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멜론 인수와 한국 벤처생태계

[이균성 칼럼]모험적 M&A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인터넷입력 :2016/01/11 15:18    수정: 2016/01/12 15:29

병신년 벽두부터 국내 벤처업계에 대형 인수합병(M&A) 건이 터졌습니다. 카카오가 '멜론'을 서비스하는 국내 1위 음악 콘텐츠 사업자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거래 규모가 무려 1조8천700억 원이라고 합니다. 이는 카카오의 M&A 사상 역대 최대입니다. 국내 벤처기업에 대한 조(兆) 단위의 투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쿠팡 지분 참여 외에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거래는 한국 벤처 생태계 변화에 주목할 만한 요소를 여럿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이십 수 년 간 한국의 IT 산업을 취재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는 왜 미국 실리콘밸리와 같은 대규모 M&A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M&A가 활발해져야 벤처 생태계가 넓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IT 기업의 성장기반이 M&A 아니었을까요.

이번 거래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임지훈 카카오 대표입니다. 임 대표는 국내 여느 대표와 다른 독특한 이력이 있습니다. 다른 대표들이 보통 엔지니어, 관리, 마케팅 전문가라면 임 대표는 투자전문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임 대표는 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수석심사역을 지냈고,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맡았었죠. 케이큐브벤처스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투자회사고요.

임지훈 카카오 대표

투자와 M&A를 통한 성장에 밝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슈가 안 된 작은 M&A는 차치하고 그의 손길을 탄 굵직한 M&A만 해도 다음, 김기사, 그리고 로엔까지 세 건이나 됩니다. 모두 다 IT 시장을 떠들썩하게 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중 절정이 로엔이겠지요. 금액이 워낙 크니까요. 전문가답게 자금 투입은 최소화하였습니다. 1조8천700억 원 중 7천500억 원은 카카오에 재투자 받기로 하였으니까요.

통신 분야를 제외하고 국내 IT 전자 시장에서 대규모 M&A가 부족했던 까닭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자유로운 M&A를 펼치기에는 공정거래 이슈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과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에 대해 불편해하는 사회적 시각이 그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벤처 기업가들은 M&A를 통한 출구(Exit)를 찾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고 벤처 창업 열기가 급속히 식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M&A가 국내 벤처 생태계를 크게 바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도 없잖네요. 대규모 거래가 성사됐는데도 이번 M&A로 인한 자금이 벤처 업계에 재투자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오히려 거액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됐습니다. 이번 M&A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스타 인베스트 홀딩스 리미티드(에스아이에이치)라는 외국계 사모펀듭니다.

이 회사가 보유한 로엔 지분은 61.4%입니다. 2013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SK플래닛과 리얼네트웍스로부터 도합 2천872억 원에 인수했지요. 그리고 이번에 1조5천63원에 카카오에 되팝니다. 차익이 무려 1조2천191억 원이라고 합니다. 멜론은 국내에서 만든 서비스고 국내 이용자를 상대로 수익을 내는데 어쩌다 이런 거액이 해외로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아이에이치(SIH)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빼어난 투자 감각과 경영능력을 본받아야겠지요. SIH가 로엔을 인수했던 2013년과 지금의 경영지표를 보면 급속히 개선된 게 분명합니다. 매출은 2013년 2천526억원에서 2015년 3천540억원으로 약 40% 가량 늘었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73억원에서 594억원으로 59% 늘었습니다. 이 프리미엄이 1조2천억이라는 건 의아스럽긴하지만요.

문제는 우리 정책과 M&A 풍토겠지요. 로엔은 SIH에 팔리기 전에도 1천851억원의 매출에 301억원 영업이익을 올리는 우량한 회사였습니다. 그런 회사가 공정거래법에 의해 팔려야만했고 하필 국내 업체가 아닌 SIH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가격이 위에서 언급한 대로 2천872억원이었습니다. 다시 애석해 하는 것은 2013년 거래가 국내 업체끼리 성사됐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었을까, 하는 점이죠.

벤처 생태계 활성화 정책을 고민하는 정부나 각 기업의 M&A 담당자들이 이번 건을 다시 한 번 복기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거듭 말씀드리는데, 사모펀드의 긍정적인 역할을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음에도 출구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벤처 창업자가 숱하게 널려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의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번 M&A를 볼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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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는 앞으로 숙제가 더 커졌다고 하겠습니다. 로엔에 대한 기업가치는 시장평가에 따른 것이기는 하겠지만 연간 9천460억원의 매출에 1천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회사가 투자하기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고 이제 이 거대한 딜의 합목적성을 실적으로 주주들에게 증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M&A 성사보다 그 이후 사업내용일 것입니다. 어떻든 시너지로 증명해주길 기대합니다.

이번 M&A는 그 점에서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