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차 한국인 구글러의 실리콘밸리견문록

일반입력 :2015/04/29 17:20    수정: 2015/04/29 17:48

황치규 기자

읽는 맛이 있다. 저자의 진지한 고민도 묻어난다.

9년차 한국인 구글러 이동휘씨가 쓴 '실리콘밸리 견문록'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실리콘밸리와 구글의 속살을 저자만의 솔직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읽기 전만 해도 알려진 만큼 알려진 실리콘밸리와 구글인데, 새로운 내용이 더 있을까 싶었더랬다. 그런데 막상 읽고나니 실리콘밸리와 구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꽤 접하게 됐다.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실리콘밸리 얘기들을 접해왔음을 느끼게 된다.

책은 실리콘밸리의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이름이 말해주듯 초창기 실리콘밸리는 반도체의 시대였다. 돌아보면 기라성 같은 반도체 거인들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위한 뿌리를 심었다. 저자는 HP의 창업, 프레더릭 터먼과 윌리엄 쇼클리, 로버트 노이스 등 한시대를 풍미한 스토리와 초창기 실리콘밸리를 일군 인물들에 대해 재미있게 풀어냈다. 중간중간에 저자 자신의 생각도 많이 녹여냈다. 실리콘밸리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실리콘밸리 역사에 이어 혁신의 아이콘인 실리콘밸리 문화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저자의 눈에 실리콘밸리는 논과 밭이 아니라 열대우림과 같은 곳이다. 무슨일이 벌어질지 도대체 예상하기 힘든 곳이다.

열대우림에는 끊임없이 생명체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새로운 종은 대부분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종을 만들다보면 환경에 적응하는 종이 만들어진다. 열대우림에는 농부가 없다. 환경이라는 심판앞에 모두가 맨몸으로 경쟁한다. 수많은 실험끝에 대단한 놈이 나오는 것이다. 논밭처럼 구획이 나뉘지도 않고,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도 많다. 다양한 생물들이 경쟁하고 공존하면서 새로운 생명체의 자원이 된다. 열대 우림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다. 열대우림의 다양한 생물과 유전적 다양성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실리콘밸리가 수십년 동안 환경에 적응하면서 때로는 환경을 바꾸면서 최첨단 산업을 이끌어온 비결이 여기에 있다. 실리콘밸리가 열대우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에 들어섰다. 전세계가 그물처럼 연결된 세상이다. 더는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채로 생존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논밭에서 고이 기른 작물로는 열대우림의 잡초를 이길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 문화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다. 사람이 혁신의 시작이다.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것은 실리콘밸리 기업들 채용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력서 보고, 면접보고, 레퍼런스 체크하고 사람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보면 입이 쩍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기업들은 연간 120조원 이상을 구인 활동에 쓴다고 한다. 신규 직원 한명 당 평균 350만원 정도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교해 보자면, 구인 활동에 쓰는 비용이 직원 한명을 훈련하는 비용의 세배에 이른다고 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직원 교육 보다는 직원 채용에 더 투자한다는 얘기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것은 실리콘밸리도 마찬가지. '실리콘밸리 견문록'에는 높은 물가, 집값 인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양극화에 대한 저자의 우려도 담겼다.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기자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난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로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대의에 나를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첨단 기술과 담이 없어진 세계가 소득 불균형을 심화하고 중산층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여전히 기술과 열린 세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고 싶은데, 가슴 한구석에선 죄책감이 자라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구글러로서 구글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구글에선 한국 기업들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음의 내용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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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직원들을 강제로 움직이지 못한다. TGIF나 전원집합회의나 가글가이스트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리더들은 참석율을 높이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한다.

갑자기 생기는 각종 회의에 지쳐가는 한국의 월급쟁이들에게 무척이나 부러운 기업 문화가 아닐런지... '실리콘밸리 견문록'의 마지막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에게 저자가 해주고 싶은 조언들이 담겼다. 읽는 이들이 실무 차원의 팁들을 꽤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