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1위對라우터1위…IoT분석 누가 셀까

HPE↔시스코, IoT 인프라 전략 닮은꼴 경쟁

컴퓨팅입력 :2016/07/06 10:19    수정: 2016/07/06 17:53

세계 서버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와 세계 라우터 시장 점유율 1위 업체가 사물인터넷(IoT) 데이터 분석이라는 신흥 인프라 영역에서 맞붙게 됐다. 최근 IoT용 x86 서버 시스템 '엣지라인(Edgeline)' 시리즈를 선보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와, 그 유사한 기술을 앞서 라우팅 시스템 기반으로 구현해 상용화에 나선 시스코시스템즈 얘기다.

양측의 IoT 데이터분석 시나리오에서 HPE 엣지라인 시리즈와 시스코 라우터 장비가 맡는 역할이나, 두 회사가 해당하는 제품을 포함한 전체 인프라 아키텍처를 구성한 방식이나, 그런 아키텍처를 통한 IoT 데이터분석 시나리오가 유용할 것이라고 점찍은 산업 분야 등을 놓고 볼 때, 이 시장에서 HPE와 시스코의 격돌은 시간 문제다. [☞관련기사: HPE, GE와 IoT 협력…IBM-시스코 파트너십 맞불]

HPE(왼쪽)와 시스코 로고

■HPE 유니버설 IoT 플랫폼 vs. 시스코 포그컴퓨팅 아키텍처

HPE는 지난달 30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간담회에서 엣지라인 서버 신모델 'EL1000'과 'EL4000'을 공개했다. 회사측은 신모델이 "컴퓨트, 스토리지, 데이터 캡처, 제어 및 기기 관리를 통합한 시스템을으로 데이터 분석과 통찰력, 시각화, 실시간 반응을 제공"하며 "충격, 진동, 온도 변화와 같은 환경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고 'HPE 유니버설 IoT 플랫폼'과 호환된다"고 밝혔다.

앞서 HPE는 원M2M(OneM2M) 프로토콜과의 상호운용성을 강조한 백서[☞참조링크: HPE Universal IoT Platform oneM2M and beyond(PDF)]를 통해 유니버설 IoT 플랫폼 아키텍처를 제시했다. 중앙의 데이터 서비스 클라우드를 통해 외부 센서와 디바이스 데이터를 분석하되, 네트워크 인프라 말단부에 구성한 IoT 게이트웨이로 분석 효율을 높이는 전처리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그림이다.

HPE의 유니버설 IoT 플랫폼 아키텍처.

이번에 소개된 엣지라인 시리즈가 HPE의 아키텍처에서 전처리 알고리즘을 실행하기 위한 IoT 게이트웨이 역할을 맡는 장비다. 이 시스템은 "석유 및 가스, 제조업, 통신 산업과 같이 공장 등의 원거리 환경에서 데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고객들이 (모든)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 데이터 파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솔루션"이라고 한국HPE 측은 주장했다.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인지는 의문이다. 사실 HPE의 메시지는 시스코가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와 관련 솔루션을 내놓을 때의 설명을 빼닮았다. 시스코는 2년반 전 포그컴퓨팅 아키텍처를 소개한 이래로 이 아이디어가 진정으로 IoT 시대에 걸맞는 컴퓨팅 인프라라고 주장해 왔다. [☞관련기사: 시스코, 안개 컴퓨팅으로 IoT 맹주 노린다] [☞관련기사: 시스코 IoE 전략에 담긴 3가지 메시지]

HPE 유니버설 IoT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포그컴퓨팅 아키텍처 역시 중앙화 클라우드 인프라의 일부 연산, 스토리지, 애플리케이션 기능을 데이터가 발생하는 물리적 위치 즉 네트워크 말단에 가깝게 분산시켜, 즉각적인 지능을 활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클라우드의 연산, 스토리지, 애플리케이션 기능을 분담하는 IoT 게이트웨이 역할을 서버 대신 라우터에 맡겼다는 점이 두드러진 차이다.

HPE와 시스코의 IoT 인프라 솔루션이 보여 주는 특징들은, 노선의 방향이 다를 뿐 각자 기존 주력 사업이었으나 더 이상 지속 성장을 장담할 수 없게 된 하드웨어 장비 제조 역량을 새로운 시장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라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하다. HPE는 1등 사업이었던 서버 제품을 확장하는 길을 택했고 시스코는 1등 사업이었던 라우터 제품의 기능을 강화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시스코 IoT 트렌드 대응 모델인 포그컴퓨팅은 분산 개념을 응용한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를 가리킨다.

■HPE 버티카 분석 및 시각화+하둡 vs. 시스코 파스트림+IBM 애널리틱스

사실 양측의 핵심은 소프트웨어일 수도 있다. 하드웨어 인프라 구성면에서는 HPE와 시스코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반면 데이터 분석을 위한 소프트웨어 구성면에서는 양측의 차이가 눈에 띈다.

일단 중앙 인프라에서 심도 깊은 분석을 수행하고 대시보드 및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등 데이터 시각화 수준의 활용성을 제공한다는 점과, 네트워크 말단부 IoT 게이트웨이에서도 소소한 분석이 수행된다는 점은 HPE 엣지라인 시리즈를 포함하는 유니버설 IoT 플랫폼 아키텍처나 시스코 라우터 시리즈로 구성되는 포그컴퓨팅 아키텍처나 마찬가지다.

HPE는 중앙 인프라에서 구동될 분석 엔진 '버티카(Vertica)'의 역할을 확장시켰다. 네트워크 말단부 IoT 게이트웨이 역할을 수행할 엣지라인 서버에서 구동하기 위한 IoT 데이터 분석플랫폼이 그 결과물이다. 이게 데이터베이스(DB)의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해 예측분석과 클로즈드룹 분석 기능을 제공해, 기업들이 산업현장에서 IoT 기기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고 통찰력을 얻게 해 준다고 회사측은 주장했다.

시스코는 분석 역량을 IoT 게이트웨이 영역에 집중시켰다. 현장의 실시간 인텔리전스 대응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2년반전 포그컴퓨팅 전략을 제시한 이래로 컴플렉스이벤트프로세싱(CEP) 기술과 실시간 분석용 데이터베이스(DB) 등 전문업체를 잇달아 사들여 그간 아키텍처의 공백이었던 기술을 채워넣었다. [☞관련기사: 시스코 IoT 전략의 마지막 퍼즐 '분석'] [☞참조링크: Enhancing Hyper-Distributed Analytics]

시스코가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의 모든 틈을 자사 및 인수 업체 기술로 메운 건 아니다. 여전히 시스코에겐 중앙 인프라 분석 솔루션이 없는데, 이 회사는 그 역할을 IoT 솔루션 파트너 IBM에게 맡겼다. 양사의 최근 협력에 따라, 시스코 IoT 솔루션을 쓰는 기업들의 네트워크 말단엔 시스코의 실시간 인텔리전스 기술이, 중앙 인프라에선 IBM의 분석 및 BI 기술이 돌 거란 얘기다. 즉 HPE는 IBM과도 경쟁하는 셈이다.

시스코 엣지애널리틱스 솔루션 개념도. 왼쪽이 엣지라우터 HW 및 스트리밍데이터 처리 SW로 구성된 IoT게이트웨이 내부의 기술 스택을 보여 준다. 오른쪽은 그와 연결되는 중앙인프라 분석 및 시각화 인프라다.

IBM과 시스코의 글로벌 협력이 발표될 때 이들이 자사 솔루션의 공식 타깃으로 삼은 시장 분야는 석유굴착지, 공장, 광산업 현장이었다. 이는 HPE가 엣지라인 시스템의 목표 시장으로 꼽은 석유 및 가스, 제조업과 표현만 다를 뿐 사실상 동일한 대상이다. HPE와 시스코-IBM 연합은 양립 불가능한 전면전을 예고한 셈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과 HPE-시스코의 삼각관계

시스코의 포그컴퓨팅 전략이 IBM과의 글로벌 협력으로 실현되고 있다면, HPE의 유니버설 IoT 플랫폼 전략은 제너럴일렉트릭(GE)과의 글로벌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GE가 HPE와 손잡기 전에 2년전 시스코와 먼저 IoT 분야 협력 계획을 발표했던 회사라는 점이다.

일전에 시스코는 포그컴퓨팅 전략이 여러 파트너들과의 협력으로 확대 추세라고 강조했는데, 일례로 지난 2014년 10월 16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IOx 플랫폼은 출시 이래 여러 업체들과의 협력 과정을 거치며, …(중략)… 이제까지 IOx 플랫폼 협력을 발표한 대표적인 업체는 GE(Predix), 이트론(Itron), OSISoft(PI), 인텔(Intel), 윈드리버(WindRiver), SK솔루션스(SK Solutions), SAP하나(SAP Hana) 등"이라 밝혔다.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IOx'는 시스코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의 핵심인 IoT 게이트웨이용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이다. 시스코 라우터 장비 운영체제 'IOS'에 리눅스 기반 애플리케이션 코드를 구동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탑재된 환경을 가리킨다. 당시 시스코에게 GE같은 파트너와의 협력이 어떤 의미인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고, 이후 양사 관계의 진전은 두드러지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GE와의 IoT 협력 소식은 시스코와 명백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HPE를 통해 들려왔다. 본사 발표 당시 HPE 제품에 통합될 IoT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게 파트너 GE의 역할로 묘사됐는데, 이는 GE '프리딕스(Predix)'와의 연동을 원활히 지원하게 한다는 얘기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채 한국HPE 서버사업부 총괄 전무. 2016년 6월 3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IoT 데이터 분석솔루션 전략을 제시했다.

프리딕스는 GE가 만든 클라우드 서비스형 플랫폼(PaaS)으로 산업용 IoT 애플리케이션 구동 시나리오를 겨냥해 만들어졌다. 과거 시스코의 플랫폼 협력 당시에도 언급된 바 있다. 지금도 시스코 포그컴퓨팅 아키텍처와 GE 프리딕스간의 연계 가능성은 열려 있겠지만, 더이상 시스코에게 GE가 유일한 협력 상대는 아니다. 새 파트너 IBM의 왓슨IoT가 제공하는 PaaS 기능이 GE 프리딕스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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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T인프라 유망 시장으로 떠오른 산업 영역에서 업력이 깊은 GE가 시스코와의 연대를 잊고 경쟁사 HPE와 손잡기로 마음을 돌린 것일지, 시스코에 이어 HPE라는 대형 IT인프라 솔루션 업체와 손을 잡고 운신의 폭을 넓힌 것일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GE는 이런 솔루션 파트너들을 발판 삼아 국내외 IoT용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얻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채 한국HPE 서버사업부 총괄 전무는 "HPE의 전략은 OT(사업운영기술) 영역에 IT를 접목해 확장시키는 것으로 (시나리오별 IoT 범주 가운데) '스마트홈'보다는 '스마트팩토리'에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면서 "국내에서 IoT 사업을 추진하려는 통신사, SI, NI, 글로벌 솔루션 리셀러와 협력할 수 있겠고,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맺은 곳의 한국지사들과 함께 일할 여지가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