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명예훼손 제3자도 삭제요청?…“정당한 비판 차단” 비난 고조

국회 토론회 “방심위, 개정 중단해야”

인터넷입력 :2015/07/20 18:02

“인터넷 게시물 피해 당사자의 신고 없이도 제3 자가 심의를 벌여 시정 조치토록 하는 개정안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삭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인터넷 명예훼손성 게시글을 제3자의 신고만으로 심의, 삭제 및 차단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심위가 추진하려는 개정안을 ‘그분 심기 옹호법’, ‘공인 비판 금지법’으로 불러야 한다는 날선 지적까지 제기됐다. 또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침해하는, 국제적 흐름에도 반하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은 20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방심위 명예훼손 제3자 요청 삭제, 누구를 위해서인가?’라는 제목으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유승희 의원실이 주관한 '명예훼손 제3자 요청 삭제, 누구를 위해서인가?' 긴급 토론회

이날 토론회는 방심위가 지난 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인터넷 게시글이 명예훼손성으로 판단될 경우 피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심의를 개시하고, 글을 삭제할 수 있도록 사전검열을 강화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상정하면서 마련됐다. .

현행 통신 심의규정 제10조 2항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방심위 개정안에는 이 내용이 빠진다. 즉 기존에는 피해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판단이 들어야만 해당 게시물을 삭제 요청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은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제3자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대통령, 고위공직자, 권력자와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 및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황창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행정심의는 지극히 사적인 다툼에 행정권이 관여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소극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신고로 심의절차가 개시되게 되면 심의건수가 대폭 증가돼 행정 부담이 가중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순혜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장은 “대통령, 고위공직자 등 공인들에 대한 비판글에 대해 제3자인 지지자들이나 단체의 고발이 남발돼 비판 여론이 신속하게 삭제, 차단될 것”이라며 “국민의 위임에 따라 공직에 있는 자가 국민의 표현을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최대한 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진 변호사는 “섹시하다는 말이 누군가에는 명예훼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명예찬양일 수 있다. 이처럼 상대적인 잣대를 국가가 판단하겠다는 것과 같다”면서 “국민의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국가가 줄이는 건 아쉽다”고 토로했다.

유승희 의원은 “최근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무한도전이 특정인에게 불쾌감을 줬다는 이유로, 또 메르스를 정치 풍자 했다는 이유로 방심위로부터 행정 제재를 당했다”며 “더 나아가 수사 권한이 없는 방심위가 제3자 신고만으로 명예훼손 판단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위헌적인 어불성설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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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방심위는 다음 회의 때 지난 9일 보류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 문제를 재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장낙인 방심위 상임위원은 “방심위원 9명 중 6명이 개정안에 찬성하고, 3명만이 반대하고 있어 시민사회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개정안이 전체회의에 올라 입안 논의가 진행될 텐데 공청회 등 여러 절차가 있는 만큼 각계각층의 의견과 뜻이 모아져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