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SW 기업인의 조용한 컴백

두번째 도전 나선 김기완 선재소프트 대표

일반입력 :2014/05/21 17:53    수정: 2014/08/31 16:22

황치규 기자

SW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에게 김기완이라는 이름은 좀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국산 DB 업체 알티베이스로 대표로 있다가 4년여전, 회사를 나온 사람이라는 부연 설명을 붙여줘도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가 지금 뭐하고 지내는지로 넘어가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다.

DB로 유명한 한국오라클 출신인 김기완 대표는 99년 알티베이스를 창업한 뒤 인메모리DB 시장을 개척했고 이후 오라클의 심장인 디스크 기반 관계형 DB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인메모리DB와 관계형 DB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DB를 내놓으며 알티베이스를 국내 대표적인 SW업체 반열에 올려놨다.

그러던 20009년 11월 그가 돌연 사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사를 성장시킨 주역이었고,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였기에 업계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본인은 침묵했지만 주변에선 상장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대주주와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들이 돌았다. 김 대표는 알티베이스를 나와서도 알티베이스 얘기를 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했다.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김기완 대표는 알티베이스를 나온뒤 2010년 선재소프트라는 SW회사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계속 회사를 운영해왔다. 공식적인 공백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김 대표가 선재소프트를 세우자 알티베이스 출신 직원들도 다수 합류했다.

김 대표는 선재소프트 창업 후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IT분야에서 기자들과도 두루 소통하고 지냈기에 연락만 하면 PR할 기회가 있었을텐데도 김 대표는 조용하게 제품 개발과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데 주력해왔다. 창업 자금이 넉넉했거나 대규모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어서 제품 개발 중 그때그때 품을 팔아 SI 프로젝트도 뛰었다고 한다.

그렇게 4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김기완 대표는 빚지지 않고 회사를 운영해왔고 최근에는 신제품 개발도 마무리했다.

선재소프트의 주특기는 예상대로 인메모리 DB다. 인메모리 DB는 디스크가 아니라 메모리에서 돌아가는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으로 실시간 데이터 처리 등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적합하다.

증권사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SW업체 SAP가 전사적으로 밀고 있는 하나(HANA) 플랫폼 역시 인메모리 DB다. 김기완 대표가 알티베이스에 있을때만 해도 인메모리 DB는 틈새시장으로 분류됐는데, 지금은 거물급 업체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격전지로 진화했다.

선재소프트는 2012년 인메모리DB인 '선DB(SunDB)' 1.0 버전을 내놨고, 지난해 11월에는 2.1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조용하게 지냈기에 밖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선재소프트는 인메모리DB를 갖고 나름 중량감있는 레퍼런스들을 이미 확보했다. 한국거래소 차세대 시스템과 시장감시시스템, 코스콤 금융데이터센터 투자정보시스템, 한화투자증권 주문관리시스템에 선재소프트 인메모리DB가 도입됐다.

기자는 김기완 대표가 알티베이스를 나와 선재소프트를 설립한 후에도 얼굴을 자주 보고 지냈다. 특별 대우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디넷코리아와 선재소프트 사무실은 한 동네에 있어 지하철역을 오가는 길에서 종종 마주쳤고 길에서 잠깐이나마 서로의 근황을 묻는 정도였다. 일 얘기를 깊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솔직히 묻고 싶었지만 김 대표가 미디어를 상대로 일 얘기 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좀 달라진 것 같다. 미디어를 상대로 일 얘기도 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눈에는 김 대표가 이제 밖에다 얘기할 만큼 내공을 키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 알티베이스 시절에도 그는 없는 걸 있다고 둘러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었다.

최근 만난 그의 표정에는 특유의 위트와 여유도 엿보였다. 알티베이스에서 한창 잘나갈 때 대표 시절의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됐다.

선재소프트 직원수는 벌써 30명에 이른다. 월급을 못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회사와 비교해 많이 주는 편도 아닌데, 창업 이후 아직까지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없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창업 초기 일부 멤버들이 이탈할 수 밖에 없는데, 선재소프트에겐 아직 남의 회사 일이다.

알티베이스를 이끌던 시절 김기완 대표는 친정인 오라클보다 좋은 DB를 만들고 싶은 것이 가장 큰 목표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지금도 DB회사를 운영하는 만큼, 넘버원 목표도 그대로일거라 생각했는데, 선재소프트 창업후에는 순위가 바뀌었다.

오라클DB보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멤버들이 맘편하게 잘지낼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게 우선이었다. 제품보다는 사람이 먼저였다.

창조경제의 함성소리가 울려퍼지는 지금, SW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창업도 늘었다. 그렇지만 알맹이가 빠졌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SW창업이 B2C 관련 서비스에 너무 집중됐다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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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뒷단에서 돌아가는 시스템SW 분야는 여전히 글로벌 IT업체들의 천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스템SW분야에 도전장을 던지는 스타트업을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다. 그런만큼, 선재소프트의 등장은 기술을 중요시하는 또 하나의 국산 시스템 SW업체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 하다. 김기완 대표 역시 앞으로 경쟁력있는 시스템SW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오랜만에 김기완 대표를 만나 일얘기좀 해보니, 선재소프트의 행보는 예전처럼 조용하게 묻혀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디넷코리아 말고도 여러 매체들에서 선재소프트와 관련한 소식들을 자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