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과 이해진 의장의 ‘新도원결의’

[이균성 칼럼]라인 美日 상장 뒷이야기

인터넷입력 :2016/06/13 07:32    수정: 2016/06/14 15:02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6년 상반기. 국내 인터넷 시장의 최대 이슈메이커는 ‘첫눈’이라는 신생 검색 업체였다. 이 회사는 ‘스노우랭크(Snow Rank)’라는 새로운 검색 방법을 들고 나왔는데 시장에서 네이버와 다툴 강력한 다크호스로 인정받았다. 구글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그 해 6월 이 회사는 결국 네이버에 인수됐다. 인수가격은 350억 원이었다.

이 인수합병(M&A)으로 당시 가장 큰 조명을 받았던 사람은 장병규 첫눈 사장이었다. 첫눈 매각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과 장 사장이 매각 대금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M&A로 인해 딱 10년 뒤에 또 다른 스타가 떠올랐다. 네이버 100% 자회사인 라인의 신중호 CGO(Chieg Global Officer). 그는 첫눈의 핵심개발자였다.

신중호 라인 CGO(이사)가 스타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라인의 미국과 일본 동시 상장을 이끌어낸 핵심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눈이 네이버에 매각될 때 신 이사의 기분을 짐작해보는 건 야릇한 일이다. 첫눈은 아마 “네이버를 잡자”는 모토로 설립됐을 것이다. 그런 회사가 설립 6개월 만에 네이버에 매각됐을 때 심사가 얼마나 복잡했을까. 특히 구글로부터 스카웃 제의까지 받았으니.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라인의 美日 동시 상장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심사가 복잡한 이 뛰어난 개발자를 어떻게 설득했을까.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이 의장의 포부와 진정성이 먹힌 것 같다. 인터넷은 곧 글로벌이고 세계에서 통해야만 의미 있는 서비스라는 게 평소 이 의장의 생각인 듯하다. 네이버 설립 이후 줄기찬 글로벌 개척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의장은 당시 국내에서는 쾌속질주를 했지만 글로벌에서는 쓴 잔을 맛보고 있었다. 네이버가 생긴 게 1999년이고 네이버재팬이 만들어진 것은 이듬해다. 또 2001년에는 네이버재팬 사이트가 정식으로 오픈했다. 사업초기부터 글로벌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별다른 성과 없이 2005년에 일본 검색 서비스를 중단하였다. 머지않아 네이버재팬 사이트도 폐쇄했다.

신중호 라인주식회사 CGO 겸 라인플러스 대표

첫눈 인수는 실패한 글로벌 진출의 반전 포석이었다. 당시 첫눈 장 사장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매각하기 전에 네이버(당시 NHN) 경영진으로부터 이것만은 확인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해외에 나갈 수밖에 없고, 해외진출에 실패해도 거듭거듭 다시 시도할 것이라는 점 말이지요.” 장 사장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까닭은 첫눈 멤버들이 네이버를 넘어 세계로 가기 위해 뭉쳤었기 때문이다.

장 사장은 '한국의 구글'을 만들기 위해 모였던 젊고 유능한 개발자들에게 회사를 네이버에 매각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근거 있게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장 사장은 물론 이 의장도 직접 나섰다. 훗날 첫눈 팀이 흐트러지지 않고 라인에 합류했던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신 이사를 비롯한 첫눈 팀이 이 의장과 글로벌 진출 뜻을 모은 걸 업계에서 ‘이해진의 新도원결의’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이 의장은 2007년 말 다시 네이버재팬을 설립하고 2008년에 검색센터장으로 일하던 신 이사를 일본에 파견한다. 이후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다 2011년부터 라인 서비스를 시작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의장은 라인 가입자가 3억 명을 돌파했던 2013년 일본에서 직접 기자간담회를 갖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시 멤버 그대로 일본에 넘어갔다”며 첫눈 인수의 의미를 다시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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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때부터 글로벌이 화두였던 이해진 의장, 조용하면서 뚝심으로 무장된 그의 기업가정신, 그걸 믿고 과감히 회사를 넘긴 장병규 사장, 뜻을 확인하자 주저 없이 전진해왔던 신중호 이사와 첫눈 팀. 네이버의 첫눈 인수합병은 그래서 ‘新도원결의’라는 멋진 상징으로 표현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상징이 회자되기 위해 무려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각고의 노력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라인의 美日 동시 상장은 그래서 한국 IT 분야에서 보기 드문 인수합병(M&A)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인수 기업 오너의 진정어린 기업가정신과 이를 믿고 10년간 흐트러짐 없이 베스트를 다한 피인수 기업 임직원들의 불타는 도전정신이 어울어져 만들어낸 멋진 앙상블이다.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사족 하나. 라인 상장과 관련해 신 이사가 받은 스톡옵션이 이 의장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