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첫 女 인사담당 임원 "앵무새는 NO"

女氣모여라 올해 첫 강연자 삼성전자 이영순 상무

일반입력 :2015/02/11 13:28    수정: 2015/02/12 18:30

정현정 기자

“픽업아티스트가 쓴 책으로 연애를 배우면 모쏠(모태솔로)을 면치 못합니다. 취업도 마찬가지죠. 면접관이 알고 싶은 것은 취업시장에 돌아다니는 면접족보를 통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입니다.”

이영순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상무가 10일 삼성생명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여기(女氣) 모여라’ 강연에서 취업준비하는 여성들에게 던진 첫 번째 팁이다. 이 상무는 올해 여기모여라의 첫 연사로 등장해 300여명의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조언을 건넸다.

“신입사원 면접장에 들어가 보면 해마다 유행과 트렌드가 있습니다. 어느 해에는 여러 명의 지원자가 ‘저는 에스프레소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더라구요. 그 해 모범답안으로 공유된 답변이었겠죠. 삼성은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을 원하지, 절대 한 가지 유형의 사람을 채용하지 않습니다.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앵무새가 되지 마세요. 말하는 연습이 아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이영순 상무가 이날 강연을 위해 최근 삼성전자에 입사한 수 백명의 신입사원들을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취업 선배들은 공통적으로 “스펙쌓기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고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이 상무는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나를 다양성에 노출시킬 것을 권했다.

“요즘 대기업에 입사하는 친구들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생각도 비슷하게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것은 생각의 다양성입니다. 의도적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 하고 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생들을 보면 뭔가 단박에 내가 좋아하는 내꿈을 머릿속에서 고민을 해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꿈은 간접 경험이라도 부딪혀볼때 찾아지는 거예요.”

이 상무는 삼성그룹의 인사 분야 첫 여성 임원이다. 지난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3년 간 인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자율출근제’, ‘원격근무제도’, ‘창의랩(Lab) 제도’ 등을 만든 주역이다. ‘난임휴가제’, ‘모성보호제도’, ‘직장 어린이집 증설’ 등 여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제도도 모두 이 상무의 손을 거쳤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삼성에 입사하기 전 이 상무는 요즘말로 애가 둘이나 딸린 ‘경단녀(경력단절녀)’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작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드라마 ‘미생’에서 여자 신입사원인 안영이가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도피하듯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유학도 떠났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박사과정은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파트타임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국내에서 MBA 과정을 밟던 차에 삼성에서 입사제의를 받게 됐다. 동기들보다 다섯살이나 많은 나이에 과장 1년차로 늦깎이 입사를 했지만 지난 2013년 승진 연한을 1년 앞당겨 상무로 발탁 승진될 정도로 이 상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이미 삼성에 입사하기 전 신입사원들이 할 만한 방황과 고민을 모두 거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다고 이 상무는 설명했다.

“시행착오를 덜 거치고 자기의 목표를 빨리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인생은 장기적으로 관리해야하는 포트폴리오'라는 것입니다. 매순간 모든 요소를 만점으로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자기가 가진 총 자산 내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집중할 부분에는 집중하고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면서 그에 대해서는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 롱런의 노하우입니다.”

그는 이날 한 자리에 모인 여성들에게 사회생활에서도 여성이 가진 다양성의 장점을 살릴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어릴 때부터 마이너리티(소수자) 의식을 가지고 성장하는 여성들이 근본적으로 다양한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모두가 생각하는 뻔한 생각보다 여성이 가진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분명 강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저는 여자라 정치엔 소질이 없다’는 후배들에게 저는 ‘정치가 뭔데?’라고 되묻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정치는 ‘사람들 간 발생하는 갈등과 다툼을 조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활동’입니다. 여성은 본래 의미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거죠. ‘붕당정치를 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 이게 저의 조언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무가 말하는 ‘일 잘하는 후배’란 어떤 사람일까. 이는 현재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조건에 부합하려는 취업생들과의 궁금증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제가 주니어급 사원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바는 지식의 바탕을 둔 상상력입니다. 아무런 바탕도 없이 아이디어를 막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과 겸비가 됏을때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학생 일 때는 배운 것을 충실히 소화하기만 하면 A학점을 받을 수 있지만 직장에서는 상사가 시킨 일을 시킨대로만 100%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그저 최소한의 평가 밖에 없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의문이 생겼을 때 최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대안을 생각해보고 장단점까지 분석한 다음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모여라는 삼성그룹 여성 임원들이 여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들과 만나 경험담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다. 2013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시작으로 지난 2년 간 총 8회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