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저널리즘의 친구일까 적일까?

[GEN 서밋 통해 본 저널리즘 동향- 1]

홈&모바일입력 :2016/06/21 10:59    수정: 2016/06/21 16:5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상현실(VR)과 로봇은 저널리즘에 어떤 존재일까? 페이스북을 비롯한 플랫폼의 대두를 어떻게 봐야 할까? 그들은 저널리즘의 친구일까? 아니면 경계해야 할 적일까? 전환기를 맞은 저널리즘 현실을 꼼꼼하게 짚어보는 행사가 지난 15일부터 사흘 동안 오스트리아 빈 과학홀(Aula der Wissenschaften)에서 열렸다.

글로벌 에디터스 네트워크(GEN)가 주최한 ‘GEN Summit 2016’은 플랫폼 지향 뉴스의 대두란 주제로 최근의 각종 현안을 꼼꼼하게 짚었다. 이 행사를 중심으로 최근 저널리즘 현장의 뜨거운 이슈를 점검해봤다. (편집자)

GEN 서밋 2016이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과학홀에서 사흘 동안 열렸다. 이번 행사에선 VR, 로봇을 비롯해 페이스북 같은 플랫픔 지향 저널리즘의 대두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

경찰이 차량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경찰이 권총에 손을 대자 그 사람이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경찰이 그 사람을 쫓아가 넘어뜨린 뒤 곤봉으로 제압한다.

이번엔 다른 쪽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준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찰. 하지만 그 사람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잡는다. 그러자 겁에 질린 그 사람이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한다.

과연 경찰의 과잉 진압일까? 아니면 정당 방위일까? 360도 입체 영상은 평면 사진에선 오해를 불러오기 쉬운 상황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

보는 각도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한 장면. 하지만 360도 카메라는 이런 한계를 없애준다.GEN 서밋 첫날 VR 저널리즘에 대해 발표한 휴먼 아이즈 테크놀로지스의 샤하 빈 눈 최고경영자(CEO)는 “왜 VR 스토리텔링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영상을 보여줬다.

VR이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가상의 현실이다. 여기서 실제 현실을 입힌 것이 증강현실(AR)이다.

이런 정의만 놓고 보면 VR이나 AR은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먼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하지만 360도 카메라를 활용한 입체 보도까지 VR 영역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실제로 지난 해 관심을 모았던 뉴욕타임스, CNN 등의 VR 보도는 대부분 360도 카메라를 활용한 결과물이다. 국내에서도 한국경제나 조선일보 등이 VR 팀을 가동하고 있다.

VR 저널리즘의 핵심은 프레임의 제거

그렇다면 언론사들은 왜 360도 영상을 활용한 보도에 관심을 갖는 걸까?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관점의 확장이요, 또 하나는 몰입(immersion)이다.

질라 왓슨이 BBC의 VR 영상 실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빈 눈 CEO가 보여준 경찰 폭행 관련 영상엔 바로 이 두 가지가 모두 담겨 있다. 영상을 보는 독자들은 현장에 있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와 함께 일반적인 영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전체 모습을 보여줘 사건의 맥락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질라 왓슨은 BBC가 파리 테러 직후 추모 행렬 모습을 360도 영상으로 보도한 장면을 시연했다. ‘꼴찌의 반란’으로 영국 뿐 아니라 세계 축구팬을 깜짝 놀라게 했던 레스터 시티 우승 직후 팬들이 환호하는 장면 역시 360도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한층 실감나게 보여줬다.

왓슨은 BBC의 R&D 인터넷& 미래 서비스 부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프레임이 갇혀 있었다. 하지만 360도 영상은 이 프레임을 제거하면서 관점을 확장해 준다.

360도 영상을 비롯한 VR은 저널리즘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이 부분에 대해선 RT의 앨리나 머크하레바 전략개발담당 이사가 잘 짚어줬다.

그 동안의 모든 영상은 프레임 안에 갖혀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텔레비전 방송은 텔레비전이란 프레임 내에 들어온 영상만 볼 수 있다. 하지만 360도 영상은 그 프레임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VR 저널리즘에 대해 발표한 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경험’을 이야기했다. VR은 경험을 나누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360도 영상은 진정한 VR 저널리즘으로 향하는 출발점일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물론 360도 영상을 VR에 포함시키는 게 옳으냐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뿐 아니다. 여전히 한계도 많고, 가야할 길도 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하지만 VR이 저널리즘에 던지는 질문은 적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해리포터’나 볼 수 있었던 몰입형 신문인 예언자일보를 현실 속에서 접할 수도 있을 지 모르기 때문이다.

머크하레바는 “360도 영상은 VR을 향한 첫 걸음이다”고 강조했다. 삼성 기어VR 같은 모바일 VR을 거쳐 오큘러스, 바이브 등이 제공하는 진정한 VR의 세계로 향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란 설명이었다.

■ "로봇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똑똑하지 않다"

VR과 함께 최근 저널리즘 현장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 로봇이다. AP통신이 지난 2014년 7월부터 기업 분기 실적 기사를 로봇으로 처리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LA타임스 역시 지진 보도 전문 알고리즘인 퀘이크봇으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로봇은 알파고 이후 특히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산업혁명에서도 로봇은 중요한 아이콘 중 하나로 꼽힌다.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된 저널리즘 역시 이번 GEN 서밋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사진은 클로드 드 루피 실러벌스 CEO가 발표하는 장면.

실제 저널리즘 현장에서 로봇은 어느 정도 활용될 수 있을까? 이번 GEN 서밋에선 ‘다음 채용자는 로봇이 될 수도 있다’는 제목으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요즘 로봇 저널리즘이 일반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로봇 저널리즘이나 로봇 기자란 표현 자체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다.

GEN 서밋에서 발표한 실러벌스의 클로드 드 루피 CEO 역시 로봇 저널리스트란 용어 자체에 대해서 문제 제기했다. 로봇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도 않고, 또 영화속에서 보던 거대한 사이보그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

그는 로봇이란 단지 시시한 코드 더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로봇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최근의 흐름은 특별할 것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루피는 ‘절대 그렇진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상당히 혁명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정교하게 잘 짜여진 탬플릿과 데이터, 그리고 의미구조를 갖출 경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콘텐츠를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러벌스는 60분에 3만7천500건에 이르는 기사를 생산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고 밝혔다.노르웨이 뉴스 에이전시의 혁신 책임자인 헬렌 보그트는 자신들의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로 하위 리그 축구 팀 경기 보도에 활용한 결과 상당히 믿을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로봇 기자는 속도와 생산력 면에서 인간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 실력을 자랑한다. 시간을 투자해서 개발한 결과 로봇들은 30초 만에 축구 기사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초보적인 경기 결과 관련 기사라면 도저히 인간이 따라하기 힘든 속도다.

시장 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오는 2018년이면 비즈니스 관련 콘텐츠 중 20% 가량은 로봇이 생산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알고리즘을 활용한 콘텐츠 자동 생산이 갈수록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그렇다면 로봇의 확산은 사람 기자들에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걸까? 보그트는 블룸버그 편집장인 존 미클트웨이트의 발언을 소개했다.

미클트웨이트는 “자동화된 저널리즘은 우리가 하는 일을 좀 더 흥미롭게 만들 잠재력이 있다”면서 “앞으론 저널리스트들은 발생한 사건을 보도하는 것에서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보도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과연 기자들의 친구이기만 할까

이날 발표한 연사들은 로봇의 대두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로봇은 저널리즘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멋진 동반자란 주장이 주류를 이뤘다.

그 주장엔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봇이 가장 단순한 일거리를 처리해줄 경우엔 기자들은 좀 더 복잡하고 생산성 많은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살짝 남았다. 로봇, 혹은 알고리즘은 기자들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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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과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뜻 변신하지 못했던 기자들을 변화의 현장으로 내몰 수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