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뤄진 정부 vs 구글 9년 '지도전쟁'

정부, 추가심의 키로…60일뒤 최종결정

컴퓨팅입력 :2016/08/24 18:15    수정: 2016/08/24 18:30

9년에 걸친 지도공방의 결말이 60일 뒤로 미뤄졌다. 국토부를 비롯해 미래부, 외교부 등 여러 정부기관들은 24일 머리를 맞댄 끝에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을 허용할 지 여부를 추가 심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구글 지도 신청을 심의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국토부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 뿐 아니라 관련법에 따라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날 회의에는 미래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자부, 산업부, 국정원 등 담당자가 함께 참여했다.

구글 지도(250)

정부는 이날 오후 3시부터 마라톤 회의를 진행한 끝에 오는 11월23일까지 추가 심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글 지도 반출 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게 됐다.

■ 2007년 1:5,000 축적지도 반출 첫 신청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는 지난 2007년 시작됐다. 이후 최근까지 9년간 관련 노력이 물밑에서 이어졌다. 그간 정부의 대응은 수동적이었다.

하지만 올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구글은 상반기말 재차 지도 반출을 신청하고, 이달초 한국의 정부부처, 기업, 개발자, 이용자를 겨냥해 자신들의 지도 반출이 정당하고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알리고 나섰다.

구글 지도 공방을 이해하기 위해선 20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04년 10월 구글은 설립된 지 3년된 웹기반 위성항공지도 소프트웨어(SW) 전문 스타트업 '키홀(Keyhole)'을 3천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키홀의 기술이 지금의 '구글어스'와 구글지도 기반으로 쓰이게 됐다.

구글지도는 2005년 2월 시작됐다. 한국에서 제한되는 '길찾기' 기능은 그 해 4월 추가됐다. 이어 개발자들이 다른 지도 서비스나 웹사이트에 구글지도를 통합할 수 있는 '구글맵스 API'가 6월 출시됐다. 실시간 교통정보 기능은 2007년 2월, 스트리트뷰 기능은 그해 5월 첫선을 보였다.구글이 한국의 정부부처에 지도반출을 최초 신청한 시점도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글은 당시 '건설교통부'에 1:5,000 축척의 전국 규모 지도반출을 신청했고,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기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그해 11월 반출 허용 여부를 검토했다. 물론 허용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8년 11월, 구글은 한국 사용자 대상 지도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출이 허용되지 않아 국내 사업자의 데이터를 빌렸다. 글로벌 사이트(google.com)가 아니라 한국어 사이트(google.co.kr)를 분리한 형태가 이 때 굳어졌다.

본사와 한국판 구글 지도의 괴리는 국내 구글지도 서비스의 이력에 비례해 깊어졌다. 2007년 11월 시작된 구글지도 한국판은 국내의 상세 도로지도, 지명, 주소 검색 기능을 지원했다. 글로벌 서비스에는 2009년 10월 3D보기, 음성 안내, 실시간 교통정보를 포함한 GPS내비게이션이 추가됐고 2010년 3월에는 자전거용 경로안내 기능과 자전거 도로 데이터가 적용됐으며 2011년 11월엔 공항과 쇼핑몰같은 건물 내부 위치 및 길찾기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구글이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 중이라 밝힌 시기도 그 즈음(2010년 10월)이다.

구글이 서비스에 추가한 신기능 대부분이 한국에서 먹통이었다.

2014년 공간정보법 시행령 바뀌면서 적극 요구

구글은 다시 지도 반출을 시도했다. 2013년 상반기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시한부 자문을 의뢰하는 것으로 해당 움직임이 포착됐는데, 이는 그해 연말께 형성된 정부의 지도반출 부분허용 방침과도 맞물렸다. 정부는 2013년 12월 1:25,000 축척의 영문판 수치지형도를 국외반출용으로 만들었고, 이듬해인 2014년 1월 관련법 개정으로 그 반출이 가능해졌다고 발표했다. 구글은 해당 지도를 테스트했지만, 여전히 더 정밀한 1:5,000 축척 지도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닌텐도의 AR게임 포켓몬고. 포켓몬 고가 인기를 끌면서 구글 지도 반출 신청에 대한 관심이 더 뜨거워졌다.

구글이 원하는 방향의 변화가 한차례 더 있었다. 2014년 6월 측량법(현 공간정보법) 시행령이 개정된 것이다. 그해 12월 발효된 측량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도반출의 허용을 국토부 장관의 승인이 아니라 '국토지리정보원'이 관계부처 위원들을 소집하는 '지도반출협의체'에서 결정케 했다. 협의체엔 미래부,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행자부, 산업부, 국정원, 7곳의 담당자가 참석한다. 국방, 안보, 외교, 산업, 행정 등 관심사가 다른 여러 부처의 의견이 조율되면, 단일 부처 검토로 끝난 기존 반출 신청보다 구글에 유리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법이 바뀌자 구글도 태도를 바꿨다. 구글은 미래부가 올해 3월 진행한 제6차 ICT정책해우소에 참석, 한국지도반출에 관한 의견을 전했다. 정부와 구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한국에서 구글이 그 내용을 공식화한 최초 사례였다. 구글은 이후 지도 프로덕트매니저 권범준 씨의 입을 빌어, 자사 입장을 국내외 주요 언론을 통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초 국토부에 지도 반출을 재차 신청했으며, 이달초 공식 블로그 포스팅과 국회 토론회 참석 등을 통해 대외 여론 형성에도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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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의도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지난 7월부터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나이앤틱랩스의 AR게임 '포케몬 고(Pokemon GO)' 출시는 한때 구글 측에 얼마간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포케몬 고는 앞서 출시된 AR게임 '인그레스'의 이용자들이 구축한 데이터, 구글지도 API, 닌텐도의 유명 콘텐츠 캐릭터 IP를 결합한 결과물이다. 개발업체가 초기 서비스 지역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한국 출시가 안 된 원인으로 '정부의 한국지도 반출 불허 방침'이 지목됐는데, 이는 사실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구글 입장에서 포케몬 고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정부의 지도반출협의체 소집 이후 구글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여론은 오히려 악화한 측면이 있다. 우선 구글 본사 지도 담당자의 국내 경쟁 업체를 겨냥한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또 구글의 지도반출 시도 배경을 둘러싼 여러 분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구글이 여타 다국적 IT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대비 납세 의지가 약하다는 이른바 '조세회피' 성향이 문제시됐다. 구글은 이 사안을 지도 반출 이슈와 떼어 놓으려 애썼지만 성공적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