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덕분에 재발견한 ‘옛 노래의 즐거움’

[이균성 칼럼] 노래는 위로다

인터넷입력 :2016/05/11 16:48    수정: 2016/05/11 16:48

나는 음치(音癡)인 줄 알고 살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예회 때 합창을 하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목소리만 계속 삐죽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모두 웃느라 뒤집어졌다. 그 뒤로 나는 붕어가 됐다. 입만 벌리고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음악 시험이 있던 학창시절 내내 내 점수는 ‘가’였다. 8음 가운데 반음이 두 개라는 사실은 당연히 몰랐고, 피아노의 검은 은반과 흰 음반의 차이도 알 길 없었다.

내가 음치였던 건 순전히 환경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 노래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악기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내겐 자연의 소리가 더 익숙했다. 사르륵 겨울밤에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푸르르 가는 바람에 문풍지는 떠는데, 멍멍 멀리서 개가 짖는다. 꼬끼오 닭이 울고, 타닥타닥 아궁이 속에서 장작불이 탄다. 푸우 가마솥이 끓고 쩍 해님이 뜬다. 번쩍 눈을 떠도 자연은 소리 천지다.

쓱쓱 아버지가 마당을 쓸고, 꿀꿀 돼지는 밥 달라 조르며, 갗갗 까치가 감나무 꼭대기에서 인사한다. 쪼르륵 초가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 따라 녹은 눈이 물 되어 흘러내린다. 대문 밖을 나가도 정겨운 소리로 넘쳐흐른다. 졸졸 개울물이 흐르고, 쏴아 바람이 사람보다 먼저 뒷동산에 올라 소나무와 속닥거린다. 푸드득. 이것은 까투리와 사랑을 나누던 장끼가 제풀에 놀라서 비상하는 소리이다.

산골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겠지만 나 또한 고등학교 때 대처로 나간 뒤 이런 정겨운 소리들을 잃어버렸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소음(騷音)이었다. 생각해보면 소리를 잃고 소음에 묻혀 살던 그 3년은 내 삶에서 가장 우우한 날들이었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야 나는 자연과 다른 의미의 좋은 소리가 있다는 걸 느꼈다. 우연히 전통 악기와 소리를 연구하는 동아리에 든 것이다.

네이버 노래자랑(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지금 생각하면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배우지 못한 게 많이 후회된다. 우연히 그곳에 들어가 짧은 기간 동안 생활하면서 듣는 귀의 즐거움은 만끽했지만 ‘붕어 신세’를 면하지는 못했다. 잘 하는 친구들의 소리에 경탄하며 공연 때 짐 나르고 끝난 뒤 코가 삐뚤어지도록 막걸리 사발을 기울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오고 난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음치였고 붕어로 살았다.

옛 노래가 미치도록 듣고 싶고 그래서 듣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2~3년 전부터다. 바야흐로 나에게도 진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때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들으려 하니 그 옛날 자연의 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노래 또한 도처에 있었다. 진짜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상이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음악용 기기나 도구를 단 한 번도 나를 위해서 사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달라진 점은 과거의 경우 그게 음치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없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 있을 때는 IPTV의 오디오 채널이나 PC로 유튜브에 들어가 듣는다. 유튜브는 특히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했는지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노래들만 찾아 보여준다. 굳이 DJ가 필요 없을 듯하다. 거기서 좋은 노래(이미 과거부터 유명했지만)를 새로 발견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보석처럼 발굴한 노래는 MP3 파일을 구해 USB에 저장한 뒤 자동차에서 듣는다. 내 USB에는 현재 110여 곡이 들어 있다. 노래 한 곡당 평균 4분으로 잡으면 7시간가량 계속 틀어야 다 들을 수 있는 양이다. 내 출퇴근 시간은 평균 2시간 반이다. 3일 꼬박 들으면 USB가 한 바퀴 도는 셈이다. 옛 노래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자 자질구레한 집안일과 꽉 막힌 시내 주행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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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가 불렀고 김광석이 리메이크 해 유명해진 ‘바람과 나’, 김정호의 ‘외길’, 남화용의 ‘홀로 가는 길’, 장욱조의 ‘고목나무’, 서연스님(인드라)의 ‘무명’ 등이 요즘 내가 USB에 추가 저장한 새 보석들이다. 남화용과 장욱조, 그리고 서연스님은 솔직히 말해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가수들이다. 그들을 알게 된 게 참 좋다. 그들은 앞으로도 오래 출퇴근 시간과 집안일을 할 때 같이할 것이다.

서교동에 가끔 가는 작은 ‘7080 라이브카페’가 두 곳 있다. 테이블이 고작 네댓이다. 저녁 10시 전엔 손님 없을 확률이 꽤 높다. 내가 노리는 타임이다. 저녁 가볍게 일찍 끝내고 친구 두셋이 가 맥주 각 일병에 마른안주 하나 시켜 노래하고 수다떨며 한두 시간 놀기에 딱 좋다. 새 보석 꺼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값싼 손님인 줄 알면서도 매번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장은 바람처럼 사시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