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록의 ‘車 속도 결정 5요소論'

[이균성 칼럼]4차 산업혁명 대비법

방송/통신입력 :2016/06/23 14:29    수정: 2016/06/23 15:47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후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가 국가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신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산업의 구도가 급격히 변하고 그에 따라 교육 노동 가치관 등 사회 전반이 요동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가 산업적인 대비가 관건이다. 정부 국회 학계 산업계 등 거의 모든 단위에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의 이와 관련된 몇 가지 견해는 모두가 참고할 만하다 여겨져서 이 코너를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윤 원장은 오랜 ICT 전문가다. 특히 이스라엘과 미국의 신산업 육성 정책에 밝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전문위원과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을 지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창조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윤 원장이 말하는 핵심 키워드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보다 이 말을 더 선호한다. 4차 산업혁명이 변화에 대한 현상적 외피 같은 말이라면 소프트 파워는 혁명을 일으키는 근본적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창조경제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소프트 파워를 키워 전반적인 문화의 변화 속에서 산업의 구조를 혁신하자는 전략이다.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NIPA) 원장

컴퓨터에서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서로 상응하며 상보적인 관계지만 시대 조류에 따라 SW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부가가치 또한 큰 것처럼 우리 사회 전반도 SW 중심 사회로 변해야 한다는 게 ‘소프트 파워論’이다. 여기서 소프트는 단순 기술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상상력(imagination)을 뜻한다. 그걸 구현하는 게 혁신(innovation)이다. 그가 ‘Imaginovation’이란 조어를 쓰는 이유다.

윤 원장은 민간 중심의 사회변화를 강조하는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정부 역할이 크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소프트 파워가 실현되려면 민간이 적극 기술을 수용하고 그를 통한 사업구조 혁신에 나서야 하지만 정부가 이를 지원하기 위해 법제도를 빠른 속도로 바꾸고 예산 정책도 다시 고려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쪽이다. 정부가 이 문제에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창조경제가 초기 단계에서 제대로 전파되지 않고 혼선을 빚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각 부처가 벽을 허물고 기득권을 내던진 상태에서 미래사회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하고 큰 방향을 잡은 뒤 모두 그 내용을 숙지한 상태로 법을 만들고 집행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자동차의 속도를 결정하는 5요소論’이다. 충분히 새겨들을 만하다.

그의 생각에 차의 속도를 결정하는 건 다섯 가지다. 그중 의미가 큰 네 가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첫째 엔진 성능이다. 둘째 차의 무게다. 셋째 도로 상태다. 넷째 신호 체계다. 이건 모두 비유다. 시간이 부족해 비유의 의미를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추측하자면, 차는 산업이나 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엔진은 그중에 기술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게는 최적화된 조직 규모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5요소 가운데 엔진과 무게는 차 그 자체이고, 그래서 산업과 기업에 관한 것이다. 이와 달리 도로 상태와 신호 체계는 차가 달릴 수 있는 제반 시설이며, 그래서 기업 환경을 의미한다. 아무리 빨리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든다 해도 포장도로가 없는 나라라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또 도로를 잘 뚫어놓았다 해도 신호체계가 엉망이면 달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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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프트 파워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슬기롭게 대처하려면 민간과 정부가 총체적으로 합의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논의의 장(場)을 넓히는 게 맨 먼저 할 일이겠다. 특히 정부가 민간의 목소리에 진짜로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다. 법이 기술보다 먼저 갈 순 없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그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금융정책의 변화가 시급하다. 상상이 혁신으로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금이 필요하다. 그 요체가 투자다. 윤 원장 생각에 한국은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달리 금융의 중심이 투자가 아니라 융자다. 융자만으로는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과감한 도전정신을 발육시키지 못한다. 투자 기법을 선진화함으로써 융자 중심의 금융을 투자 중심으로 바꾸는 게 소프트파워의 첩경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