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은 불공정했나

삼성그룹 지분 22조 보유 국민연금, 장기 투자 관점서 결정

디지털경제입력 :2016/12/05 07:54    수정: 2016/12/05 12:17

국민연금이 지난해 여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은 공정치 못한 일이었을까. 합병 찬성을 국민연금의 일방적인 '삼성 편들기'라는 정치적 의혹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박근혜 정부-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정국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특혜 시비와 외압 의혹까지 일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냉철한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오는 6일 열리는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와 특검 수사에서 제기될 소모적인 논쟁과 정치권의 왜곡된 반(反)기업 정서 확산을 차단하고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발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번은 되짚어 볼 일이다.

현재 쟁점은 ▲국민연금이 왜 두 회사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는지, 또 ▲국민연금이 통합 삼성물산 주가하락으로 얼마나 평가 손실을 입었는지, ▲만약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무산됐다면 국민연금 등 주주들에게 이익이 됐는지 등으로 모아진다.

삼성물산은 2015년 7월 17일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국민연금 합병 찬성, 불공정했나?

국민연금은 작년 7월 10일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삼상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 결정을 내렸다. 앞서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이사회를 열고 합병 결의를 한 지 약 한 달 보름 만이다. 이후 나흘 뒤인 14일 서울 '더 케이' 호텔에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를 연다.

그럼 국민연금이 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했을까. 의결권 자문기구인 아이에스에스(ISS)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의 반대 권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론에 공개된 당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참석 위원들은 합병 비율(1대0.35)과 관련 '삼성물산 기업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들은 두 회사의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엔 합병비율만으로 찬반을 결정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회사의 미래 가치와 합병 시너지 등 우려가 상쇄되는 부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한다. 국민연금은 당시 물산과 모직 주식을 모두 갖고 있었다.

당시 한정수 주식운영 실장은 회의에서 "ISS도 물산 입장에서 반대, 모직 입장에서 찬성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인데 마치 합병 반대인 것처럼 보여 혼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채준규 리서치팀장은 "우리가 삼성물산(지분)만을 보유한 경우 합병비율은 반대 사유에 해당한다”면서도 “제일모직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손실은 모직 수익으로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합병 주총에 앞서 주주명부가 확정된 작년 6월11일 기준 제일모직 4.8%(주식 653만5천240주), 물산 11.21%(1천751만6천490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평가금액으로는 각각 1조1천763억원, 1조2천209억원 규모다. 리서치팀이 내부적으로 산정한 합병비율은 1대0.46. 삼성 측의 1대0.35와는 합병 이후 지분율에서 0.44%포인트가 발생한다.

당시 합병비율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법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사회 결의 이전 일정 기간(한달, 일주일, 하루 전)의 주가와 거래량을 반영해 가중평균 계산한 기준가격에 따라 정해졌다. 따라서 이 비율(1대0.35)은 국민연금은 물론 삼성 등 어느 이해 당사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국민연금이 기업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1대 0.46'으로 비율을 산정한 것은 맞지만 이는 지난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주가 기준가격의 10% 범위 내에서 할인 또는 할증이 가능한 규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7월29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투자위원회가 7월 10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찬성 의견을 도출하기까지 이 같은 쟁점에 대해 3시간이 넘는 토론을 진행하고 결론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7월14일 열린 의결권행사전문의원 회의에서 ‘찬성 결정’ 경과보고와 함께 기금운용본부가 두 회사의 합병 찬반 여부를 왜 전문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직접 결정한 설명도 오고 간 것으로 나와 있다.

■국민연금 손실 어떻게 봐야 하나

국민연금이 합병 이후 통합 삼성물산의 주가하락으로 투자손실을 입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도 논쟁거리다.

올해 7월말 현재 국민연금 운용기금은 540조7천억원에 달한다. 규모면에서 일본, 노르웨이 연기금에 이어 세계 3번째다. 국민연금이 5% 이상 대량 지분을 보유한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는 9월 말 기준으로 62곳으로 전체 10대 그룹 상장사(89곳)의 69.6%다. 국민연금이 10대 대기업그룹 상장사 10곳 중 7곳, 아니 우리 국가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 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가치는 국내 대기업의 주가, 국가 경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단기간의 차익 실현 보다는 기금운영 원칙인 공공성에 입각해 장기적인 큰 그림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통합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 2일 현재 12만5천500원을 기록 중이다. 작년 주총 합병 가액 15만9천294원 대비 3만3천794원(21.2%) 하락했다. 시가총액 역시 23조8천61억원으로 합병 전과 비교해 보면(30조원 규모) 약 6조원 이상이 빠졌다. 하지만 이는 현재를 기준으로 산정했을 때 나온 계산이다. 합병 후 통합 삼성물산은 상당기간 종가 기준으로 합병 주가를 넘어서기도 했다. 최근 50일거래 중 17일간은 기준가격을 초과하기도 했다. 가령 주총 합병가액과 10월25일 당시 물산 종가 16만9천원을 기준으로 삼으면 국민연금은 1천229억원의 평가이익을 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민연금 측은 "합병 발표전일인 작년 5월 22일부터 최근 2016년 11월 21일까지 10.4%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건설업종, 유통업종 지수 대비 수익률로는 각각 14.4%포인트, 9.4%포인트 상회하는 등 업종 대비 양호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합병으로 인해 바이오 사업을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주도적은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도 간과됐다는 지적이다. 옛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 전 바이오로직스 지분을 각각 46.3%, 4.9%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은 43.44%이며 평가액은 4조9천억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7월 17일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 모습. [사진=삼성물산]

■홍완선 전 본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왜 만났나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이 합병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왜 비밀리에 만났냐'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뿐만 아니라 과거 SK, 만도 등 의결권 행사 최종 결정 전에 기업 측과 면담한 전례가 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은 다른 주주인 네덜란드 연금 APG 측과도 면담을 했다.

국민연금 측은 "투자 기업 주요 경영진과 면담하는 것은 일반적 검토 과정의 일환”이라며 “당시 홍 전 본부장이 리서치센터장 책임투자팀장 등과 함께한 공식적인 업무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면담 자리에서는 합병 추진 배경과 향후 비전, 합병 시너지 창출 계획, 합병비율 변경 여지와 주주 환원정책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연금, 삼성그룹 지분 22조원 보유...장기투자 관점에서 찬성 결정

만약 합병이 무산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소액주주 입장에서 국민연금이 대기업 일가의 경영 승계를 막았다고 칭찬해 줬을까. 아니면 해외 헤지펀드가 국내외 주주들의 이익보호를 위해 애썼다고 좋아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삼성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장기적인 사업구조 개편 시너지를 막았다고 비판의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삼성물산은 작년 7월 17일 오전 9시30분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이날 주총에 출석한 주주 수는 대리 출석을 포함해 총 553명(소율 주식수 1억3천54만8천184주)으로 의결권이 있는 주식 총수의 83.57%였다. 삼성물산은 이중 69.53%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었다. 합병안 통과를 위한 최소 찬성비율은 55.17%였다.

당시 개인 주주 구성을 보면 개인주주는 22%로 국민연금 지분(11.61%)의 두 배였다. 개인 주주들 중 55%가 출석해 약 84%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 시킨 실질적인 주역은 국민연금이라기 보다는 바로 개인주주였던 셈이다.

여기엔 당시 합병에 반대해 법원에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로부터 대기업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당시 엘리엇은 이사진 교체를 예고한 바 있다. 다음 수순으로는 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특히, 반도체와 스마트폰 제조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삼성전자가 매년 선행 기술과 차기작 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헤지펀드로부터 국부 유출을 막자는 여론이 주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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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계와 시장은 헤지펀드의 전례로 반도체 투자 반대, 휴대폰 제조기능의 분사 외주화, 가전사업 분사 A/S 조직 외주화, 조세회피지역으로 본사이전 등이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점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삼성그룹 지분 22조원(전자 지분 15조원)을 들고 있었던 국민연금이 단순히 물산과 모직의 합병 손실을 따지기 보다는 그룹 전체의 영향을 따져 봤을 것"이라며 "아마도 국민연금은 이차방정식보다 전체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장기 투자 등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난해한 입장에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