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 IoE 전략에 담긴 3가지 메시지

오라클과 경쟁, VM웨어 타도, IBM 지향

일반입력 :2014/05/29 15:22    수정: 2014/05/29 15:56

지난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스코라이브2014의 핵심 키워드는 ‘만물인터넷(IoE, Internet of Everything)’ 혹은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이었다.

시스코는 IoT 단말기부터 중앙의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모든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시스코의 여러 발표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스코에게 맡겨달라”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시스코 태생적 본류인 네트워크를 보면, 시스코의 IoT에 대한 자신감은 당연해 보인다. 시스코는 단말기 영역인 액세스(엔드포인트) 네트워크-필드에어리어 네트워크-코어 네트워크-데이터센터 등으로 IoT 네트워크 계층을 구분하고, 모든 계층에 대한 기술력과 제품을 보유했다고 설명했다.

시스코가 IoT 네트워크 표준 아키텍처라 부르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하다. 현존하는 네트워크 솔루션업체 가운데 시스코처럼 아키텍처 전체를 자신의 기술력으로 채울 수 있는 곳은 화웨이 외엔 딱히 없다. 네트워크에 있어선 경쟁 불허로 보인다.

■경쟁, 오라클과 시스코 포그컴퓨팅

시스코의 IoT 메시지에서 먼저 주목해볼 점은 포그(Fog) 컴퓨팅이다.

IoT 단말기 집단에서 중앙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상황을 상정할 때 1차적으로 데이터를 모아줄 존재가 필요하다. 시스코는 포그를 통해 디바이스의 데이터를 모으고, 즉시 활용해야 할 데이터는 중앙으로 보내지 않고 그 자리서 분석해 즉각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상에 낮게 깔리는 안개처럼 IoT 데이터를 생성기에 가까운 위치에서 분석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IoT 분야의 게이트웨이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 IoT 디바이스에서 데이터를 1차적으로 모아 중앙의 데이터센터로 보내는 전달자의 역할이다. 게이트웨이는 데이터를 유실없이 중앙으로 보내는 1차적인 전달자이면서, 1차적인 데이터통합과 분석도 함께 한다.

IoT 게이트웨이는 유로테크, 어드밴텍 등 사물통신(M2M) 전문업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된 개념이다. 시스코는 고도의 분석기능을 더했다는 점에서 게이트웨이와 포그컴퓨팅을 차별화를 시도한다.

포그컴퓨팅처럼 게이트웨이에 분석 역량을 집어넣겠다는 시도는 오라클에도 있다. 오라클은 컴플렉스이벤트프로세싱(CEP) 기술을 게이트웨이에 포함시켜, 데이터 속의 이벤트를 감지하자고 제안한다. 시스코와 오라클의 게이트웨이를 둘러싼 경쟁구도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차이는 있다. 포그 컴퓨팅은 라우터 영역에 있다. 시스코는 포그컴퓨팅의 분석을 라우터제품군 운영체제인 'IOS'에 리눅스를 결합한 ‘IOX’ 플랫폼에서 하게 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리눅스 커널이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서드파티 리눅스앱 개발사가 분석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코 자체적으로는 패킷 분석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데이터 흐름 속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캐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시스코는 분석 기술에 대해 그 정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 오라클의 게이트웨이는 범용의 소형 컴퓨팅 장비다. 유선망으로 데이터를 보낸다는 점 외에 소형 서버에 데이터통합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이 들어간다. 오라클이벤트프로세싱(OEP)과 버클리데이터베이스(DB)가 핵심이다. ARM, 인텔 아톰 등의 CPU에서 구동하고 256MB 메모리만 갖춘 하드웨어면 자바임베디드스위트와 OEP를 활용할 수 있고, 중앙의 데이터센터 영역까지 동일한 환경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오라클의 설명이다.

포그컴퓨팅은 오라클 외에도 라즈베리파이, 아두이노 같은 오픈하드웨어 진영과도 경쟁관계다. 시스코의 포그는 라우터에 게이트웨이 역할을 쥐어주기 때문에 전체 아키텍처 상에서 IoT 게이트웨이 전용장비에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오늘날 IoT 영역에서 라즈베리파이나 아두이노, 인텔 갈릴레오 같은 초저가 하드웨어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의 시스코라이브2014 첫날 기조연설에서 이뤄진 IoT 시연에 포그는 잠깐 언급된다. 도시의 대중교통에서 포그는 센서 데이터를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라우터 대신 또 하나의 시스코 장비가 수행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폐쇄회로TV에서 활용되는 서베일런스 IP카메라가 게이트웨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오픈하드웨어의 자리를 시스코 장비로 채우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타도, VM웨어와 ACI

시스코 IoT의 또 다른 축은 애플리케이션중심인프라(ACI) 아키텍처다. 시스코 ACI는 정책 기반 컴퓨팅을 실현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솔루션이다. 인프라는 구성요소별로 공통의 풀로 만들어 준비해놓고, 애플리케이션에 사전 정의된 정책에 따라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보안 등을 할당, 관리해주는 정책서버SW와 네트워크 장비로 이뤄졌다. 애플리케이션정책컨트롤러(APIC)란 정책관리SW, 넥서스9000 스위치다.

APIC는 애플리케이션에 시스템 자원을 할당하고, 관리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서비스 담당자는 물론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보안, 운영조직이 공통으로 활용하는 플랫폼 역할도 한다. 시스템 담당자들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방화벽 등의 인프라를 서비스풀 형태로 갖춰놓는다. 그리고 애플리케이션 담당자가 APIC 관리콘솔에서 자신이 구축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맞게 각 콤포넌트를 드래그앤드롭하고 네트워크 연결, SLA, QoS, 로드밸런싱, 보안정책 등 원하는 요구조건을 선택하면 이후 인프라 단계의 구축과 설정은 자동으로 이뤄진다.

ACI는 IoT의 중앙에 클라우드 컴퓨팅이 있다는 점에서 IoT와 관련된다. IoT 환경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의 효율적이고 민첩한 운영이 필요한데, ACI가 그 촉매제이자 핵심축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시스코는 ACI를 비욘드 SDN이라 부른다. 데이터센터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네트워크 영역에서 나온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이란 개념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고 ACI가 SDN 솔루션에 비해 총소유비용(TCO)을 70%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SDN 구현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시스코가 ACI와 비교하는 SDN은 단 한 곳이다. 2012년 니시라를 인수하며 SDN제품을 손에 쥔 VM웨어다.

VM웨어는 니시라의 SDN기술을 NSX란 이름의 제품으로 내놓고,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C)란 캐치프레이즈까지 내걸었다. VM웨어는 NSX를 이용하면 물리적 네트워크 장비에 상관없이 클라우드를 위한 네트워킹을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스코와 VM웨어는 가상화, 클라우드의 시장활성화 속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시스코가 유니파이드컴퓨팅시스템(UCS)과 넥서스 스위치를 가상화 환경을 위한 최적의 장비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건 VM웨어 V스피어 가상화의 시장 장악력에 편승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두 회사는 VCE란 합작사까지 세웠다.

하지만 VM웨어 NSX를 통해 네트워킹 시장에 진입하자 시스코는 이빨을 세웠다.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존 챔버스 회장은 내 계획은 가장 큰 위협 대상인 VM웨어가 이끄는 신기술을 부수는 것(crush)이며 현재 잘 되고 있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내뱉어 대립각을 세웠다.

VM웨어가 NSX를 내놓고, HP, 오라클, IBM 등이 SDN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작년, 시스코는 SDN 제품으로 분류할 만한 게 없었다. 이에 메릴린치가 시스코의 투자등급을 하향조정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올해 2월 나온 ACI는 SDN시장에서 시스코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지향, IBM식 서비스사업 모델

시스코가 그동안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네트워크라는 독특한 성격의 IT기술 덕이었다. 기업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프로젝트와 네트워크 프로젝트는 줄곧 별도로 진행됐다. 시스템통합(SI)과 네트워크통합(NI)가 따로 존재하는 가운데, 시스코는 자신의 장점을 100% 활용했다.

그러나 IoT 시대에서 기업의 프로젝트는 네트워크와 컴퓨팅은 하나로 뭉뚱그려졌다. 시스코는 변화의 시점에서 네트워크 역량을 가진 통합 솔루션 업체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IoT에 대해 시스코는 전반적인 인프라에 대한 컨설팅부터 실제 구축, 운영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비즈니스 측면의 컨설팅까지 제공할 기세다.

컨설팅과 IT솔루션을 결합해 성공한 회사는 IBM이다. 시스코가 현재 지향하는 모델은 IBM의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GBS)와 글로벌테크놀로지서비스(GTS)에서 수행하는 서비스 사업형태다.

시스코라이브2014에서 시스코는 바르셀로나, 이스라엘 등을 들며 도시 단위의 IoT를 자랑했고, 제조/에너지/리테일 등 산업단위의 IoT 사례를 전시하고, 설명했다. 에반젤리즘의 성격을 넘어서 비즈니스 컨설팅부터 시작되는 대규모 IT프로젝트를 꿈꾸는 모습이다.

신기하게도 현재 시스코와 IBM은 치열한 경쟁 상태가 아니다. IBM도 IoT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x86서버 사업과 네트워킹 사업을 한꺼번에 레노버에 매각한 탓에 시스코와 I대1로 맞붙는 전선이 잘 형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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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의 SI 역량도 아직 의문부호로 남아있다. 시스코는 채널 파트너에 100% 의존하는 벤더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시스코의 채널 파트너는 NI와 가상화, 클라우드, 협업, 보안 등 일부 영역에 쏠려있다. 통합적인 대규모 IT프로젝트 진행에 나서기에 시스코 파트너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스코는 지금 파트너 정책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모든 IT인프라에 대한 컨설팅, 구축, 관리, 운영 역량을 파트너가 갖게 될 때 IBM을 지향하는 시스코와 IBM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