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자산관리사, 적금보다 수익성 좋다"

뉴노멀 시대…자산관리 방법이 바뀐다

인터넷입력 :2016/02/14 13:37    수정: 2016/02/15 10:49

손경호 기자

평균적인 월급을 받고, 직장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은행 예금이나 적금으로 돈을 불린다는 말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예적금 금리라고 해봐야 1% 중반에서 많아봐야 2% 후반대 그친다. 그렇다고 주식에 투자하자니 전문지식이 부족한데다 시간도 없고, 전문가들에게 맡기려고 보니 굴릴 수 있는 돈이 마땅치 않다.

돈을 쌓아두는 것만으로는 오히려 자산이 줄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가 나는 것이다. 예적금보다는 높은 금리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인 파운트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분산투자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알고리즘을 활용한다는 의미를 담은 로봇(robot)과 전문 자산관리사를 말하는 어드바이저(Advisor)를 결합한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미 미국 웰스프론트, 베터먼트라는 회사들을 통해 잠재력이 확인된 바 있다.

김영빈 파운트 대표.

■왜 예적금 대신 로보어드바이저에 투자해야하는가

서울대 경제학과와 같은 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국내 주요 그룹 신사업 개발 컨설팅을 담당하기도 했던 김영빈 파운트 대표의 생각이 궁금했다.

왜 핀테크 스타트업, 그 중에서 아직 개념도 낯선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를 창업하게 된 것일까. 12일 서울 충정로 인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보자. 김 대표는 군복무 중인 2004년~2005년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지원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이 전쟁으로 인한 빈곤 탓에 물을 달라고 쫓아왔던 모습을 기억한다. 군을 제대한 뒤에는 2006년 3월부터 10월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21개국을 횡단하며 독도알리기에 나섰던 독도라이더의 팀장이기도 했다. 그는 파병과 모터사이클 여행을 겪으면서 빈곤이나 불평등 문제가 많이 와닿았었고, 이런 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창업한 파운트는 '모든 사람의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자'는 철학을 내세웠다.

현재 16명 임직원으로 운영되는 이 스타트업은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꼽았다. 당장 로보어드바이저가 빈곤, 불평등을 극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이 되기는 어려워보이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자산을 불릴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평균 나이 33세이지만 SK플래닛에 200억원에 인수된 모바일메신저 틱톡 개발팀과 함께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업계 경력이 10년 이상 되는 이들이 모였다. 범상한 스타트업은 아니라는 인상을 풍긴다. 김 대표 역시 올해 34살이다.

임직원들 외에도 이러한 뜻에 함께하는 전문가들이 후방에서 서비스 개발이나 자문을 지원하고 있다. 그 중에는 김 대표가 독도라이더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인연이 됐던 제3대 투자자 중 하나로 꼽히는 짐 로저스도 포함된다.

파운트를 포함한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들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ETF 기반 분산투자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산관리시장, 세번째 물결 온다

그가 국내서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를 창업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이전까지 일반 직장인들의 투자는 주식, 채권, 펀드 중 한 곳에만 집중됐다. 투자자가 여러 분야에 분산투자를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시장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전문적인 자산관리사를 통해서만 자산관리가 가능했다.

그는 지금까지 투자시장을 크게 3개 물결로 구분했다. 먼저 첫번째 물결은 '액티브 펀드(Active Fund)'라고 불리는 것이다. 1970년~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경제가 성장기에 있었고, 당시에는 스타 투자자들을 통해 10% 이상 수익률까지 낼 수 있었고 투자도 활발했던 시기다. 대표적인 투자자들로는 워런버핏, 조지소로스, 짐 로저스 등이 꼽힌다.

이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저성장,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등장한 두번째 물결이 '패시브 펀드(Passive Fund)'다. 코스피200이나 타이거200과 같이 여러 상장사들을 묶어놓은 지수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방법으로 상장지수펀드(ETF)라 불리는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한 회사에만 투자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지수와 연결된 여러 회사들에게 분산투자를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신 기대수익은 액티브 펀드보다 못 미치는 4%~8% 수준에 그친다.

김 대표는 "미국 블랙락, 뱅가드 같은 대규모 자산운용사들이 두번째 물결을 주도하면서 수천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관리해 왔지만 이제는 저성장, 저금리가 더 심화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기대수익이 4%~6%에 그치는 세번째 물결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회사들이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핀테크 스타트업인 웰스프론트, 베터먼트와 같은 곳이다.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이 수 년 전과 비교해 턱없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으로 분산투자를 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면서도 거래에 드는 수수료를 0.2%~0.5% 수준으로 낮췄다는 점이 특징이다.

첫번째 물결에서는 투자자들이 기대수익이 높은 만큼 투자에 대해 2%~5%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 물결에서는 기대수익이 적은 상황에서 자산관리사들이 이러한 비용부담을 1% 남짓한 수준으로까지 줄여야했다. 세번째 물결에서는 이보다도 적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투자자들이 적절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김 대표의 말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전문적인 자산관리사의 도움없이도 자동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실시간으로 경제상황을 반영한 분산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일반적인 자산운용사들은 수익률이 오르내리는 폭이 크지만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분산투자 효과를 통해 평균 수익률은 이보다 낮은 대신 보다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적금으로 1%~2%대 금리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2%~3% 이상 높은 수준의 수익을 내면서도 일반적인 자산관리사들을 통해 높은 수익을 내거나 손해를 볼 수도 있는 투자보다도 수익률 변동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예적금보다는 높은 금리로 꾸준히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로보어드바이저가 탄생 배경인 셈이다.

자신의 나이, 성별, 소득, 투자성향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 포트폴리오(분산투자방안)를 구성하는게 좋을지 알려준다.

■로보어드바이저-시스템트레이딩 뭐가 다르길래

김 대표는 "최근 들어 로보어드바이저를 시스템트레이딩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둘은 명확히 구분된다"고 선을 그었다.

시스템트레이딩은 쉽게 말하면 주식, 채권 등의 가격이 올랐을 때 팔고, 내렸을 때 사는 일련의 과정을 자동화하기 위해 나온 기술이다. 과거 시장 흐름을 기록한 차트를 분석해 어떤 시점에서 주식, 채권 등을 매매해야할지를 별도의 알고리즘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트레이딩은 아직 검증된 기술이라 보기 힘들고, 주식, 채권 등이 운용되는 시장은 변수가 많은 탓에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설득력을 잃고 있는 시점이다.

반면 로보어드바이저는 알고리즘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시스템트레이딩이 말하는 매도, 매수 타이밍을 자동으로 설정해준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다.

웰스프론트, 베터먼트 등은 기본적으로 ETF를 기반으로 분산투자한다. 시장상황에 따라 석유, 금 등 현물에 대한 투자와 함께 기존 주식, 채권 등에 대한 투자 등 사이에 상관관계를 분석해 가장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산투자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로보어드바이저가 가진 핵심 기술이다.

김 대표는 "분산투자를 통한 자산관리의 대전제는 10%가 어떤 자산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면 90%는 어떻게 자산을 배분하느냐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주식가격이 내리면 채권과 같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수단의 가격이 오르고, 금 가격이 오르면 채권이 흔들리는 등 투자수단들 간에 상관관계를 분석해 최적의 포트폴리오(분산투자방안)를 짤 수 있게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로보어드바이저라는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 2천500개 ETF 상품이 운영되고 있지만 자산관리사들이 1년365일24시간 동안 이러한 상품들을 모니터링해 최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파운트를 포함해 웰스프론트, 베터먼트 등 스타트업들은 이런 작업을 로보어드바이저가 대체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국내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비대면 투자일임계약에 대한 허용, 소액투자자들에 대한 수익보장 등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온라인 투자일임 규제 풀리고, 소액투자자도 수익보장 돼야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관리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 만들어진 기술이지만 국내서 안착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난관들이 남아있다.

국내 자본시장법 상 로보어드바이저나 독립투자자문사 등은 자산관리에 대한 자문만 할 수 있고, 비대면으로는 투자일임계약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다. 스마트폰이나 PC, 노트북 등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 번 이상은 오프라인에서 담당자를 만나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하는 과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서는 비대면 투자일임계약에 대해 아직까지는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 허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기존 고액 자산가보다는 투자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직장인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적은 투자금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점도 숙제다. 현재 ETF 기반 분산투자로 최대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2천만원 이상 투자가 이뤄져야한다. 500만원 규모로 투자를 해도 분산투자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30만원, 100만원 단위 투자로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운트는 오는 4월 말, 골든브릿지 증권과 함께 우선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다른 증권사, 은행들과 B2B 형태로 협업하는 방안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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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저성장, 저금리에 저출산까지 더해지면서 더이상 자산관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국내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20대~30대 청년들이 은퇴할 시점에서 은행에만 돈을 맡긴 사람들은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나중에는 퇴직연금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지향점이라고 말하는 파운트가 내놓은 '구체적인 해결책'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