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글 삭제 본인이 정한다"...강원도 ‘타이머' 첫 적용

내년 1월4일부터 시행

인터넷입력 :2015/12/30 14:25    수정: 2016/01/01 11:58

#. 취업 준비생인 A씨는 번번이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낙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면접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몇 년 전 자신이 한 블로그에 올린 글을 면접관이 따라 읽으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A씨는 철없던 시절 작성했던 글이 몇 년이 지난 지금 발목을 잡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 동안 면접관들이 지었던 의미심장해 보였던 표정이 떠오르면서, 어딘가에 또 남아있을지 모를 글들을 생각하니 불안과 후회가 밀려왔다.

PC 인터넷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면서 사용자들이 남기는 글과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셀 수조차 없다.

문제는 내가 지금 올린 글이 5년, 10년 뒤에도 ‘괜찮은 글’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제, 어디에 글을 올렸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A씨의 경우처럼 과거의 글이 불쑥 현재의 나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날로 ‘빅브라더’화 돼 가는 정부와 수사기관은 호시탐탐 사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든다.

강원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DAS 업로더'가 적용된 사례.

웹상에 게시물을 올릴 때 사용자가 직접 타이머를 설정 할 수 있는 기능이 내년 초 강원도 홈페이지에 적용된다. 사용자가 마치 타이머를 설정하듯 내 글과 정보에 소멸 시한을 정할 수 있다.

30일 강원도는 내달 4일부터 도 홈페이지에 특허로 등록된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 업로더’를 적용키로 했다. 이용자 스스로가 인터넷 게시글이나 파일 등에 데이터 소멸시한을 설정할 수 있는 옵션 기능을 제공하는 것.

사용자는 게시글에 게시기간을 설정하거나 영구보존을 선택할 수 있으며, 게시물 소멸 시 이메일 안내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사용자가 나중에 들어와 지우는 번거로움 없이 게시물을 올릴 때 언제까지 해당 게시물이 유효한지를 판단해 타이머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데이터를 보관하지 않게 돼 서버 운영이나 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

이 기능은 ‘잊혀질권리’ 이슈와 맞물려 도입 됐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검색 배제’가 핵심인 잊혀질권리와 개념이 다르다. DAS 업로더는 사용자가 자신의 글에 대한 삭제권을 갖고 원하는 때에 지울 수 있는 기능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잊혀질 권리 법제화 여부와 관계없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나 적용이 가능하다.

강원도는 해당 기능을 점진적으로 18개 시군 홈페이지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해당 솔루션과 기술이 네이버, 다음, 구글과 같은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포털 사이트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만약 해당 기능이 사용자들이 많은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사이트로 확대되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 댓글, 게시판, 블로그 등에 타이머 설정이 가능해져 사용자들이 원하는 만큼 글이나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자동으로 삭제할 수 있어 보다 안전한 사생활 보호가 가능해진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정보유출 관련 사고로부터도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다만 해당 기능이 포털 등 대형 사이트로 확대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존재한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사업자들이 최대한 많은 고객 데이터를 모으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한 쇼핑 맞춤 상품 추천이라든지, 타깃팅 광고 시장이 커지고 있어 사용자들이 쉽게 정보를 삭제하는 것에 회사가 거부감을 갖는 실정이다. 또 이용자 정보와 축적해 놓은 데이터양이 회사 자산 가치로 평가되므로 삭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강원도는 세계 최초로 잊혀질권리를 조례로 만들어 예산까지 마련했다”며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다 보니 기정사실화 되는 문제가 있는데 네이버, 다음, 구글, 관공서 등에도 디지털소멸 기술이 도입되고 또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네이버나 다음은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좋으니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서도 “데이터 축적에 드는 비용 증가에 기업들의 고민도 큰 만큼 디지털 삭제 권한을 개인에게 줬을 때 기업들이 손해를 입지 않는 방안을 입체적으로 논의하고 체계화 한 뒤 이를 기업들에 제안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잊혀질권리 법제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한 전병헌 의원(왼쪽), 최문순 강원도지사.

강원도가 의지를 갖고 시행하는 잊혀질권리 사업의 첫 일환인 DAS 업로더 기능이 디지털 시대에 얼마나 파급력을 미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단계다. 대형 포털사와 유명 사이트 운영 사업자들이 이를 채택할지도 예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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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난해 카톡 감청 사건으로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만큼 사용자가 내 정보에 대한 폭넓은 개념의 삭제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사기관 감청에 불응했던 카카오가 얼마 전 제한적으로 카톡 정보를 검찰에 제공키로 한 만큼 권력 기관에 맞서 사업자가 갖는 한계를 사용자가 직접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