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왜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오기 힘든가

조원규 스켈터랩 대표 "컴퍼니 빌더 모델로 파괴적 혁신 지원"

인터넷입력 :2016/01/22 09:31    수정: 2016/01/22 17:07

황치규 기자

구글코리아 R&D 담당 대표를 지낸 조원규 씨는 1년여전 '컴퍼니 빌더'를 표방하는 스켈터랩 대표로 명함을 바꿨다. 이후 그는 조용히 물밑에서 움직였다. 창업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뭐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침묵의 시간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조 대표는 이제 할말이 많다는 표정이다.

컴퍼니 빌더는 말그대로 회사 창업을 도와주는 성격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국 벤처 창업, 실리콘밸리 창업에 이어 글로벌 기업 국내 지사 수장을 거친 조 대표의 이력서를 감안하면 스타트업 지망생들에게 컨설팅 해주는 것이겠지 싶었는데 들어보니 스켈터랩에는 컨설팅을 훨씬 뛰어넘는 야심이 투입됐다.

고만고만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게 아니라 사고를 제대로 칠만한 파괴적인 기술 회사가 나올 수 있도록 실력있는 도우미가 되겠다는 거였다.

벤처캐피털도 있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하는 회사들도 이미 많은데 사고칠만한 스타트업 키우는데 컴퍼니 빌더 방식이 꼭 필요할까? 조 대표는 "한국에선 꼭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스켈터랩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조원규 대표

"구글코리아 나오고 정부 주도 벤처 지원 프로그램에서 멘토도 참여했는데, 할 때마다 느꼈던 게 한국에는 큰 문제를 푸는 스타트업은 거의 없다는 거에요. 작은 문제에 집중하는 스타트업들이 대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벤처는 1를 넣어 10이 아니라 100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내수만 노려서는 불가능해요. 해외로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해도 시장 구조 자체가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데, 한국은 내수에 집중해도 나름 할만한 편이에요."

조 대표는 내수 지향적인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통한다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한국 스타트업 중 90%는 내수에 초점을 맞췄다고 봐요. 외국에서 성공한 것은 라인뿐입니다. 내수 시장만 파다보면 해외는 버릴 수 밖에 없어요. 한국과 너무 다르거든요."

한국에 내수형 스타트업이 많은게, 컴퍼니 빌더가 존재해야할 명분이 될 수 있을까? 조 대표는 이번에도 "한국에선 유능한 컴퍼니 빌더가 꼭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진 문제점은 좋은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부족하고 있어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겁니다.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인재가 부족하니 글로벌에서 통할만한 스타트업이 나올 수가 없는거죠. 스케일있는 비즈니스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스켈터랩을 시작한 건 좋은 인재들을 한군데 모아놓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들이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분야별로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놓고 글로벌에서 통할만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가들과 협업을 하는 겁니다. 기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던지면 스켈터랩이 인재들을 조합해서 디테일을 만드는거죠. 스켈터랩은 제품 개발에만 집중합니다. 영업이나 마케팅은 아이디어를 던진 기업가의 몫이죠."

스켈터랩 멤버들

처음부터 세계적인 비즈니스를 꿈꾸는 기업가들과만 협력하겠다고 강조하는 스캘터랩은 최근 프로젝트 1호로 썸데이(thumbday) 앱을 공개했다.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받은게 아니라 조 대표가 직접 선수로 등판한 프로젝트. 첫 프로젝트인 만큼, 내부에서 직접할 수 있는 걸 갖고 해보자는 취지다.

글로벌에서 통할만한 비즈니스만 잡는다는 스켈터랩의 DNA를 감안하면 첫 프로젝트의 콘셉트가 무척 궁금해진다.

요약하면 썸데이는 포스퀘어와 일기장에 담긴 개념을 합친 서비스다. 소셜의 시대, 혼자쓰는 일기장 서비스라...이게 과연 글로벌에서 통할만한 파괴적인 아이디어일까?

조 대표는 그냥 일기장는 어렵겠지만 위치 기반 SNS인 포스퀘어처럼 구조화된 데이터로 중무장한 디지털 일기장은 대단히 파괴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포스퀘어 사용자들이 방문한 곳을 텍스트로 쓰는게 아니라 그냥 버튼 하나로 체크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일상을 포스퀘어처럼 입력할 수 있게 한다면 지금은 경험할 수 없는 서비스가 될 수 있습니다. 썸데이는 구조화된 데이터에 기반한 서비스를 표방합니다. 텍스트만 입력하는 서비스가 아니에요."

기자가 썸데이 앱을 깔아 써보니 카테고리도 다양하고 태깅 기능도 제공한다. 정말로 짦고 간단하게 일상을 기록할 수도 있고, 오고간 위치도 날짜별로 자동으로 입력된다. 사용자 기록을 정리한 리포트 기능도 있다. 자세하게 분류가 돼 있다보니 2~3년 후에는 지금 기록한 것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일기장에서 옛날 얘기 다시 확인하는거, 쉽지 않은 일이다. 메모를 많이 하는 기자 입장에선 틈틈히 생각난 것들을 썸데이이 기록해도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썸데이 앱

조 대표는 자신의 삶이 잘 기록된다면 엄청나게 유용한 정보가 될거라도 거듭 강조한다. 데이터가 쌓이면 머신러닝 기술을 투입해 단지 기록하고 찾아보는게 아니라 다양한 추천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의 말처럼 썸데이가 파괴적인 서비스가 되려면 첫 단추, 다시 말해 사람들의 일상이 잘 기록되어야 한다. 사용자가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썸데이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습관적으로 기록하는거, 의외로 피곤한 일이다. 메모습관 갖자고 마음먹기는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소수다.

조 대표도 꾸준히 일상을 기록하는 사용자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느냐에 썸데이의 성패가 달렸음을 한다. 서비스 초반에는 다양한 유인책을 투입하는데 집중하려 하는 쓰는 이유다. 조 대표는 "사용자들이 습관을 붙이게만 하면 고난도 데이터 분석을 통한 부가 가치 창출은 자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썸데이는 내놓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투입된 프로젝트다. 최근 1차 버전이 공개됐고 오는 2월에 기능이 대폭 강화된 업그리이드 버전이 나올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한국에 집중하고, 하반기에는 글로벌 시장에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궁금한게 하나 있다. 요즘은 소셜 서비스가 대세인데, 어떻게 스켈터랩의 1호 프로젝트로 사용자가 주로 혼자쓰는 일기장 콘셉트가 나오게 됐을까? 스켈터랩 내부에서도 소셜과의 결별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는데, 자꾸 소셜로 가더라고요. 그런데 소셜로 가면 100% 망할 수 밖에 없잖아요? 페북, 카카오 이길 수 없잖아요? 소셜에 대한 미련을 버리다보니, 구조화된 데이터를 쉽게 입력하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겁니다. 일기장은 아니지만 구조화된 일기장을 만들면 파괴적일 수도 있다고 본거에요. 그럼에도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소셜 중심의 아이디어를 벗어난다는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썸데이를 내놓은 만큼, 조 대표는 이제 스켈터랩의 2호, 3호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다. 2호는 O2O, 3호는 플랫폼 관련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외부 창업가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본격화한다.

조원규 대표는 20년 넘게 IT맨으로 살았다. 경력은 크게 3개로 나눠진다. 7년은 한국에서 새롬기술 창업, 이후 7년은 미국에서 다이얼패드 창업, 그 다음 7년은 구글코리아 R&D 담당 대표였다. 그리고 이제 스켈터랩으로 4번째 경력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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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터랩은 앤드비욘드(&Beyond) 산하에 있는 컴퍼니 빌더 회사다. 앤드비욘드는 베인앤컴퍼니와 구글 출신의 M&A 및 사업 기획 전문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한 스타트업 플랫폼이다. 테크 기반 서비스는 스켈터랩이,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앤드비욘드가 맡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앤드비욘드는 2013년 베인앤컴퍼니 한국 대표와 뉴욕 시니어 파트너를 역임한 박철준 대표가 설립했다. 2014년에는 조원규 전 구글 R&D총괄 대표가 테크 부문 파트너로 구글 출신 엔지니어 4명과 함께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