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이 통신사에 계륵인 이유

경쟁력과 의지 높지만 사업 펼칠 공간 너무 적어

방송/통신입력 :2015/09/02 18:12    수정: 2015/09/02 18:14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정을 50%까지 완화해도 통신사들은 출자제한집단 기업에 묶여 다음카카오와 같이 대주주의 위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거대한 융합 추세 속에 인터넷기업, 제조사 등에 전통적인 통신시장 영역을 내주고 있는 판인데 신규 분야도 규제로 인해 시장진입에 어려움이 커요.”

통신사들이 잇따라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에 뛰어들면서도 그 성과를 낙관하지 못하는 배경을 압축해 설명한 한 회사 고위 임원의 말이다.

2일 금융 및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이미 지난달ㅔ 인터파크, IBK기업은행이 포함된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 합류하기로 발표했고, KT 역시 늦어도 이번 주 내에는 교보, 우리은행 등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컨소시엄을 통해 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자본금 기준을 내려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고, 산업자본의 지분참여를 10%(의결권 있는 지분 4%+의결권 없는 지분 6%)로 제한한 현행 은산분리 규정을 50%까지 확대하는 등 규제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과 ICT 기업간 합종연횡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금융혁신을 도모하겠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업종 가운데 하나인 통신사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다. 은산분리 규정을 50%까지 완화한다 해도 통신사들은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인 61개 출자제한집단 대기업에 해당돼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로서 참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플랫폼을 보유한 제조사와 인터넷기업에 문자, 음성 등의 시장을 매년 잠식당하고 있는데 통신사가 잘 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과 같은 성장동력 산업조차도 또 인터넷기업에 내줘야 할 판”이라며 “가장 큰 ICT 역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도적으로 시장에 뛰어들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핀테크(Finance+Technology)처럼 ‘ICT와 금융’의 융합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비즈니스 모델, 규제 철폐라는 3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이를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통신사가 규제의 늪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통신사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시장에 뛰어들어 저금리와 고금리로 양극화 돼 있는 대출시장에 중금리 시장을 만들어 개척하고 이를 통해 서민경제에도 일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실제 사업에서는 아무런 주도권도 가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일단 통신사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의 비즈니스 모델로 내세우는 은행권의 중금리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하나금융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내 금융권의 가계 신용대출 금리는 연 4~5%의 은행권 저금리와 연 15~34.9%인 카드,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 고금리로 양분돼 있다”며 “10% 전후의 중금리 대출은 희박한 단층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5~6등급의 중신용계층 1천216만명(26%)이 금리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들이 중금리 대출시장에 어려운 이유는 중간등급의 경우 신용분석을 위한 충분한 정보가 부족한 구조에 기인한다”며 “향후 출범할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특성화나 틈새시장 공략차원에서 중저신용 등급 시장에 진출 시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덧붙였다.

즉 통신사들이 보유한 기존 가입자의 통신소비 패턴이나 제휴사업자 할인 등의 이용패턴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할 경우 충분히 은행권 대출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중국의 IT기업인 텐센트의 자회사인 위뱅크의 경우 거래정보에 근거한 신용평가로 대출승인이 거절됐던 고객을 대상으로 게임 접속시간이나 활동 내역 등을 통해 SNS상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한 바 있다.

또, 영국의 바클레이스(Barclays)는 지난해 실행된 신용대출 중 43%를 모바일 상품인 ‘인스턴트 렌딩(Instant Lending)을 통해 진행했으며, 규모는 전년대비 80% 증가한 10억파운드(한화 약 1조3천200억원)였다. 모바일을 이용해 비대면고객을 위한 무방문 즉시 신용대출로 현 시장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조치다.

통신 업계 한 임원은 “현재 신용등급이 1~4등급인 경우에는 제1금융권의 대출을 이용할 수 있지만 5등급부터는 제1금융권 이용이 불가능해 고금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중에서 중금리를 이용할 수 있는 약 1천200만명의 소비자들은 통신사의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10%대로 대출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결과적으로 통신 업계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재력과 기술적 노하우 그리고 고객 접촉면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되지만 실제 사업에서는 다른 사업자의 뒤치닥거리나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과감하게 공격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대비하고 있는 다음카카오를 보며 한숨을 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