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터넷 통제권 왜 민간에 넘겨주나

ICANN과 연장안해…'ITU 이양' 의식했을수도

인터넷입력 :2016/08/19 14:54    수정: 2016/08/22 07:5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 세계 인터넷 관리자 역할을 해 왔던 미국 정부가 마침내 그 권한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가 세계 인터넷 지형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인터넷 통제권을 민간 다자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 넘기기로 했다고 BBC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18일(현지 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그 동안 인터넷 주소 관리 관련 정책을 펼 때는 미국 정부가 최종 결정권을 행사해왔다. 최근엔 상무부 산하 국가정보통신국(NTIA)이 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NTIA는 지난 16일 ICANN과 체결했던 인터넷 도메인 시스템(DNS) 관리 권한을 연장하기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양측 계약이 만료되는 10월 1일부터는 DNS 관리 권한은 ICANN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본부. (사진=위키피디아)

■ 초기엔 존 파스텔이 관장…1998년부터 상무부 관할로

DNS는 숫자로 된 IP를 인터넷 주소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미래부 웹 사이트 IP주소는 27.101.205.143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이 사이트에 접속할 때는 misip.go.kr란 도메인을 치고 들어간다. 숫자로 된 IP를 도메인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DNS다. 사실상 인터넷 대중화의 핵심 역할을 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미국은 알파넷(ARPANET) 시절이던 1968년부터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행사해왔다.

초기에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존 포스텔 교수가 DNS를 관리했다. 그가 월드와이드웹 초기 개척권자란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존 포스텔이 1982년 작성한 인터넷 지도.

하지만 1998년 존 포스텔 교수가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자 미국 상무부가 ICANN과 계약을 맺고 주소 관리를 위임했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상무부 등 미국 정부가 갖고 있었다.

양측은 2006년 한 차례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그 계약이 지난 해 9월30일 종료됐다. 지난 해 계약 종료를 앞두고도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 이양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지난 해엔 DNS 관리 권한을 넘기지 않았다. 당시엔 “미국 정부가 이양계획을 검토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NTIA와 ICANN가 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DNS 관리 권한을 내려놓기로 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하루 아침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미국은 왜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ICANN에 넘기기로 한 걸까? 물론 계약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인터넷 주소 관련 권한을 넘긴다고 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6년 연장 계약 당시에도 민간이양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기로 했다.

■ 중국-러시아 "UN 산하 ITU로 넘겨야" 압박

이런 상황에서 ICANN 관리 권한을 포기한 것은 최근 국제 사회의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국토안보국(NSA)이 전 세계 인터넷을 전방위 사찰해온 사실이 폭로되면서 반미 여론이 거세게 고개를 들었다.

특히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다자간 국제기구가 DNS를 비롯한 인터넷 관리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인터넷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TU는 국가별로 한 표씩 행사하는 의결구조다. 반면 ICANN은 ITU와 달리 직능 대표별로 할당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ITU-T S15 회의 모습.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ICANN 체제를 선호하는 반면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제3세계 국가들이 ITU 이양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ITU가 인터넷 정책을 총괄할 경우 중국, 러시아 등이 숫적 우세를 앞세워 인터넷 거버넌스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ICANN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은 미국 정부 입장에선 ‘차선’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ICANN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관리 권한을 고집할 경우 국제연합(UN) 산하 ITU로 인터넷 통제권을 넘기자는 주장이 더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정부는 ICANN 관리를 포기한 것은 “민간 인터넷 부문이 성숙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상무부가 굳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민간의 역량이 올라왔다는 의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하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군 역량 강화다. ICANN을 상무부 관할 하에 계속 남겨둘 경우 우군이 되어야 할 서방국가들의 지지마저 잃을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중국, 러시아 등이 주도하는 더 큰 공격의 씨앗을 자른다는 점까지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관련기사

결국 미국이 ICANN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 것은 민간 부문의 인터넷 역량 확대와 ITU 체제를 요구하는 제3세계에 맞설 서방국가들의 결집력 강화까지 감안한 조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보수파들은 ICANN 관리 권한 포기에도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테드 크루즈 의원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파 의원들은 "인터넷 거버넌스 관리는 정부 자산이므로 의회 승인 없이 민간에 넘겨줘서는 안된다”면서 오바마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