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국내선 “신중해야” 한목소리

일반입력 :2014/06/16 16:53    수정: 2014/06/16 16:53

국내에서 ‘잊혀질 권리’ 법제화 논의가 시작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행 법으로 일부 반영할 수 있지만, 전격적인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잊혀질 권리는 그간 국내의 경우 망자에 대해 디지털 유산 처리 정도로 논의가 오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스페인의 한 변호사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면서 전세계적으로 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ECJ 판결에 따르면 원데이터 삭제는 아니더라도 검색 결과에 대한 삭제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한다. 구글은 이에 지난달부터 EU 28개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개인정보 삭제 요청을 받고 있다. 5일간 4만건이 넘는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일부 조항이 잊혀질 권리에 대해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상당 부분에서 법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별도 법제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잊혀질 권리, 국내 법 적용한다면?

1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한 ‘2014 온라인 개인정보보호 컨퍼런스’에 발제자로 참석한 법무법인 민후의 김경환 변호사는 ECJ의 판결을 국내법에 적용해 비교 설명했다.

우선 검색엔진이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것인지에 대한 여부다. 구글은 검색엔진이 정보의 선택 없이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별도 데이터에 대한 처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경환 변호사는 이에 대해 “검색 엔진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해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것”이라며 “개념 정의는 보다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구글이 개인정보에 대해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조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자에 해당한다.

해외 법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법 적용이 안된다는 점에서는 구글의 스트리트뷰나 애플의 위치정보 수집에 대해 과징금,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다만 이용자 규정에 대해서 판례의 해석과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ECJ 판결 당시 구글은 “검색엔진 운영자에게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를 철회하라고 유구하는 것은 웹사이트 발행자, 인터넷 이용자, 검색엔진 운영자의 기본권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김 변호사는 “구글 스트리트뷰 사안에서 구글이 불법적으로 수집한 개인정보의 정보주체가 실제로 구글 이용자인지 방통위가 엄격하게 따지지 않았다”며 “(잊혀질 권리에 대입하기 위해서는) 이용자 규정을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귝 정보통신망법으로 볼 경우 ‘이용자성’을 해결하고 삭제나 처리 정지에 관한 새 조문이 필요하며, 개인정보보호법 제36조, 제37조의 삭제 처리정지권이 ECJ의 잊혀질 권리 근거 조문으로 볼 수 있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국내 도입 가능하지만, 신중해야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발제자, 토론자 모두 잊혀질 권리가 일정 수준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전격적인 도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나왔다.

발제를 맡은 정찬모 인하대 교수는 “EU 기본권 헌장은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보호만 규정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도 규정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며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생활침해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권 운용을 재점검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유럽에서 실제 삭제 요청이 법원의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결국은 법원이 의도한 것보다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잊혀질 권리를 조장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 것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백수원 박사는 “어느 범위까지 잊혀지 권리를 인정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먼저 다뤄야할 문제”라며 “법안이 마련된다면 삭제 요청 대상에 게시자나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에 반하는 경우 예외 사유를 명기해 다른 기본권의 보호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상직 변호사는 “잊혀질 권리가 중요하지만 굉장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지켜져야 할 수준이며 도입하는 것은 개인 식별 정보가 아니라 표현물 정도”라며 “기존 법령에서 보호되지 않는 정도에서 보충성이 되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미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는 입장이다. 김태열 SK컴즈 팀장은 “기존 법을 충분히 활용하고 사업자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에 대한 무분별한 삭제 요구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스페인 변호사의 사례처럼 언론사에 대해 잊혀질 권리를 요구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면서 법적 대상에서 표현물과 제3자의 평가에 대해서도 다룰 것인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