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정부가 앞장서지 마라"

가트너 전문가 "정부는 중재자 역할 수행해야"

컴퓨팅입력 :2016/08/23 18:14    수정: 2016/08/23 18:16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에 정부가 앞장서지 마라."

가트너 본사의 스마트시티 전문가로 통하는 리서치 총괄 임원이 한국 공공부문에 전한 메시지다. 국내에 제대로 된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려면,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 정책입안자의 접근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에서 지역 행정과 공공사업에 IT를 도입, 활용하는 익숙한 접근 방식은 전형적인 하향식(top-down) 일처리로 요약할 수 있다. 주무부처의 거창한 정책목표와 예산을 바탕으로 소속 부서 공무원의 사업계획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아이디어를 참조해 뼈대를 세운 대규모 사업을 발주하면, 참여 기업들이 살을 붙이고 그 결과물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쪽으로 흐른다. 형식상 외부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포함할 때도 있지만, 결국 주도권은 항상 '관'에 있다. 한국에서 스마트시티의 전신격인 '유비쿼터스 시티' 사업이 그런 사례였다.

베티나 트라츠-리안,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

웬만하면 그러지 말라는 게, 베티나 트라츠-리안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의 조언이다. 그는 가트너의 글로벌 스마트시티 자문역으로 최근 방한해 성공적인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한 지침을 제시했다. 그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하향식 프로젝트에 길들여진 한국 공공조직 행정 스타일로는 제대로 된 스마트시티를 실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당부로 들린다.

물론 정부가 손을 놓고 민간 참여자들이 다 알아서 하게 놔 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꼭 나서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은 민간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을 쏟으란 얘기다. 스마트시티에 필요한 기술과 투자는 민간 참여자들이 나서서 할 수 있는데, 이에 필요한 '데이터'가 원활하게 제공되고 유통되는 부문에는 공공 부문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스마트시티의 조건 "공공-민간 협력, 실시간 맥락정보 분석"

가트너가 정의하는 스마트시티는 공공과 민간 부문이 지역내 고유 정보와 운영기술 시스템간의 실시간 맥락(contextual)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과를 얻기 위해 협력하는 도시화 구역을 가리킨다. 이 개념을 어떤 대상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을 스마트빌딩, 스마트공공서비스, 스마트교육, 스마트유틸리티, 스마트헬스케어, 스마트교통 등으로 부를 수 있다. 핵심은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다.

베티나 트라츠-리안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의 발표 자료 일부.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한 공공과 민간 부문의 협력 시나리오에서 각 부문이 보유했거나 생성해낼 수 있는 데이터의 유형을 예시하고 있다. [자료=가트너]

스마트시티 구축에 협력하는 공공과 민간 참여자들이 운영기술의 정보와 통찰력을 공유하고,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시민들의 프로파일을 얻고, 그 프로파일을 바탕으로 어떤 인구집단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건지 판단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같은 서비스를 만들려면 정부가 통제하는 공공정보를 비롯해 다양한 저장소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스마트교통이나 주차 서비스를 만들려 한다면 정부의 데이터 가운데 운전면허 또는 차량등록 정보가 동원될 수 있다. 역으로 쓰레기통이 부족한 거리의 환경을 개선한다든지, 여타 공공 서비스를 시민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설문을 스마트폰 앱과 같은 경로로 진행한다면 시민들이 생산하는 데이터 역시 동원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 데이터도 참고할 수 있다.

가트너는 스마트시티 구축시 실제 데이터를 활용하고 서비스를 만드는 역할은 민간 부문에서 맡을 것이라 전망한다. 다양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접점에 접근하기 위해 민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표현하면 헬스케어, 공공서비스, 상업용 빌딩, 가정, 교통, 유틸리티 등 분야에서 필수 인프라인 통신 및 전력망을 마련하는 건 정부 영역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단말기를 개발, 생산, 구매, 설치하는 쪽은 민간 사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촉매 또는 중재자"

베티나 트라츠-리안 부사장은 스마트시티 구축 전략에서 "정부 역할은 '중재 내지 거버넌스'이며 단순 하향식은 적절치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사업을) 장악하고 있을 경우 민간 참여자는 굳이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다"며 "필요하다면 스마트시티 구축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겠지만, 민간 참여자를 밀어부치는 것 같은 역할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민간에서 다양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접점에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민간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그런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교통이나 주택 처럼 동떨어진 듯한 분야가 교류하고 연계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규칙에 포함된다. 앞서 언급한 중재자 역할은 이를 가리킨다.

트라츠-리안 부사장은 스마트시티 구축을 꾀하는 정부가 "일종의 거버넌스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게 (스마트시티 구축에) 민간의 관심을 갖게 하고 이익을 창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마트시티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답할 수 있는 목적을 정의하고, 그 목적에 상응하는 핵심성과지표(KPI)를 만들고, KPI를 서비스와 연계해 기존 목표의 달성 여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베티나 트라츠-리안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의 발표 자료 일부. 가트너 관점에서 스마트시티 구축을 위해 정의돼야 하는 목적과 KPI 등 개념을 간략히 보여 주는 도안. [자료=가트너]

이어 "정부는 설정한 스마트시티 목표에 대해 지역사회의 반응을 살피고, 시민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에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을 구해야 한다"며 "스마트시티 목표의 대상이 되는 지역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목표는 잘못된 것이고, 그런 프로젝트는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상호 대화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형화한 하나의 스마트시티란 있을 수 없으며, 그 목표는 제각각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운영효율 및 안전성 증진(영국 런던), 모바일과 연계한 스마트주차 및 혼잡시간대 교통흐름관리(미국 산타모니카), 탄소중립과 청정기술 확산(덴마크 코펜하겐) 등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목표와 KPI를 설정해 진행된 스마트시티 구축 사업의 내용과 현황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데이터 거버넌스, 데이터 마켓플레이스

베티나 트라츠-리안 가트너 리서치 총괄 부사장의 발표 자료 일부. 투명한 플랫폼 성격을 띠는 데이터마켓플레이스가 스마트시티의 실현을 위한 맥락화 데이터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시각화한 도안. [자료=가트너]

스마트시티 구축 과정에서 정부에게 요구되는 중재자 역할은 단지 민간 참여자의 이해관계를 정치적, 행정적으로 조율하라는 얘기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스마트시트 사례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역할이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맥락화한' 데이터의 가치를 파악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는 활동인데, 그 역시 정부의 역할이라는 게 트라츠-리안 부사장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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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부는 '데이터거버넌스'를 통해 데이터의 가치, 품질, 메타데이터, 시맨틱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이처럼 데이터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이터마켓플레이스'를 만들 수 있다"며 "시장에서 시민과 기업을 통해 제공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디지털화 하며 (스마트시티 서비스에 필요한) 맥락화도 할 수 있고, 그걸 활용하기 위한 시민과 개발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시티 예시로 든 런던과 코펜하겐의 사례에 대해 "데이터 공유를 촉진할 수 있었고, 그 비결은 (데이터마켓플레이스라는) '투명한 플랫폼'을 구축한 덕분이었다"고 진단했다. 투명한 플랫폼은 데이터의 접근, 이용, 공유에 대해 각 참여자들에게 명확한 규정과 지적재산권 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데이터의 공유와 활용을 촉진하는 문화 형성에 도움이 됐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