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법, 합의금 장사 수단으로 전락"

저작권 위반 사범, 절반이 청소년...처벌 규정 바꿔야

일반입력 :2014/04/16 16:05    수정: 2014/04/16 16:15

남혜현 기자

# 지난해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은 K양(만 21세)은 저작권법의 무서움을 몸으로 깨달았다. 한 웹하드 사이트에서 만화를 내려 받아 다른 웹하드에 다시 올린 것이 문제가 됐다. 저작권자의 법률대리인이 K양을 형사고발하며 제시한 합의금은 550만원이었다.

법무법인 측은 K양에 현재 고소하지 않은 사례가 3건 더 있다며 합의를 하지 않고 소송을 하면 (추가 고소를 합쳐) 1천7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K양은 미성년자인 만 19세였다.

저작권법이 창작자 권리 보호라는 본 취지를 벗어나 법무법인의 합의금 갈취 수단으로 오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작권법을 잘 알지 못하는 청소년을 상대로 형사 고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형사 처벌을 규정한 현행 법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16일 사단법인 오픈넷은 박혜자 의원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등과 '저작권 대토론회'를 공동 주최하고 현행 저작권법의 일부 개정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소송당사자가 청소년이거나, 경미한 침해 행위에도 고소가 남발될 수 있다는 문제를 확인하고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취지다.

개정안의 골자는 현행 저작권법 위반 벌칙 기준을 담은 136조에 '180일의 기간 동안 침해된 저작물의 총 소매가격이 5백만 원 이상인 경우에 한함'이란 단서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경미한 사건에도 형사 고발이 들어가 피의자들이 과도한 압받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형자 고발 조건 자체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합의금 장사 막으려면 저작권법 개정해야

저작권법 위반 고소 주체를 조사해보니 63%가 법무법인이더라. 개인 저작자의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문제점은 저작권법 위반 고소가 합의금 장사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피해가 크다 (2009년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도 교육이수자 기준 조사 결과)

주제발표를 맡은 남희섭 오픈넷 이사는 저작권법 위반 사범 기소율을 근거로 형사고발이 합의금 갈취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강조했다. 남 이사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사건 약 10만건 중 정식 재판에 회부된 것은 8건에 불과하다. 저작권법 위반 형사고소 자체가 '합의금'을 위한 실력 행사라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의 피해가 크다는 것은 다음 통계에서 나온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09 범죄분석'에 따르면 2008년 범죄 혐의로 조사받은 미성년자 13만4992명 중 저작권법 위반 혐의자는 무려 15%에 달하는 2만272명이다. 총 범죄에서도 미성년자의 비율은 6%지만, 저작권법만 따지면 그 비율이 23%로 올라간다. 부모 인적사항을 기입한 경우를 포함하면 미성년자 피의자의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저작권 위원회의 견해다.

남 이사는 2008년에 저작권법 위반사범이 급증했는데, 이때부터 저작권 침해 형사 처벌 제도가 '합의금 장사'에 악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한 고소 남발, 청소년 피해자 양산과 같은 문제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입법부 및 행정부 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에스엔 소속 구주와 변호사는 소위 '시간차 고소' 또는 '시간차 공격'이라 부르는 거액의 합의금 문제를 지적했다. 소설이나 만화 같은 어문 저작물의 경우 여러 콘텐츠가 한 묶음에 들어가 있는 '압축 파일' 형태로 업로드, 다운로드가 이뤄진다는데 함정이 있다.

앞서 언급한 K양의 사례가 여기에 들어간다. 우선 하나의 저작권법 위반 사례를 상대로 고소를 한 다음 침해자가 합의를 요청하면 아직 고발하지 않은 위반 사례를 추가로 형사 소송하겠다고 압박해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1천만원에 이르는 거액의 합의금을 취득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업로더들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안 걸리고 잘 살았는데 안걸리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침해행위를 하고 있고, 저작권자들은 합의금을 취득할 목적으로 웹하드 등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가며 침해자들을 색출해내고 있어 저작권 침해 분쟁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발제자들은 저작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 변호사는 '180일 기간 동안 침해되는 저작물 총 소매가격이 500만원 이상'이라는 단서 조건이 생길 경우 사실상 저작권침해로 인한 고소 건수가 99%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단서가 생기면 그간 영화 100만원 등, 피해 경중에 상관없이 부과되던 벌금이나 합의금도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개정안 취지 공감하지만 현실 반영해야

개정안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시정 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기하는 토론자도 있었다. 정진근 강원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교수는 기획소송을 방지하자는 개정안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500만원 이상 피해'를 규정한 개정안을 받아들일 경우 앱스토어 등에서 저가 콘텐츠를 판매하는 창작자들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웹툰이나 앱같은 1인 기업들의 콘텐츠는 판매 단가가 1천원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개정안 대로 500만원어치를 침해하려면 5천부를 카피해야 한다며 사실상 개인 창작자에 형사소송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형사 소송을 어렵게 막아놓을 경우 창작자들이 민사소송으로 피해를 구제하려 할 텐데, 구제 능력이 충분하거나 소프트웨어 판매 가격이 높은 외국계 기업의 경우 형사와 민사 두 가지 수단을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소규모 기업 또는 개인 창작자들은 비용 때문에 민사 소송도 포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대부분 기획 소송이 미끼를 던지고 이를 추적해 소송을 거는 형태로 되가고 있다며 형사처벌 규정이 500만원 이상으로 제한되면 기획소송에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탁희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정법률안의 취지가 좀 더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법현실을 반영하는 입법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500만원이라는 금액도 그것이 청소년들의 겨미한 저작권 침해 행위를 비범죄화할 수 있는 금액인지에 대한 사전적인 조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저작권 보호가 국가적 과제가 되어버린 현실에서 강력한 법적 보호의 뒷받침이 불가피하지만 그에 앞서 저작권자들도 권리 행사에 합당한 의무를 져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탁 위원은 저작권자들이 저작물 이용가액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공시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이용자 입장에서 저작권자가 제시하는 이용금액이 합리적 수준인가 여부를 알고 싶어도 그에 대한 판단을 구하거나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박혜자 의원은 저작권 (개념을) 몰라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청소년을 상대로 한 고소 고발 건수가 늘어나고 있으므로 교육, 선도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문제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법은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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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논의에서는 현행 저작권법에서 침해 행위를 규정한 124조 3항의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침해하여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복제물을 그 사실을 알면서 취득한 자가 이를 업무상 이용하는 행위'를 언급한 조항을 삭제하자는 내용의 개정안도 다뤘다. 불법 복제물을 알고 사용하든, 모르고 사용하든 저작권자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 또 컨퓨터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이용행위를 침해로 간주하는 점이 다른 저작물과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저작권법 토론은 오는 17일에도 열린다. 저작권자에게 불리하게 체결된 계약을 해당 저작물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 계약 내용을 변경하거나 해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이른바 ‘백희나-조용필’ 법을 도입하기 위한 구체적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오픈넷과 국회의원 박혜자 의원실, 배재정 의원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교육문화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아이피 레프트(IP Left),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