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왜 트럼프를 싫어할까

이민정책-반중국 정서 등 우려…법인세 인하는?

인터넷입력 :2016/11/10 10:50    수정: 2016/11/14 09:2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실리콘밸리는 왜 트럼프를 싫어할까?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는 속된 말로 ‘멘붕 상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주요 경영자들은 선거 기간 내내 ‘반트럼프’ 목소리를 냈다. 지난 7월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145명이 도널드 트럼프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트럼프에게 125만달러 후원금을 냈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그만큼 실리콘밸리엔 반 트럼프 정서가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사진=씨넷)

당연히 “왜”란 질문이 필요하다. 내로라하는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막말’과 ‘인종차별주의’ 때문에 트럼프를 배척하진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그레고리 오트리 교수는 테크크런치와 인터뷰에서 “하이테크 부문을 포함해 제조업 쪽은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은 힘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 고학력 이민자와 H-1B 비자

트럼프의 핵심 공약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이민자 제한’ 같은 국수주의적 공약을 내놨다. 멕시코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만들겠다는 말까지 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을 ‘미스터 브렉시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민자 문제 때문에 유럽연합(EU)을 탈퇴했던 영국을 빗댄 표현이다.

이런 정책은 실리콘밸리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력 부족으로 고민에 빠진 실리콘밸리는 고학력 이민자를 갈구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마리사 메이어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대표 경영자들은 지난 2013년 FWD.US란 단체를 만들었다. 이민법 개혁을 통해 해외 우수 인력들을 좀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해외 고급 인력 채용에 관심이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H-1B 비자 발급 조건을 완화해주길 바라고 있다. 특히 STEM으로 통하는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공인된 연구 기관에 취업할 경우 H-1B 비자 발급 문호를 대폭 열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런 요구에 공감했던 힐러리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미국인에게 좀 더 많은 일자리를 주기 위해선 취업 비자 발급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연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법 개혁에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 아예 미국의 문호를 닫아버릴까? 이에 대해선 엇갈린 전망도 있다.

에디슨 투자 리서치의 댄 리스데일은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H-1B 비자 개혁엔 반대 입장을 보이긴 했지만 고급인력 이민은 지지한단 입장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LA타임스는 “H-1B 비자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곧 (트럼프가 말하는) 고급인력”이라고 꼬집었다.

2. 세계화시대에 대한 거부감

트럼프는 유세 기간 내내 ‘미국’을 강조했다. 트럼프에게 표를 준 많은 유권자들 역시 ‘세계화시대의 피해자’란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EU 체제 하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영국과 비슷한 정서였다.

특히 트럼프가 거세게 비판한 건 애플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중국에서 생산해서 미국에 들여오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물론 트럼프가 애플을 비롯한 IT 기업들의 해외 공장을 직접 제재할 방법은 없다. 다만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으로 들여올 경우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는 있다.

그 뿐 아니다. 트럼프가 유세 기간 중 밝힌 기조대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하게 내세울 경우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은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IT 기업들은 이미 유럽 등에서 강한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될 경우 더 큰 후폭풍에 시달리 수도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해야 하는 IT 기업들에겐 재앙같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3. 사이버 보안과 중국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강한 거부감 역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다 ‘프라이버시’보다는 ‘사이버 보안’쪽에 좀 더 무게를 두는 성향 역시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겐 탐탁치 않은 부분이다.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는 트럼프 경제 정책의 핵심 타깃 중 하나는 중국이라고 지적했다. 불공정 무역을 일삼는 중국을 제재하고 그 곳에 터를 두고 있는 제조업을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정책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이런 정책은 ‘글로벌 공급망’을 갖고 있는 애플 같은 IT 기업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다. 중국은 부품 공급망일 뿐 아니라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중국 이슈는 사이버 보안 문제와도 연결된다. 사이버 공격 진원지 중 상당 부분이 중국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미 올초 FBI와 애플의 ‘잠금해제’ 공방 때도 “정부가 암호화된 기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에 친화적이었다. 자신의 지지 기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다르다.

그는 인터넷 기업들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친인터넷, 반통신’ 성향이 강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거번넌스 역시 정부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관할권을 민간 다자기구에 넘기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4. “법인세 낮춰줄테니 미국으로 돌아와라”

물론 트럼프가 실리콘밸리에 채찍만 휘두르는 건 아니다. 법인세 인하 같은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 될 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해외에 있는 미국 기업 자산은 12조2천억 달러에 이른다. 대부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IT 기업들의 자산들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부분이 굉장히 못 마땅하다. 그래서 채찍과 함께 당근도 제시했다. 본국으로 송환할 경우 법인세를 대폭 낮춰주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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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보낼 경우 법인세 10%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재는 35%를 적용받고 있다. 엄청난 감세 혜택이 아닐 수 없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곧바로 이 부분에 손을 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EU 등에서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애플 같은 기업들에겐 달콤한 제안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