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3자 삭제 요청, 해외엔 없다

대부분 '본인 신청' 필수…중국 등만 예외

인터넷입력 :2015/12/11 13:51    수정: 2015/12/11 14:0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제3자 신고만으로도 인터넷 게시물 삭제 심의를 할 수 있게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지난 10일 인터넷 명예훼손 글에 대한 심의 범위를 확대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의결한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게시글 당사자나 대리인 외에 제3자도 방심위에 명예훼손 혐의가 있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심의 신청을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아예 위원회가 직권으로 심의를 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 규정에 대해 벌써부터 ‘검열 우려’가 제기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선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할 때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칠까?

중국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직권으로 삭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나라는 없다. 대부분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직접 요청할 경우에 한해 삭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 EU '잊힐 권리' 는 본인 요청 때 적용

게시물 삭제와 관련해 가장 이슈가 된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지난 해 5월 “구글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잊힐 권리’를 갖고 있다”고 판결한 때문이다. 당시 ECJ는 “사용자가 시효가 지나고 부적절한 개인정보를 지워달라고 요구할 경우 구글은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잊힐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직후 삭제 신청이 쇄도했다.

구글이 지난 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잊힐 권리’ 인정 판결 이후 삭제 요청은 총 34만8천85건 접수됐다. 페이지 규모 따지면 123만4천92 페이지에 달한다. 구글은 이중 신청 건수 중 42%를 삭제조치했다고 밝혔다.

유럽 최고 재판소인 유럽사법재판소. (사진=씨넷)

하지만 EU의 ‘잊힐 권리’ 판결 역시 해당 콘텐츠를 지우지는 않는다. 다만 구글 검색을 통해 해당 콘텐츠로 연결되는 링크를 제거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엄밀히 표현하자면 ‘게시글 삭제’가 아니라 ‘링크 제거’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잊힐 권리’는 당사자 또는 대리인만이 주장할 수 있다.

이외에 다른 규정들은 대개 명예훼손 관련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인터넷 서비스 책임자(ISP)의 면책 범위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 미국, CDA-DMCA 등에서 규정…역시 본인신청 조건

미국에선 통신품위법(CDA)과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이 대표적이다. 특히 인터넷 게시글 삭제와 관련해 중요한 법은 CDA다. 물론 CDA에도 제3자 신고로 삭제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CDA 제512조는 정보매개자가 침해 정황을 알게 되었을 때나 침해 신고를 받을 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 신속하게 삭제할 경우엔 명예훼손 등과 관련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다.

특히 CDA는 ISP를 ‘단순 정보 유통 경로’와 ‘정보 발행자’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단순 정보 유통 경로에 대해선 광범위한 면책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1998년 논란 끝에 제정된 DMCA도 피해자의 제거 신청이나 침해자의 반대 신청이 있을 경우 관련 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DMCA는 한국 정보통신망법의 ‘임시 조치’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DMCA의 게시글 처리는 ‘통지 및 게시중단(notice and take down)’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단 권리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해당 콘텐츠를 내려달라고 ISP에 요청한다. 요청을 받은 서비스 제공자는 조치를 취한 뒤 해당 콘텐츠가 내려갔다는 사실을 요청자에게 통보해준다.

하지만 글을 작성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서비스 제공자는 해당 콘텐츠를 다시 살리게 된다. 이 때 작성자와 권리자는 모두 자신의 신상 정보를 해당 서비스업체에 제공해야 한다.

DMCA는 법 제정 직후 ISP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들끓었다. 결국 ‘통지 및 게시 중단’ 절차를 잘 따를 경우 ISP들의 책임을 면해준다는 조항이 신설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초강력 제재법 SOPA는 반발 때문에 입법 실패

물론 미국에서도 초강력 규제 법안이 추진된 적 있긴 하다. 지난 2012년 초 일부 의원들이 주도했던 온라인해적행위금지법(SOPA)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2012년 미국 일부 의원들이 SOPA 법 제정을 추진하자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주요 인터넷업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블랙아웃' 시위를 하기도 했다.

당시 법은 명예훼손이 아니라 저작권 침해행위가 주타깃이었다. SOPA는 저작권자 뿐 아니라 국방부도 침해행위에 연루된 사이트 제재를 요청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또 불법 MP3 파일을 직접 제공하는 사이트 뿐 아니라 불법 사이트에 링크를 제공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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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A가 규정한 침해 행위를 범할 경우 광고나 결제 서비스도 금지할 수 있는 초강력 제재법안이었다. 하지만 이 법은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인터넷 서비스업체들과 시민단체들의 대대적인 반발 때문이었다.

일본은 ‘특정 전기통신역무제공자의 손해배상책임의 제한 및 발신자 정보게시에 관한 법률’에 게시글 삭제와 관련된 규정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명예훼손 피해자가 ISP에 직접 발신자 정보 게시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