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폐 잘라낸 개발자' 산재 판결에 항소

1심 '산재불인정 행정처분 취소' 판결 불복…항소이유 불명

컴퓨팅입력 :2016/03/24 18:17    수정: 2016/03/25 11:25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 '폐 잘라낸 개발자'로 알려진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양도수 씨에 대한 산재불인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 판결에 불복, 항소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1심 판결은 소송이 시작된지 3년만인 지난 1월 선고됐다.

앞서 양 씨는 만성적 과로에 따른 결핵성 폐질환으로 폐를 일부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과거 직장이었던 농협 IT서비스 자회사를 상대로 진행한 시간외근로수당청구 민사소송 중 법원에서 조정을 받은 데 이어, 공단에 산재불인정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올초까지 벌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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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10년 넘게 IT산업을 국가경쟁력과 경제 발전의 핵심 기반으로 지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는 동안 IT산업 종사자로 살았던 누군가는 직장에서 건강을 잃고, 그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IT업체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 아이러니다.

양 씨의 '과로에 따른 면역력 저하'로 인한 발병이라는 사례를 산재로 인정받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인 양 씨의 발병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강요된 과로'는 국내 SW개발자들에게 익숙한 문제다. 양 씨와 공단의 행정소송 흐름과 결과가 업계 이목을 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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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었나

양 씨는 10년전 농협정보시스템에 입사한 SW개발자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계속된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져, 폐절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웠다가 2009년초 복귀했다. 이듬해에도 그는 완쾌되지 않았지만, 회사는 그 해 휴직 상한기간 1년을 채운 양 씨를 해고했다.

이후 양 씨는 회사측과 법적으로 다퉜다. 2009년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던 근로기준법 위반 조사는 제대로 진행이 안 돼 취하했다. 2010년 시간외근로 수당 청구(민사),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형사), 2012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소송사기 혐의(형사) 등 소송을 진행했다.

2건의 형사소송은 무혐의로 마무리됐다. 민사소송 재판부는 양 씨 손을 들어 줬다. 1심 판결은 그가 4천525시간이라 주장한 시간외근로 내역 중 1천427시간(약 30%)만을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2014년 4월 양 씨에게 그나마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조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양 씨는 "과로로 면역력이 약해졌고 폐 절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는 점을 입증해 산재 인정을 받고자 했다.

그는 사측과 민사소송 중 시간외근로를 강요당했다는 점을 입증한 1심 판결이 있었던 2013년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결과는 산재불인정(요양불승인처분)이었다. 이에 양 씨는 그해 8월 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서울행정법원 담당 재판부는 지난 1월 20일 양 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약 6년간의 형사, 민사, 행정 소송이 끝나는 듯했다.

공단은 그러나 양 씨의 산재불인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법원 판결에 불복했다.

공단 서울지역본부 송무1부 소속 담당자들의 항소장은 지난달 22일 접수됐다. 항소사건은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에 배정됐다. 첫 변론은 다음달 28일 오후 2시반 시작한다.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왜 항소했나

근로복지공단의 항소이유가 불분명하다. 공단 측은 항소장 제출 후 40일 가량이 지난 가운데 아직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로서는 대략적인 추정만 가능하다.

서울고등법원은 통상적으로 항소 제기 후 항소이유서를 3주 이내에 제출하도록 권장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재판부와 상대측이 항소이유를 알 수 없기에 재판을 지연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안내하며, 아주 늦어지면 제출을 촉구할 수도 있다.

24일 공단 측에 항소 취지, 항소이유서 제출 계획 등을 문의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한 담당자는 현재 검찰의 소송지휘를 받는 상태라, 항소이유서 제출 전에 취지를 밝힐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첫 변론 기일 등 일정대로 소송이 진행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첫 변론 기일까지 5주(35일)쯤 남았다.

공단 측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더라도, 그 후 피항소인이 내용을 충분히 검토해 재판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가 보장될진 의문이다. 공단측 담당자는 "피항소인이 대응 준비서면 등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양 씨의 소송 대리인 자격인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최종연 변호사는 "항소이유서가 제출되지 않아 공단측의 항소 논리를 확인할 수 없지만, 1심 판결 근거인 '과로에 의한 면역력 저하'와 폐질환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공단의 1심 패소 후 항소율 5번에 4번꼴"

양 씨 입장에선 회사측을 상대로 한 민사 소송 1심 판결과 합의 내용을 통해 건강이 악화될 정도로 과도한 업무를 수행했음을 인정받았다. 행정 소송에서도 산재불인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공단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해 9월 심상정 의원실 측 분석에 따르면 공단은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3년 반 동안 1심 패소한 행정소송 5건 중 대략 4건(80.5%)에 항소를 제기했다. 이는 같은기간 산재 당사자의 항소율(44%)이나, 서울행정법원의 연평균 항소율(58.5%)보다 큰 비중이었다.

의원실은 이에 대해 "공단측 1심 패소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의학적 근거에 의한 판결이었음에도, 산재노동자는 공단의 항소 남용으로 몇 년에 걸친 재판 기간에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 병세는 악화되고 소송 비용까지 부담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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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공단이 항소한 사건 중 '패소'와 산재 당사자와의 조정을 통한 '취하' 사례를 합친 비중이 87%에 달한다며 "공단은 이기지도 못할 소송에 대해서 무분별하게 항소를 하고 나서, 패소율을 낮추기 위해 원 처분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원고 취하를 유도"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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