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이냐 경쟁이냐, 골드만삭스의 투트랙 전략

인터넷입력 :2016/10/17 17:24

손경호 기자

"우리는 테크놀로지 회사"라고 외쳤던 골드만삭스에게 핀테크 기업은 파트너일까, 새로운 경쟁자일까?

글로벌 금융사를 상징하는 골드만의 최근 행보를 보면 핀테크 기업과 협업, 경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게리 콘 골드만삭스 그룹 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새로운 상업적 기회를 얻기 위해 기술에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골드만은 헤지펀드나 자산관리사들이 손쉽게 자사 DB와 연동해 투자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사이먼(SIMON)'이라는 모바일앱을 서비스한다.

올해 초에는 GS뱅크라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켰다. 이 은행은 최소 1달러를 입금할 수 있는 온라인 계좌를 제공하면서 연 1.05% 금리를 제공한다.

가장 최근에는 온라인 대출 서비스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개인들이 온라인에서 최대 3만달러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마르쿠스'라는 플랫폼을 앞세워 기존 렌딩클럽과 같은 P2P 대출 스타트업들과 경쟁에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만 놓고 보면 골드만에게 핀테크 기업은 견제하고, 경쟁해야할 대상이다.

그러나 이달 초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연례 금융기술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맡았던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핀테크 글로벌 총괄 제프 기도의 말은 조금 다르다. 컨퍼런스에서 그는 "금융기술의 다음 단계는 대형은행과 핀테크 스타트업들 간 파트너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핀테크가 이끌어 온 변화를 크게 3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먼저 첫번째 단계에서는 규제 변화에 더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소비자의 선호도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포브스,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그는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규칙이 은행들이 수행하는 일부 비즈니스의 수익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그 간극을 기술을 사용한 대출과 기타 서비스들이 메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무선네트워크 사용률 증가 등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금융시장에 더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핀테크 기업이 경쟁자로 남을지, 파트너가 될지 골드만삭스의 앞으로 행보가 주목된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나 IT기기를 다루는데 친숙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전통금융사에 대한 불신이 큰 일명 '밀레니얼 세대'가 기존 방식 대신 실시간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변화를 앞당긴다. 모바일 금융서비스가 전통 금융 서비스와 같은 복잡성이나 느린 거래를 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핀테크의 두번째 단계에 있다고 기도는 설명했다. 전통 은행들이 그들의 브랜드와 인프라를 활용해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말이다.

골드만이 자체 개발한 모바일앱을 서비스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키는가 하면 최근 P2P대출 스타트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유사 서비스를 내놓은 것을 보면 그렇다.

이밖에도 그는 젤러(Zelle)라는 스타트업을 예로 들었다. 이 스타트업은 여러 은행들이 합작투자해 설립한 회사로 이르면 이달 중으로 기존 벤모와 같은 P2P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번째 단계에 대해 그는 "전통 금융사들과 핀테크 기업들 간 파트너십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갈수록 투자금을 모으기 힘들어지는 환경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홀로서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반대편에 선 전통 금융사들이 그들만의 새로운 핀테크 기술을 확보해 서비스하는 것도 많은 비용이 든다. 때문에 "(핀테크 스타트업과 전통 금융사 간에) 양방향 대화가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골드만은 최근까지 핀테크 기업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경쟁자로 보고 이에 대응할 서비스를 개발해 도입하는데 집중해왔다.

기도의 말처럼 앞으로 파트너십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됐을 때 골드만이 핀테크 기업을 파트너로 볼 지, 경쟁자로 볼 지는 아직까지 그들 스스로도 명확한 그림을 그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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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국내서도 핀테크 기업과 전통 금융사들 간 경쟁과 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추세다. P2P대출이 은행권 중금리 대출과 경쟁하는 한편 은행이 가진 인프라와 라이선스를 등에 업고 서비스하려는 P2P대출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분야에서도 핀테크 스타트업들과 증권사가 경쟁하는 동시에 협업하는 모델이 나왔다. 이전까지 전통 금융사의 고유영역이었던 자산관리분야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의 등장으로 시장이 경쟁과 협업 구도로 재편되는 중이다.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사가 가진 정보들을 API 형태로 보다 손쉽게 끌어다 쓸 수 있게 한 금융권 공동 오픈플랫폼, NH핀테크 오픈플랫폼 등은 대표적인 협업 모델로 꼽힌다.

핀테크로 인해 금융 소비자가 바뀌고, 스타트업과 전통 은행 간 경쟁을 넘어 협업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기, 국내 금융사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