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뒤흔든 망중립성, 핵심 쟁점은 뭘까?

타이틀2 재분류가 이슈…철도시대 커먼 캐리어 개념도

일반입력 :2015/02/27 10:07    수정: 2015/02/27 14:00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타이틀2와 커먼 캐리어가 뭐기에?

오늘 외신을 살펴본 사람들은 몇 가지 생소한 단어를 접했을 겁니다. '타이틀2'와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란 단어입니다. IT 쪽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은 망중립성(network neutrality)이란 말도 낯설었을 겁니다.

일단 팩트부터 챙겨볼까요?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6일(현지 시각) 톰 휠러 위원장이 제안한 망중립성 원칙을 3대 2로 통과시켰습니다. 휠러 위원장의 망중립성 골자가 인터넷 사업자(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하면서 '커먼 캐리어' 의무를 지게 만든다는 겁니다.

갑자기 생소한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와서 당황하셨나요? 지금부터 그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왜 미국의 인터넷과 통신사업자들이 이 이슈를 놓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 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커먼 캐리어는 동로마 시대 마을의 유일한 여관 등에도 적용

두 단어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망중립성에 대해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망중립성이란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팀 우(Tim Woo) 교수입니다. 이 분.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교수로 상당히 진보적인 학자입니다.

팀 우 교수는 2003년에 처음 통신시장 규제 원칙으로 망중립성이란 단어를 제안합니다. 당시 그가 내세운 원칙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단대단 원칙(end-to-end principle)과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가 바로 그것입니다.

‘단대단 원칙’이란 망의 양 끝단에 있는 이용자에게 직접적 선택권 준다는 원칙입니다. 한 마디로 망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율적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준다는 원칙인 셈이지요.

이 원칙과 함께 팀 우가 제안한 것이 바로 ’커먼 캐리어’입니다. 이게 지금부터 우리가 얘기하게 될 주제이지요.

그런데 커먼 캐리어는 팀 우가 처음 얘기한 건 아닙니다. 이 단어 연원이 생각보다 멀리까지 나아갑니다. 동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이 쪽 전문가들의 다수 학설입니다. 이 원칙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마을에 있는 유일한 여관, 항만, 외과의사 등은 합리적 가격에 서비스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독점 사업자의 횡포를 규제하기 위한 원칙인 셈입니다.

커먼 캐리어 원칙은 미국 초대 개척 시대인 19세기에도 중요하게 적용됐습니다. 물론 그 때는 통신사업자를 규제하는 원칙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도 사업이었습니다. 철도를 통하지 않으면 각종 물류 사업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통신망 못지 않은 중요한 국가 기간망이었지요.

그래서 미국 정부는 철도를 비롯해 증기선, 전신, 전화 등에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합니다. 한 마디로 횡포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요. 커먼 캐리어 의무에 따라 철도 사업자들은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거나, 경쟁 사업자의 통행을 막는 등의 횡포를 하는 것이 금지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또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상호접속이지요. 중소 철도 사업자들이 요구할 경우엔 대륙 횡단 철도와 연결해주도록 한 겁니다. 그래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996년 통신법 제정하면서 4개 타이틀로 사업 분류

이 때까지만 해도 FCC의 전신인 ICC는 철도 사업 규제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전신, 전화 같은 것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전국 사업자로 자리잡은 AT&T가 횡포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한 것인 미국의 1934년 통신법입니다. 1996년 의회가 통신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무려 62년 동안 적용된 법입니다. 이 법과 함께 탄생한 것이 바로 FCC입니다.

1934년 통신법은 통신 관할권을 확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연방정부는 주 사이를 관통하는 전화를 관할하는 반면 주 정부는 주 내의 전화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연방정부는 무선통신과 인터넷, 주 정부는 케이블TV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갖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통신 쪽에도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시내외에서 공중에게 음성 서비스 제공 사업자들은 부당한 차별이나 우대 없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요금으로 서비스하도록 하는 의무가 부과됐습니다.

자, 이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1996년으로 갑니다. 이 해에 클린턴 행정부는 말 많던 1934년 통신법을 개정하게 됩니다. 달라진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유선전화와 케이블TV의 시대였습니다. 인터넷은 아직 법 규정화하기 쉽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1996년 통신법은 사업 분류를 크게 네 가지로 규정했습니다. 타이틀1, 2, 3, 4입니다. FCC의 망중립성 원칙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타이틀2는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겁니다.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이틀1은 정보 서비스입니다. FCC는 타이틀1에 대해선 부수적 관할권만 갖게 됩니다.

타이틀2에는 유선 사업자가 포함돼 있습니다. 타이틀2에 소속된 사업들은 강력한 커먼 캐리어 의무를 지게 됩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및 무선전화는 타이틀3로 규정돼 있으며, 타이틀4에는 케이블 사업자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케이블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할 경우엔 타이틀2를 적용받게 되겠지요.

■ FCC, 2002년 인터넷을 타이틀1로 분류

이번엔 FCC의 인터넷 규제 역사를 한번 살펴볼까요?

1996년 통신법이 제정된 이후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자리잡은 겁니다. 당연히 FCC는 새롭게 떠오른 인터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2002년 케이블 모뎀 규칙(Cable Modem Declatory Rule)이란 것을 내놓습니다. 당시 FCC는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타이틀1으로 분류합니다. 반면 디지털 가입자 회선(DSL)은 타이틀2 통신 서비스라고 교통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같은 인터넷 서비스인데, 서비스 방식에 따라 사업 성격이 달라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FCC는 2005년에 DSL도 타이틀1으로 재분류하게 됩니다. 또 2007년 3월엔 무선 인터넷 접속 서비스도 정보 서비스로 분류합니다.

여기서부터 분쟁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지난 해 연방항소법원 판결 이후에 많은 미국 언론들은 FCC가 처음에 분류를 잘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지만, FCC의 정책 기조를 보면 꼭 그렇게 비판할 것만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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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는 초기 사업에 대해선 가급적 규제를 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규제를 하는 것이 좋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터넷 초기에 FCC가 ISP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했다면 지금처럼 인터넷이 거대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자, 대충 정리가 되셨나요? 망중립성 원칙이란 건 단순히 망 차별 하면 안 돼란 수준의 간단한 논쟁이 아닙니다.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꽤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과 만나게 돼 있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