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2조원대 '바가지 작전' 실패

삼성 배상액 1천200억원…배심원 “그만 싸워”

일반입력 :2014/05/06 12:36    수정: 2014/05/07 13:19

김태정 기자

애플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에 청구한 금액이 2조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지난달 미국에서도 ‘무리수’라는 비판이 잇따라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 자신도 다른 소송에서는 같은 특허를 놓고도 상당히 저렴한(?) 가격을 책정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이터 태핑(647) 특허’와 관련해 제품 대당 모토로라에는 0.6달러, 삼성전자에는 12.49달러를 요구했다.

결국 스마트폰 점유율 1위 삼성전자에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인데 미국 배심원들이 이를 외면했다. 평결에 따른 삼성전자의 대 애플 배상액은 2조원의 5.5% 정도인 약 1천200억원이다.

■2조원→1천200억원…고작 5.5%

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비방법원 새너제이지원의 ‘제 2차 애플 대 삼성전자’ 손해배상소송 1심 배심원단은 ‘쌍방 일부 승소’ 평결을 확정했다

삼성전자가 원고 애플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평결상 1억1천962만5천달러(1천232억원)이며, 양측 변호인단은 즉석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재판장인 루시 고 판사는 양측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 몇 달 뒤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지만 평결 금액 변동 폭이 엄청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더 줄어들 수도 있다.

당초 애플이 청구한 금액은 무려 21억9천만달러(2조2천700억원). 개인용 전자기기 관련 소송 사상 최대다. 삼성전자 측 변호인 존 퀸은 이를 두고 ‘엄청난 과장, 배심원들의 지능을 모독하는 산정’이라고 주장했다.

애플 수뇌부가 이 금액 중 얼마까지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지는 알 수 없으나 다양한 증인들을 내세워 법정에서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이번 평결이 아플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받을 금액이 평결상 15만8천400달러(1억6천300만원)에 불과하지만 판정승을 거뒀음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애플의 특허 주장 중 상당 부분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배심원단이 삼성전자 배상액을 애플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산정했다는 것은 애플 특허를 크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414-959 특허 배상액 ‘0원’

애플이 삼성전자의 침해를 주장한 자사 특허는 ▲PC-스마트폰 데이터 동기화(414) ▲단어 자동 완성(172) ▲데이터 태핑(647) ▲밀어서 잠금해제(721) ▲통합검색(959) 등이다.

배심원단은 이 중 ‘통합검색’과 ‘데이터 동기화’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의 침해 사실이 아예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애플의 핵심무기 5개 중 2개가 떨어져 나간 셈이다. 다른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이 기술들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포함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향후 일어날 가능성이 큰 ‘구글 vs 애플’ 소송에서 구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애플이 자사 고유기술로 주장한 ‘밀어서 잠금해제’도 법정에서 큰 힘을 못 냈다. 삼성전자 제품들 중 일부만 이 기술을 침해했다는 게 배심원 평결이다. 배상액은 비교적 소액인 299만달러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애플의 최대 무기는 ‘데이터 태핑’이었다. 삼성전자 배상액 1억1천962만5천달러 중 1억달러에 가까운 금액이 여기서 나왔다.

이 특허는 컴퓨팅 기기에 입력을 받아들여서 이를 저장한 후 데이터를 검색해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제시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전화번호부 아이콘을 클릭하면 전화번호가 뜨고, 이 전화번호를 두드리면 전화가 걸리도록 하는 것이 대표 사례다.

물론 ‘데이터 태핑’ 역시 애플이 원하는 금액 평결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할 기술임이 다시 증명됐다.

배심원들은 ‘단어 자동완성’에 대해서는 배상금만 부과했다. 재판장인 루시 고 판사가 재판 시작 전 삼성전자 일부 제품들이 이를 침해한 것으로 판결했기 때문이다.

■애플발 전쟁 정당성에 큰 타격

전쟁을 먼저 시작한 애플이 ‘정당성’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평결대로면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에 따른 애플 측 피해가 스스로의 생각처럼 크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IBM에서 특허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배심원단 대표 토마스 던험 씨는 평결 확정 직후 취재진에게 “이번 소송의 패배자들은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며 “그들(삼성전자와 애플)에게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글이 삼성전자 측 증인으로 나서 법정 지원사격을 본격화하면서 애플의 안방 이점도 크게 상쇄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외신과 해외 석학들의 반응도 애플에 냉담하다. 씨넷과 CNN, 뉴욕타임즈, AP 등이 삼성전자의 판정승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CNN머니는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이번 평결에 결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애플은 안드로이드 멸절에 실패하면서 삼성전자에 힘을 더해 준 셈”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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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학의 마크 메킨지 교수도 “애플이 쟁점으로 삼은 특허들은 애플의 생각보다 가치가 없던 것들”이라며 “애플은 법정 소송비용도 건지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측은 “점유율을 잃은 애플이 이번 소송을 ‘억지로 만들었다(made up case)’”는 기존 입장을 계속해서 피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