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중립성, '초대형 케이블' 탄생 막았다

컴캐스트-TWC, 1년 2개월 만에 합병 포기 선언

일반입력 :2015/04/27 14:23    수정: 2015/04/27 15:4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직 통신 로비스트'를 진원지로 한 강력한 망중립성 태풍이 이번엔 미국 케이블 업계를 강타했다. 시장 1, 2위 업체인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케이블 간의 초대형 합병을 1년 2개월 만에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컴캐스트는 지난 24일(이하 현지 시각)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컴캐스트가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를 포기한 것은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FCC) 등의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는 거대 사업자들이 합병을 할 경우 법무부와 FCC의 승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돼 있다. 법무부는 합병이 반독점 행위에 해당되는 지 여부를 판단하며, FCC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에 초점을 맞춰 심사한다.

■ '망중립성 보호' 역풍에 결국 백기

이번 합병 무산으로 컴캐스트를 이끌고 있는 브라이언 로버츠 최고경영자(CEO)는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른다. 미국 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막강한 로비 능력을 갖고 있는 컴캐스트가 이 정도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냐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1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씨넷을 비롯한 주요 외신 보도를 중심으로 한번 되짚어보자.

컴캐스트가 지난 해 2월 452억 달러에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에 합의할 때만 해도 FCC나 법무부의 승인을 받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불과 3년 전인 2011년 단행한 NBC 유니버셜 인수 역시 큰 무리없이 해냈기 때문이다.

NBC유니버셜 인수를 관철시킨 컴캐스트 로비스트인 데이비드 코헨은 엄청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각광을 받았다.

컴캐스트가 케이블 시장 1, 2위 업체간 초대형 합병을 단행했을 땐 이런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막강한 로비력을 앞세울 경우 충분히 성사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엇을 것이다.

하지만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케이블 간의 합병이 발표된 직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망중립성 공방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특히 FCC가 지난 해 5월 급행회선 허용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망중립성 원칙을 내놓으면서 거대 기업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 망중립성 공방 불거지면서 반-거대기업 정서 커져

여기에다 스트리밍 전문업체인 넷플릭스가 일종의 상호접속인 ‘피어링 계약’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더 복잡하게 꼬였다. 엄밀히 말해 ‘피어링 계약’은 망중립성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거대 망 사업자의 횡포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망중립성을 둘러싼 공방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지난 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오픈 인터넷 규칙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인터넷 접속 시장의 독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지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은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간 합병을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또 FCC 내부에서도 이 문제는 망중립성 이슈와는 별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거대 기업이 미국 내 초고속 인터넷 접속 시장을 독식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고개를 들도록 하는 효과는 적지 않았다.

소비자연맹의 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는 델라라 데라샤니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망중립성 공방이 소비자들의 감정을 강하게 건드리면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콘텐츠 전송에 방해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면서 “정책 담당자들도 이런 정서를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케이블의 합병에 대한 법무부나 FCC의 경계심이 더 커졌다는 얘기다.

■ 톰 휠러, 초고속 인터넷 기준 상향 조정하면서 압박

통신 로비스트 출신인 톰 휠러 FCC 위원장도 거대 합병을 무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해부터 줄곧 거론되다가 올초 단행된 초고속 인터넷 기준 상향 조정 조치다.

FCC는 지난 1월 종전 4Mbps였던 초고속 인터넷 다운로드 최저 기준을 25Mbps로 높였다. 또 업로드 속도 역시 종전 1Mbps에서 3Mbps로 상향 조정했다.

언뜻 보면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망중립성이나 컴캐스트-타임워너 케이블 합병 무산과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거풀 벗겨보면 긴밀한 관계가 있다.

'다운로드 4Mbps/업로드 1Mbps' 속도를 적용할 경우 초고속 인터넷 소외 가구는 6.3%다. 하지만 이 기준을 25Mbps로 상향 조정할 경우 13.1%가 추가로 초고속 인터넷을 향유하지 못하게 된다. 순식간에 20%에 달하는 미국 가구가 정보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슈는 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관철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이 문제는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케이블 간의 합병에도 직접 관계가 있다. 종전대로 4Mbps를 적용할 경우 컴캐스트와 타임워너 케이블 합병 회사는 초고속 인터넷 시장의 약 40%를 점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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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운로드 속도 25Mbps를 적용할 경우 합병회사의 초고속 인터넷 점유율은 57%로 껑충 뛰게 된다. ‘오픈 인터넷’을 중요한 기치로 내세운 FCC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점유율인 셈이다.

씨넷은 “FCC가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25Mbps로 상향 조정할 때 이미 합병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고 분석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