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위기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균성 칼럼]생태계와 두 바퀴 자전거

홈&모바일입력 :2015/12/24 14:06    수정: 2015/12/28 14:12

사람은 나면 죽고 꽃은 피면 진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자연과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다. 영생에 대한 끝없는 집착은 거기서 생긴다. 종교의 출발 지점이 거기다. 기업도 살아 있는 유기체여서 이 법칙에 지배받는다. 100년 이상 가는 기업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오너나 최고경영자(CEO)가 지속가능경영에 사력을 다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귀하고 애달픈 일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그 부피와 질량을 따지는 건 부질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부피와 질량은 다르다. 노무현의 죽음과 범부(凡夫)의 죽음은 그래서 같으면서도 다르다. 기업도 그렇다. 매일 셀 수도 없는 기업이 생기고 또 죽어나가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모를 수도 있고, 노키아처럼 단 한 번의 몰락으로 지속적인 얘깃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며칠 전 쓴 삼성의 위기와 처방에 관한 칼럼(삼성은 왜 그렇게 엄살을 부릴까)도 같은 맥락이었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미래 위기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의견과 삼성이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삼성의 한 임원은 칼럼과 관련 “위기의 본질과 그걸 헷징(Hedging)하려는 전략 및 체력으로 볼 때 삼성도 위기가 아니라고 할 수 없지만 애플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왜 아니겠는가. 매사가 그렇다. 더 높은 곳이 더 위험하다. 따라 잡는 싸움보다 도망가며 벌이는 전투가 훨씬 더 힘겹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들어 애플 위기론이 심상찮게 나온다. 최근 나온 위기론의 진앙지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기업분석가 캐티 휴버티다. 그의 보고서를 미국 유력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이 인용해 보도했으니, 그 저명성을 고려하면, 허튼 이야기만은 아니겠다.

애플 위기론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상 처음으로 내년에 아이폰의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휴버티는 약 6%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의존 비중이 너무 높다는 현실. 이 비중은 3분기 기준으로 62% 정도 된다고 한다. 셋째,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익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태블릿 판매는 오히려 감소하고 애플워치는 미약하고.

나는 휴버티의 전망이 어느 정도 적중할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시장 상황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늙었다. 시장이 늙었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수요가 큰 폭으로 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엇비슷한 경쟁자가 많아졌다는 것. 가격 싸움이 불가피해진다. 1위 사업자에게 불리한 형국이 된다. 판매량과 점유율을 지킨다 해도 마진의 양보가 불가피하다. 시장과 함께 1위도 늙어가게 된다.

애플은 그러나 노키아처럼 절단나지는 않을 것이다. 노키아는 일반폰 시장이 상당히 성숙된 이후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휴대폰 거장인 모토로라를 격침시켰지만 사업 구조가 너무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규모가 너무 컸다. 그 ‘악마의 규모’ 때문에 아이폰과 아이튠스라는 새 스마트폰 생태계가 출현하자 변신할 새도 없이 무너져버렸다. 애플은 그러나 이와 달리 플랫폼 기반 생태계를 잘 꾸려놓았다.

플랫폼 기반의 생태계는 하나의 기업이라기보다 시장으로서의 속성에 가깝다. 새로운 생태계가 거대하게 만들어지지 않는 한 쉬 절단나지 않는다. 남이 만든 생태계에 단순 참여하는 기업과 그걸 만들고 이끌어가는 기업한테 시장이 주는 이익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시장 경쟁에서 진 기업은 단명할 수 있지만 어떤 시장이 다른 시장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린다.

애플은 그래도 위기를 면키 어렵다. 중국 기업들 때문이다. 중국 모바일 기업들은 급속히 성장할 가능성이 높고, 이들에게 머리가 없지 않는 한, 폐쇄적인 애플 생태계에는 편입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공생이 가능한 구글 생태계를 더 선호할 것이다. 올해를 정점으로 애플 생태계는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애플도, 노키아처럼 급사하지는 않겠지만 빠르게 늙어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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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늙고 죽는 건 어느 때가 지나면 더 이상 새 세포가 생성되지 않고 이미 있던 세포는 죽어가기 때문이다. 기업도 똑같다. 모든 아이템은 결국 사라지게 돼 있다. 새 아이템을 끝없이 찾아내야만 한다. "10년 안에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모든 제품은 사라질 것이다." 5년 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삼성뿐만이 아니라 애플을 비롯해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시장 이치인 것이다.

모든 기업은 달리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는 두 바퀴 자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