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들, '스톡홀름 증후군' 앓고 있다

[GEN 서밋 통해 본 저널리즘 동향- 2]

홈&모바일입력 :2016/06/21 17:44    수정: 2016/06/22 09: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디어들은 (플랫폼들에 대한)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있다.”

“퍼블리셔 vs 플랫폼이란 대립구도가 아니다. 플랫폼과 퍼블리셔는 함께 하는 사이다.”

뉴스 시장도 플랫폼이 지배하고 있다. 국내에선 네이버 같은 포털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인링크 서비스’가 귀한 영어권에선 페이스북이 생태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다.

에브게니 모르조프(왼쪽)가 GEN 서밋의 맷 켈리 회장과 미디어, 플랫폼 등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은 미디어 기업들은 고민에 빠져 있다. 선뜻 올라타자니 종속될까 두렵다.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다른 미디어기업들에 도태될까 또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오스트리아 빈 과학홀(Aula der Wissenschaften)에서 열린 '글로벌 에디터스 네트워크(GEN) 2016'에선 이 문제를 놓고 날선 공방이 오갔다.

‘인터넷 기만(Net Delusion)’ 등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기해온 에브게니 모로조프는 “미디어들이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되고 감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모로조프는 서밋 이틀째인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디어, 실리콘밸리 그리고 테크-유토피아’란 제목의 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서 그는 페이스북을 비롯한 플랫폼이 지배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미디어들, 페이스북서 도망쳐야…그런데 갈 곳이 없다"

그는 “4년 전 미디어기업들에게 페이스북은 클론다이크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는 말로 운을 뗐다. 클론다이크는 캐나다 북서부지역에 있는 곳으로 사금 산출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제 미디어들은 페이스북에 포획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예 “지금이라도 페이스북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갈 곳이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왜 이렇게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걸까? 일단 페이스북의 방대한 데이터 수집 능력에 대해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데이터를 긁어모을 능력이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제시할 길은 단 한 가지. 바로 노예가 되는 것뿐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낙관적으로 볼만한 근거가 없다.”

GEN 서밋 2016에선 '퍼블리셔 vs 플랫폼'이란 구도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전통매체 쪽의 참석자들은 플랫폼의 위협에 대해 큰 긴장감을 나타내진 않았다.

이날 강연에서 그가 쏟아낸 메시지는 미디어 기업들에겐 ‘최후의 경고’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미디어 기업들은 영향력을 잃고 결국 사라져버릴 것이란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모로조프는 데이터와 관련해선 미디어 뿐 아니라 정치적인 논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예 “난 모든 것이 수익을 쫓는 사회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모로조프는 뉴리퍼블릭 객원 편집자로 활동하긴 하지만 저널리즘 현장 안에서 직접 싸우는 인물은 아니다. ‘인터넷 기만’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선 여길 누르시오’ 같은 저술을 통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 온 인물이다.

그렇다면 모로조프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졌다고 비판한 미디어 기업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르조프에 이어 마련된 ‘퍼블리셔 vs 플랫폼’이란 코너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이 세션은 패널 구성부터 흥미로웠다. 일단 사회는 마이크로소프트(MS) 세계 미디어& 케이블 담당 이사인 토니 에머슨이 사회를 봤다. 여기에 전통 매체인 CNN 디지털의 메레디스 아틀리 편집장과 요즘 떠오르는 뉴미디어인 업데이의 장-에릭 피터스 편집장이 반대쪽에 앉았다.

실리콘밸리 기업과 전통 미디어, 그리고 뉴미디어 3자 논쟁 구도인 셈이다.

CNN "플랫폼 vs 퍼블리셔 구도는 잘못됐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메레디스 아틀리는 플랫폼과 미디어 간 대립 구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아예 “플랫폼과 함께 하는 퍼블리셔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여러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CNN이 디지털 유통 채널을 다루는 방식이란 얘기였다. 그는 특히 “페이스북이 핵심 파트너이긴 하지만 유일한 파트너는 아니다”고도 했다. 특정 서드파티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CNN이 공개한 소셜 플랫폼 전략 구성도. CNN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소셜 플랫폼이 위성 형태로 배치돼 있다.

그는 또 CNN의 다양한 채널들이 든든한 존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CNN닷컴을 비롯해 CNN 인터내셔널. CNN 머니 같은 채널들이 자체 앱과 웹 사이트를 갖고 있다는 것. 이런 자산들이 CNN에는 핵심 플랫폼이라고 주장했다.

메레디스는 아예 CNN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소셜 플랫폼 생태계 전략을 공개했다. CNN이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모바일 사이트를 비롯한 핵심 플랫폼이 바깥을 형성하는 구도였다.

그 바깥 동심원에는 페이스북 같은 레거시 소셜, 그리고 더 바깥에는 페이스북 메신저를 비롯한 이머징 소셜을 배치했다. 맨 바깥 동심원은 애플 워치, 아마존 등 이머징 플랫폼 파트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CNN을 중심으로 한 위성 같은 모양새를 갖는 구조였다.

“우리는 이런 플랫폼들에 콘텐츠를 배포한다. 이 플랫폼에 있는 독자들을 위해 우리 콘텐츠를 편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관심을 가질 사람들에게 그 콘텐츠를 보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메레디스는 CNN 소셜 편집자 여러 명이 페이스북 메신저를 비롯한 신흥 플랫폼에서 여러 방식으로 큐레이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한 동영상 실험에 대해서도 강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장-에릭 피터스 업데이 편집장과 메레디스 아틀리 CNN 디지털 편집장, 그리고 토니 에머슨 MS 미디어&케이블 담당 이사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부터 프린스 사망까지 여러 사건들을 동영상으로 처리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예 “동영상 작업을 하지 않는 미디어는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업데이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신문이다"

CNN이 전통 매체 중심 시각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업데이는 조금 달랐다. 굳이 평가하자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모르조프와 CNN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업데이는 삼성과 독일 미디어 그룹 악셀 슈프링어가 공동 설립한 미디어 조인트벤처다.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장-에릭 피터스 업데이 부사장 겸 편집장은 서드파티 플랫폼과의 제휴는 기회가 아니라 필요 조건이란 주장을 펼쳤다.

피터스는 아예 “이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문제다”고 강조했다. 하루 10억 명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신문이란 것.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외면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업데이의 디지털 전략 구성도.

현재 고객이나 잠재고객들이 그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피터스 업데이 편집장은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독자나 광고주들과 직접 관계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디어들이 서드파티 플랫폼과 한 배를 탈 때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디지털 콘텐츠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 즉 새 플랫폼에서 어떤 고객들에게 다가가길 원하는 지, 또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둘째. 단일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라. 특정 플랫폼에 전략이나 매출을 의존할 경우엔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에 대해선 조금 다른 관점을 보였다. 모바일 전략에서 동영상에 강한 신뢰를 보인 CNN과 달리 업데이는 “동영상은 과장됐다”고 비판했다. 대다수 이용자들이 동영상의 소리를 듣지 않고 앞부분만 보는 선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피터스 편집장 역시 미디어들이 동영상 생산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원론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았다.

플랫폼은 과연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 수 있을까

퍼블리셔와 플랫폼 간의 관계를 주제로 한 공방에선 각자가 딛고 있는 땅의 한계를 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저술 활동을 하면서 경기장 바깥에서 해설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모르조프는 ‘스톡홀름 증후군’까지 거론하면서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전통 매체의 대표 주장 중 한 명인 CNN의 메레디스 아틀리는 “플랫폼을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CNN의 다양한 브랜드를 중심에 두고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을 동심원 바깥에 그려놓는 전략도까지 공개할 정도로 과감했다.

모바일 기반의 신생 큐레이션 매체인 업데이는 CNN보다는 조금 중립적인 관점을 보였다.

GEM 서밋에 참가한 사람들이 발표자들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GEN 서밋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데이와 CNN 모두 한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으면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러 서드파티들을 골고루 활용하면 충분히 자기 중심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물론 미디어 입장에선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하루 10억 명, 월간 이용자 16억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과 3억명 남짓한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트위터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모로조프가 경고한 것처럼 ‘데이터 빈부 격차’ 문제도 개별 미디어들이 넘기 힘든 장벽이다. 이용자들의 모든 근황을 꿰고 있는 페이스북과 기껏해야 로그인한 정보나 쿠키 정도만 갖고 있는 미디어들이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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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한 나절 내내 진행된 미디어 고수들의 공방이 굉장히 유익한 부분을 건드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공허한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