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뉴스 공급, 애플에 굴복한 음반사 복사판?

NYT 간부 "아이튠스에 음악 공급하던 때와 비슷" 주장

일반입력 :2015/03/31 16:56    수정: 2015/03/31 17: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세계 언론계는 12년 전 음반업계가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이 페이스북에 콘텐츠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기 저기서 술렁이고 있다. 특히 언론계 종사자나 언론 연구자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뉴욕타임스 독자개발 부문 고위 간부가 애플이 아이튠스를 처음 내놓을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맷 여로우(Mat Yurow) 뉴욕타임스 독자개발 부문 부국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페이스북에 뉴스를 공급한다는 것은 아이튠스가 처음 등장할 당시 음반업계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최근 벌어진 상황부터 한번 살펴보자. 페이스북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사와 콘텐츠 공급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은 지난 23일 처음 알려졌다. 그 같은 사실을 보도한 것은 뉴욕타임스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페이스북이 ‘끊김 없는 경험(seamless experience)’과 ‘로딩 속도 향상’을 위해 자신들의 플랫폼 내에 주요 언론사 기사를 호스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였다. 쉽게 설명하면, 한국의 포털 뉴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추진한다는 얘기였다.

여기엔 뉴욕타임스 뿐 아니라 버즈피드,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업체들이 콘텐츠 제휴에 참여할 가능성이 많다는 게 뉴욕타임스 보도의 골자였다.

맷 여로우의 글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런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앞 부분에 이 글은 나 자신의 의견일 뿐이며, 뉴욕타임스의 관점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긴 했지만 페이스북 파트너로 참여할 것이 확실시되는 뉴욕타임스 고위 간부가 ‘정면 반박’하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2003년 4월 오픈한 아이튠스에 5대 음반사 모두 참여

일단 여로우의 논리를 한번 따져보자.

애플이 음악 시장에 뛰어든 것은 2001년 8월 경이었다.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시장에 고개를 들이 밀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애플이 음반 업계를 위협할 것이란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건 2003년 4월 28일이었다. 이날 애플이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공식 오픈한 것. 단말기에 서비스까지 결합하면서 단기간에 음악시장 강자로 떠올랐다.

보유량 20만곡으로 시작한 아이튠스는 오픈과 동시에 곡당 90센트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앞세워 순식간에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 무렵 월마트 등에서 유통되던 CD 앨범 한 장이 20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이었다. 게다가 원하는 곡만 골라서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런 장점에 힘입어 아이튠스는 서비스 첫 주에만 100만 곡을 판매한 데 이어 서비스 개시 5년 만에 판매량 40억 곡을 돌파했다. 그 기세를 몰아 2013년에는 누적 판매량 250억 곡을 돌파했다.

물론 이런 바람이 가능했던 건 그 무렵 시장에는 이미 아이팟이 상당 부분 보급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팟은 출시 10개월 만에 판매량 6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2003년 아이튠스를 선보일 무렵엔 100만대 가량이 보급돼 있었다.

초기에 음반회사들은 왜 아이튠스에 곡을 공급했을까? 이 부분은 여로우의 주장을 따라갈 것 없이 그냥 추론해 볼 수 있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당시 만연돼 있던 디지털 음악 불법 복제 관행이었다. 냅스터를 비롯한 불법 서비스가 만연돼 있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이긴 하지만 수수료 30%를 떼고 판매가겨의 70%를 수익으로 가질 수 있었던 점은 분명 긍정적인 고려가 가능한 부분이었다.

■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협상력

또 다른 변수는 역시 스티브 잡스였다. 당시 잡스는 음반업계 관계자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스티브 잡스가 음반사와 협상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음반업계는 MP3 파일 불법 복제로 큰 타격을 입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IT 업계 쪽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는 꾸준하게 협상을 진행하면서 “불법 복제가 판치는 건 합법적인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이런 논리가 먹혀들면서 유니버설, 소니, EMI, BMG, 워너뮤직 등 5대 음반사를 모두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아이튠스가 시작과 동시에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5대 음반사를 모두 파트너로 확보한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이 부분이 결국은 음반사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다. 2000년대 말이 되자 주요 음반사 임원들은 아이튠스의 가격 모델에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애플 측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돼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무렵엔 이미 디지털 음악 시장의 주도권이 애플 손에 넘어간 뒤였다. 결국 음반사들은 2010년까지 음악 판매가 32% 가량 줄어드는 걸 고스란히 두고볼 수밖에 없었다.

자, 이 대목에서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보자. 당시 음반회사들은 왜 애플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을까? 왜 디지털 혁명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나가지 못했을까?

결과론이긴 하지만 당시 음반회사들은 달라진 환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끼워 팔기’ 관행에 대한 독자들의 잠재된 불만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끼워팔기란 말이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된다. 당시 음악 팬들은 원하는 곡을 듣기 위해선 음반을 구매해야 했다. 좋아하는 한 두 곡을 위해 음반 전체를 사야 했던 것. 결과적으론 몇몇 히트곡에 끼워서 강제 판매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 비즈니스 모델의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하는 곡만 담아서 들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면서 고객들은 또 다른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 하지만 음반회사들은 이런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장 벌어들이는 수익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이느라 제대로 된 혁신을 꾀해보지도 못했다.

■ 의외로 비슷한 신문업계와 음반업계

여기까지 배경을 깔고 이젠 저널리즘 영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신문의 비즈니스 모델 역시 아날로그 시대 음반 판매업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결과적으론 끼워팔기 형태였던 것. 신문을 아주 열심히 읽는 몇몇 열성 팬들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기사 몇 건만 훑어본다. 하지만 그럴 때도 신문 전체를 구매해야 했다.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볼 수 있었던 건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스포츠신문 가판 시장이었다.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박찬호, 박세리 선수의 성적에 따라 신문 가판 판매량이 넘실거렸다. 요즘 포털 뉴스에 따라 트래픽이 출렁이는 언론사 상황과 비슷하다.

외도는 여기까지만 하고 다시 여로우의 주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이 페이스북 플랫폼에 올라타는 건 12년 전 애플에 음악을 공급한 음반회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과 다름 없다는 게 여로우의 주장이다. 지금 당장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수익을 좀 더 올릴 순 있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페이스북 종속’만 가중될 것이란 얘기다.

여로우는 그렇게 된 이후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그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위해 최근 벌어진 몇몇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많은 미국 언론사들은 트래픽의 50% 가량이 페이스북 통해 들어온다. 하지만 2013년 페이스북이 알고리즘 바꾸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페이스북이 양질 콘텐츠 노출 빈도 높이고 단순 반복 콘텐츠 제한하겠다는 명분을 내건 알고리즘 개편 이후 주요 언론사들의 트래픽이 모두 줄어들었다.

소셜 뉴스 앱을 둘러싼 소동 역시 비슷한 사례로 꼽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1년말 몇몇 언론사들과 손잡고 소셜 뉴스 앱을 만들었다. 이 때 참여한 대표적인 언론사가 워싱턴포스트였다. 소셜 앱을 만든 직후 워싱턴포스트 트래픽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선사한 트래픽 폭탄은 오래 가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알고리즘을 바꿔버린 것. 이후 소셜 앱을 쓸 경우 프라이버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면서 순식간에 거품이 가라앉았다.

최근엔 페이스북이 언론사들에게 동영상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그대로 올리도록 종용하고 있다. 유튜브 링크 대신 페이스북에서 그대로 재생할 경우 훨씬 더 낫지 않겠냐는 게 페이스북이 내건 명분이었다.

뉴스 제휴는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들이 이 논리에 적극 참여하면서 뉴스 시장의 기본 문법 자체가 확 달라질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서양의 많은 독자들이 페이스북에서 뉴스 소비하는 데 익숙해진 뒤 알고리즘이 확 달라질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얘기다.

■ 과연 페이스북은 음반업계 강타한 '애플의 현현'일까

페이스북 뉴스 서비스는 ‘음반시장 파괴자’였던 아이튠스의 데자뷰라는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일단 상황은 비슷하다. 음반회사들이 아이튠스 등장 당시 ‘건별 판매’란 새로운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사들 역시 디지털과 모바일 혁명의 주역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음반회사들이 ‘아날로그 음반’ 상품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사들 역시 ‘신문’이라는 패키지 상품에 끝까지 집착했다. 뒤늦게 디지털 플랫폼에 눈을 돌리긴 했지만 그곳은 이미 페이스북 세상이 된지 오래였다. (한국은 포털 세상!)

자, 이런 상황에서 언론계 대표 주자인 뉴욕타임스가 페이스북 플랫폼에 완전히 올라탈 경우 어떤 일이 생길까? 당연한 얘기지만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도 뉴욕타임스의 뒤를 따를 가능성이 많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을 판단하는 건 조금 애매하다. 플랫폼과 콘텐츠 중 어떤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는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버즈피드처럼 ‘콘텐츠 중심 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라면 페이스북과의 제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버즈피드에겐 콘텐츠 자체가 상품인 동시에 수익 모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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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론사들도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가 됐다. 과연 ‘정주민의 삶’을 버리고 ‘디지털 노마드’를 택할 것이냐는 질문. 쉽지 않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 지는 각자 선택할 부분이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할 부분은 있다. 이젠 ‘노마드의 시대’가 됐다는 건 당위 명제나 다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노마드적인 삶’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정주민의 삶’을 통해 벌었던 부분을 상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많은 언론사들의 고민임과 동시에 해결 과제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