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음란물 단속, 국가는 뭐하나?”

기술적 조치 불가능…“형사처벌→행정처벌”

일반입력 :2014/12/19 07:25    수정: 2014/12/19 11:35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기본적으로 필터링 프로그램이 찾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의 역할도 있다.”

최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아동·청소년 음란물 공유 방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자 인터넷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유통자 책임에 관해 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온라인서비스사업자 등이 차단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분명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형사 처벌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서 ‘정보유통자 책임의 국제적 흐름과 국내 규제 현황’이란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를 비롯해 법무법인 지향의 남희섭 변리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현욱 박사·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민식 정책실장·다음카카오 오근숙 대외협력실 차장이 참석했다.

먼저 박경신 교수는 항공사와 선사들이 각각 바르샤바조약과 상법에 따라 책임을 제한받는 것처럼, 정보유통자에게도 자유를 악용한 불법 행위의 책임을 제한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인터넷 소통의 공간을 개설한 사람에게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침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인터넷을 죽일 것”이라면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걸러내는 기술적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일반적 감시의무는 감청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발생할뿐더러 인터넷 본질에 있어 충돌이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남희섭 변리사는 유럽연합 전자상거래 지침을 들어 ‘일반적 감시 의무’와 ‘일반적 조사 의무’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백만 개의 사이트나 웹 페이지를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안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 변리사는 유럽연합 전자상거래 지침 2003년 보고서를 근거로 “결국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부담은 이용자에게 더 많은 비용이 부과되는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며 “불법·유해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하면서 합법 정보는 차단하지 않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전현욱 박사는 현실적인 기술적 조치가 어렵고 책임 제한의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해 무제한적 자유 허용이 정당한가”라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온라인서비스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의무가 부과되고 기술적 조치의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전 박사의 생각이었다.

전현욱 박사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는 구글도 이메일에서 찾아 신고를 한다. 최소한 가능한 분야까지 해야하지 않을까”라면서 “해시값 데이터베이스화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차단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최민식 실장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가권력이 행사해야할 역할을 사업자에게 떠넘긴 법이라는 것.

최 실장은 “누구나 손쉽게 막을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데 안 했다면 문제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규제를 수행하라는 건 과도하다”면서 “구글도 FBI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데 우리는 사업자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국가가 빠져 있다. 국가가 명확히 역할을 해주고 협조 의무를 부과하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석우 대표의 피의자 신분 경찰 조사의 당사자인 다음카카오의 오근숙 차장은 앞서 발표자들의 얘기를 종합, “아동·청소년 보호라는 공익과 이용자 사생활 보호 사이에서 본질적인 고민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또 그는 카카오그룹을 통해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공유하다 적발된 16명 중 15명이 아동·청소년이었다는 점을 들어, 이들이 어떤 맥락에서 음란물을 주고 받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이제는 UCC처럼 스스로 직접 찍어 올리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 같은 원인에 보다 초점을 맞출 필요도 있다는 얘기였다.

오 차장은 “연령 식별 문제뿐 아니라 이제는 해당 영상물이 어떤 맥락에서 유통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면서 “불법성 판단을 정보 매개자에게 모두 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가 됐든 국가나 수사기관이 해야할 역할이 분명 있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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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12년 9월 경찰청이 아동·청소년 음란물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이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보가 공유되고 정리됐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음란물을 계속 생산하는데 어떻게 방지할까를 놓고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아동·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기업에게 주어지는 형사처벌은 행정처벌로 전환돼야 한다”면서 “형사처벌이 부과될 경우 기업들은 면책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만 하게 되는 문제를 낳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