했습니다. 아이맥 같은 제품으로 애플의 명성을 서서히 되찾은 잡스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혁신 솜씨를 보여줍니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i-어쩌구’ 하는 제품들을 연이어 쏟아내면서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1996년 (크게 쓸모 없었던) 넥스트를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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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반짝 성공했다가 기억 속으로 사라진 ‘불운한 경영자’로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요? 애플 역시 PC 초기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했다가 조용히 뒤안길로 밀려난 많은 기업들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20년 전 오늘 성사된 인수합병(M&A)은 IT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놨습니다. 세계 역사를 뒤흔든 사라예보의 총성 두 발 처럼 말입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