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보는 삼성과 애플의 관점 차이

[이균성 칼럼] 2가지 혁신의 길

홈&모바일입력 :2016/01/21 15:49    수정: 2016/01/25 07:59

삼성전자와 애플의 차이에 대해 그동안 다양한 논의와 분석이 있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려 한다. 기술을 이해하는 차이. 먼저 지금부터 전개되는 내용은 총체적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험이 이 글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자칫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어 글을 쓰기로 했다.

삼성과 애플은 먼저 기술에 대한 접근 자세가 다르다. 삼성 사람들이 협력사를 만나 묻는 질문은 “뭐 새로운 거 없어”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새로운 기술에서 혁신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애플 사람들의 질문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라는 질문이 많다고 한다. 이미 있는 기술이되 그것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구현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질문이 꽤 다르다.

왜 이런 차이를 보일까. 삼성은 ‘기술’을 팔려 하고 애플은 ‘경험’을 팔려 하는 차이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삼성의 마케팅 포인트는 ‘세계 최초 개발’이고 애플의 그것은 ‘쓰임새가 다른 제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출발이 다른 것이다. 이는 두 회사의 연구개발(R&D) 투자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작년 기준으로 애플은 매출의 3.8% 만을 R&D에 투자했다. 삼성전자는 이 비율이 6.5%.

금액 차이도 크다. 애플 투자액이 연간 9조4천억 원이고 삼성전자는 14조8천억 원이다. 삼성에 비해 애플 영업이익률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반기술에 대한 애정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삼성이 애플과 달리 연구개발이 핵심인 소재 부품 사업을 겸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술 중심의 삼성’과 ‘경험 중심의 애플’이라는 정의가 크게 훼손되진 않는다.

삼성 애플 소송 재판

기본과 응용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삼성은 원천 기술 발굴에 강하고 애플은 활용 기술에 강하다는 뜻이다. 두 회사의 특허 보유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휴대폰 분야로만 한정할 때 2014년 기준으로 삼성은 2천179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애플은 647건에 불과했다. 삼성의 휴대폰 사업 업력이 애플보다 십 수 년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축적한 관련 특허 현황은 비교도 안 될 거다.

거칠게 비유하면 삼성은 이과 체질이고 애플은 문과 체질이다. 문제를 푸는 법이 다르다는 뜻이다. 삼성은 곧이곧대로 정직하게 정답에 접근하고 애플은 다양한 변수를 대입하거나 차원을 바꿔 색다른 해답을 찾는다. 달리 말하면 삼성은 귀납적이고 애플은 연역적이다. 삼성은 협력사나 자신의 새 기술을 모아 신제품을 내놓고 애플은 먼저 신제품을 구상한 뒤 협력사를 닦달해 완성해나가는 방식이다.

나는 삼성에 비해 애플 신제품 출시 주기가 훨씬 긴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귀납적인 삼성이 더 다양한 상품으로 더 다양한 신기술을 소개한다면 연역적인 애플은 추세를 지켜본 뒤 좀 더 시간을 두고 결정적인 한 방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먼저 나온 아이폰이 이제 6버전인 반면 늦게 나온 갤럭시가 7버전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차이 때문이다. 삼성엔 쓸 기술이 많은 거다.

아이러니한 건 기술 중심의 삼성이 경험 중심의 애플과의 미국 특허 싸움에서 밀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결과는 온당치 않다. 미국 국익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앞서 본 대로 스마트폰 기술 발전에 삼성이 애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였고 더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더 많은 공을 세운 것이다. 그런데도 밀렸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밀린 곳이 없는데 오직 미국에서만 밀렸다는 데 편파성 문제가 있다.

인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은 결국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쓰여야 한다. 그 철학이 기술 공유를 강제하는 ‘표준특허’ 제도를 만들었다. 이에 반해 디자인 중심 ‘상용특허’ 보호는 너무 지나치다. 삼성 특허는 원천기술 중심 ‘표준특허’고 애플은 다수가 응용 중심 ‘상용특허’인데, 미국에서 승패가 갈린 배경이다.페이스북 등 미국 IT 기업들이 삼성-애플 싸움에서 삼성 편을 든 까닭도 거기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삼성이 밀린 건 엄중한 현실이다. 삼성이 늘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지점이 거기다. 기술혁신과 경험혁신이란 두 가지 혁신의 길에서 삼성이 더 고민해야 할 것은 후자라는 뜻이다. 이는 비단 삼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기업과 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블룸버그 혁신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50개국 중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생산성 분야에서 39위에 머문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삼성 휴대폰은 3개 전선(戰線)에서 2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전쟁 상대는 경험혁신의 달인 애플과 가성비의 달인 중국 기업이다. 3개 전선은 운영체제(OS), 입력기술, 애플리케이션이다. 하드웨어야 삼성이 출중하니 굳이 전선이랄 것도 없다. 나는 3개의 전선 중 핵심이 입력기술이라고 믿는다. OS는 구글과 협력하면 되고 앱은 생태계 문제다. 내가 입력기술을 특히 강조하는 까닭은 복잡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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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말고 다른 수단이 별로 없는 스마트폰에서 입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고 경험이자 문화이고 철학이다. 터치(touch) 경험이 향후 스마트폰 싸움에서 결정적인 승패 요인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미 애플은 멀티 터치를 넘어 3차원(3D) 터치로 달려가고 있다. 손 안의 컴퓨터에 있는 수많은 콘텐츠를 누가 더 쉽고 편리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느냐의 문제가 결정적인 싸움터가 될 것이다.

그게 기술의 삼성이 경험의 애플을 제압할 루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