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혁명시대,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라

[4차산업혁명, 규제 개혁부터-①]

방송/통신입력 :2016/09/04 14:06

4차산업혁명의 거세 파도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무서운 태풍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회를 비롯해 여러 영역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이런 행보들은 미래 먹거리 발굴 측면에서 소중하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선 전통산업시대에 초점이 맞춰진 각종 규제를 정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디넷코리아는 '4차산업혁명, 규제 개혁부터' 시리즈를 통해 분야별 규제 개혁 방안을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SK텔레콤은 지난 달 31일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 서비스 ‘누구’를 공개했다. 누구는 고도화된 음성인식 기술과 인공지능 엔진을 결합한 서비스다. 이용자가 원하는 바를 파악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비롯해 스마트홈 연동, 음악 추천과 자동 재생, 날씨/일정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누구는 완성형 서비스가 아니다. 이용자들의 음성패턴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해 음성인식기술을 완성시켜 나가는 형태다. 이세돌과 바둑 대결을 펼쳤던 알파고에 사용된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이다.

그런 만큼 이 서비스가 본격화될 경우 곧바로 개인정보보호란 장벽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서비스가 커 나갈 경우 피하기 힘든 장벽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많다.

이에 대해, 이형희 SK텔레콤 사업총괄 부사장은 “자연어 처리 엔진을 성장시키기 위해 향후 수집되는 이용자의 발화 데이터는 개인정보와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보안 이슈가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하지만 클라우드와 관련되면 일단 보안 이슈를 제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효율 극대화→융합통한 새 가치 창출로 패러다임 변화

'누구'는 새로운 IT기술이 기존 패러다임과 부닥칠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지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이 산업의 각 영역에서 속속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예비인가 이후 은행법(은산분리) 규제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태다. 현행 은행법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원칙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가 아닌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특히 의결권은 4%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인터넷은행은 낮은 이율과 고금리 대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들에겐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산업으로 꼽힌다. 그 뿐 아니다. 인터넷은행은 금융혁신까지 꾀할 수 있는 '일석이조' 카드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 역시 은산분리란 전통산업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한 발짝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석근 서강대 교수는 “인터넷은행은 미국, 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 시작됐고 우리는 5~6년 뒤졌는데 은행법 규제로 또 1~2년이 지나가고 있다”며 “이미 규제는 완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금융업이 혁신하고 재조합하기 위해서는 핀테크 같은 기술 혁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견한 세계경제포럼이 남녀간 고용 격차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WEF)

이런 문제의식의 밑바탕엔 4차산업혁명이 자리잡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4차산업혁명 태풍이 이젠 우리 일상산업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구현한 최첨단 서비스 뿐만이 아니다. 넓게 보면 인터넷은행을 비롯한 각종 융합형 서비스 역시 4차산업혁명의 영향권 내에서 태동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기존 틀에 얽매인 규제로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가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생산성의 효율만을 꾀했던 기존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3차산업혁명이 기존 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4차산업혁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을 꾀하는 것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노동의 본질이 바뀌고 있는 만큼 규제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원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수석은 “4차 산업혁명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ICT와 과학기술에 창의성, 감성이 결합해 신산업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ICT 융합형 신시장, 위기이자 기회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자동차 산업을 자랑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한국 자동차산업에도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자율자동차를 앞세운 테슬라, 구글 등이 시장의 기본 문법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 변화의 밑바탕엔 ICT 기술 발전과 안전-편의에 대한 소비자 요구 증대란 두 가지 변수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전환이 필연적인 추세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자율자동차시장은 2025년 475만대, 2035년 9천544만대로 연평균 88%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동차-ICT-인프라가 융합된 신시장 창출도 기대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자율주행 시스템 시장은 2020년 189억달러에서 2025년 626억달러, 2035년에는 1천152억원으로 연평균 성장률이 28.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 수준의 자동차, ICT 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추세에 따르지 못한다면 세계 5위 자동차 산업 위상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해부터 일본 정부와 토요타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혁신창조 프로그램(SIP)’은 주목할 만하다. 총 23억2천만엔 규모로 자동주행시스템 개발을 위해 추진되는 이 사업은 토요타가 PM이 돼 경찰청, 총무성, 경제산업성, 국토교통성 등 민관이 협력해 미래 성장동력산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즉, 4차 산업혁명에서 요구되는 융합형 신산업 육성에는 정부부처 간 칸막이 해소뿐만 아니라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규제를 철폐하고 민관의 역할이 바뀌거나 협업하는 규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송희경 의원은 “과거에는 강점을 지녔으나 경쟁력이 약되고 있는 전통 산업은 ICT와 융합해 혁신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며 “민간의 자발적 혁신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신속히 법제도를 개선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해서는 안 될 일만 규제로 명시해야"

4차 산업혁명에서 규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4차산업혁명을 통해 창출해야 하는 산업이 ICT 융합형 신시장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제도와 규제를 적용해서는 이런 미래시장을 만들어낼 수 없다.

네거티브 규제체제로 전환해야 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네거티브 규제란 가급적 많은 것을 허용하되 해서는 안 되는 일만 명문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정부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재유 미래부 제2차관은 “4차 산업혁명이 잘 되기 위해서는 규제 개선이 필요한데 그 방식은 네거티브 규제가 맞다”며 “새롭게 창출되는 산업과 사업에 대해서는 꼭 해서는 안 되는 일만 규제로 명시하고 나머지는 분명한 폐해가 드러날 때까지 막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8월초 공개한 국가전략프로젝트 추진계획에서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부처 칸막이를 없애는 협업모델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정부 부처별 업무영역의 구분 없이 하나의 사업으로 공동 추진하고 단일 사업단을 운영해 예산 집행에 있어서도 통일성을 꾀했다. 이를 위해 부처를 총괄하는 단일 프로젝트 매니저(PM) 제도를 도입했다. PM에게 프로젝트별 과제 기획과 선정, 평가, 예산 배분, 성과 관리 등 연구개발(R&D) 전주기에 전권을 부여했다.

즉, 국가전략프로젝트는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진흥정책으로 추진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 배경은 간단하다. 향후 미래 성장산업의 핵심 키워드가 ‘융합’이기 때문이다. 기존 전통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돼야 만 성장을 끌어낼 수 있는 신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부처 칸막이가 신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7월 18일 지디넷코리아 주최로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서 개최된 '한국형 제4차 산업혁명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좌담회 장면.

물론 정부가 인식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규제 개혁이 제대로 된 문제의식과 협업 모델만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규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존 법제도를 완화하거나 걷어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촉매가 된 인공지능(AI)과 인터넷전문은행의 최근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금융혁신과 관련해선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자인 마크 앤드리슨이 잘 지적했다. 마크 앤드리슨은 인터넷 혁명의 불씨가 된 넷스케이프 창업자 출신으로 지금은 앤드리슨&호로위츠란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털(VC)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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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리슨은 한 컬럼에서 “우리는 시스템을 재구축해야 한다. 금융거래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정보에 불과하단 말이다. 겨우 온라인 결제를 처리하기 위해 맨하탄 중심 빌딩에 10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메인 프레임 컴퓨터로 가득한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두는 것은 시대착오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ICT산업 전반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 장벽을 우리가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금지’보다는 ‘장려’에 초점을 맞추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