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삼성, ‘스타트업’을 버려라

[이균성 칼럼]문화보다 아이템과 투자

홈&모바일입력 :2016/03/30 13:30    수정: 2016/03/31 14:36

정치에도 혁명이 있고 산업에도 혁명이 있다. 그러나 문화에는 충격이나 충돌이 있을지언정 그걸 혁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이 벌인 소위 ‘문화대혁명’은 말이 문화고 혁명이지 사실 정치 운동이었다. 결과는 실패했고 과정은 참혹했다. 정치도 산업도 일거에(짧은 시간 안에) 뒤바꿀 수 있지만 문화는 그럴 수 없다. 그건 사회 발전 수준만큼 아주 느리게 진화하는 것이다.

정치 및 산업과 문화의 발전 양상이 이렇게 또렷이 차이가 나는 것은 그 대상이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와 산업은 그 대상이 실체를 가진 어떤 구조다. 사람이 짜 만들어놓은 것이다. 편의에 따라 바꾸면 되는 대상이다. 사람의 의견이 모아지면 언제든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바꾸어도 좋은 것이다. 문화는 그러나 그 대상이 사람의 정신이라는 데 결정적 차이가 있다. 실체가 애매모호다.

실체가 없는 걸 바꾼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의 정신세계가 그런 것이다. 실체가 없거나 있어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누가 강요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결심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겠는가. 개인의 정신세계는 총체적인 사회 환경을 통해 개별적으로 독특하게 성립된 이해불가의 어떤 영역이기 때문에 누가 의식적으로 개조할 대상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런데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파시스트다. 전체주의자인 것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 체제를 혁명적으로 구축해놓고도 결국 독재를 펼치는 자를 우리는 무수히 목격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 절차적 민주주의에 필요한 각종 제도를 만들어놓았지만 대통령부터 그에 합당할 만큼 문화적으로 진화했는지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투쟁으로 구조는 바꿀 수 있어도 정신까지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지금 이 나라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이 몸소 보여주고 있다. 적잖은 사람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치 및 산업 구조의 혁신적인 발전과 정신세계로 대표되는 문화 수준 사이의 격차만 더 벌어져서 생기는 현상이다. 바꿀 거 다 바꿨는데 사람이 안 바뀌니 결과가 더 절망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삼성이 ‘스타트업 삼성’을 모토로 내걸고 ‘기업 문화’를 혁신하겠다고 선포했을 때 내 고민의 지점이 거기에 있었다. 그 의미가 혹시 ‘정신세계 개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혼자서 해봤다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실체가 없는 유령’과 싸워야 하는 골치 아픈 게임이 될 공산이 크다. 혁신을 하려면 바꿔야 할 실체가 또렷해야 한다. 바꿔야 할 대상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그 점에서 의미가 컸다.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유명한 경구는 추상적이었지만 양(量) 중심의 경영이 질(質) 중심으로 바뀐다는 메시지는 구체적이고 느낌이 팍 온다. 질이 떨어진 휴대폰을 모아 불살랐던 건 그런 경영 전략의 변화를 확실하게 주지시키는 대표적인 퍼포먼스였다. 삼성이 수많은 세계 1등 제품을 보유하게 된 건 ‘질(質) 경영’의 결과일 거다.

구글이나 애플의 기업문화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강한 이유가 ‘스타트업 문화’ 덕분이라는 주장에 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배경의 일부일 뿐이다. 실제로 구글과 애플은 완전히 다른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그들이 성공한 건 전형(典型)으로서의 스타트업 문화 덕분이 아니라 미래를 통찰하고 사업 아이템을 혁신해 선제적으로 투자할 줄 아는 경영 능력 덕이라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스타트업 기업문화’라는 건 어쩌면 창업할 때부터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런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걸 의식적으로 해보자 하고 그러기 위해 제도로 강요하는 순간 그건 그 때부터 스타트업이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건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다. 귤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정신세계에 이 고사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아주 무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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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삼성은 이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겉으로 그럴듯하지만 내용적으로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선동적 구호가 오히려 구성원들로 하여금 갈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사례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이라는 추상성에 너무 매몰되지 말기를 삼성에 권유한다. 기업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추상적인 문화가 아니다. 구체적인 아이템과 적절한 투자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스타트업 문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걸 어느 곳에나 보편화할 ‘전가보도(傳家寶刀)’로 생각하고 ‘일사불란’하게 강요하는 걸 경계하자는 뜻이다. 내 생각으로, 대기업이 ‘스타트업 문화를 조직적으로 만들자’고 하는 건 논리적인 ‘어불성설’이다. 좋은 아이템과 그런 문화를 가진 스타트업을 적극 인수해 독립적으로 경영하게 하는 게 훨씬 낫다. 알파고의 딥마인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