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서 만난 환갑 나이 韓人 개발자

성기준씨 "관리 대신 개발하고자 미국 다시 와"

일반입력 :2014/04/02 07:25    수정: 2014/04/03 10:43

<샌마테오(미국)=김우용 기자>올해 나이 만 60세. IT경력 33년. 지금도 현역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인물이 있다. 한국의 시스템SW 엔지니어링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사람. 현재 캘리포니아 산마테오의 ‘스냅로직(SnapLogic)’이란 회사에 근무중인 성기준씨가 주인공이다.

3월 31일(현지시간) 저녁 샌마테오 스냅로직 사옥 앞에서 성기준씨를 만났다. 백발이 성성할 것이란 추측은 첫 만남과 함께 무너졌다. 여느 개발자와 다르지 않은 소박한 옷차림에 야구모자를 쓴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면서 기업공개(IPO)의 대박도 경험하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SDS, 네이버, SK C&C를 거치며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그다. 왜 굳이 다시 개발자로 되돌아갔는지 궁금했다.

“직접 코드를 짜는 게 너무 그리웠어요. 매출에 신경쓰고 관리자 역할을 하기보다 모니터를 보면서 내 스스로 코딩하고 싶었죠. 한국에 있을 땐 직접 코딩할 기회도 별로 없었거든요. 미국으로 돌아와서 플로리다 회사 소속으로 원격근무를 하다가 새 직장을 구했어요. 한밤중에 인터넷에 이력서를 올렸는데, 한국에서 쌓은 빅데이터 경력 덕분인지 다음날 아침부터 연락이 오고, 계속 인터뷰를 하다가 지금의 회사를 택하게 됐습니다.”

2006년 오픈소스 빅데이터 분산처리기술 하둡이 처음 세상에 공개된 지 2개월 뒤 한국의 네이버도 하둡 도입에 나섰다. 그는 당시 네이버의 하둡 클러스터 개발을 총괄했다. 미국 본토에서도 막 시작단계였던 시기에 하둡분산파일시스템(HDFS)과 맵리듀스를 현업 시스템에 적용한 것이다. 한국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선구자 중 한명이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우리나라 곳곳의 회사에서 빅데이터와 하둡 기술의 절정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회사를 알아볼 때 여러 빅데이터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인터뷰를 하루에 두개씩 했어요. 수많은 제안중에 지금 회사를 고른 이유는 사람들이 뭐랄까, 순수하다고 할까요. 여러 임원들과 1대1로 30분씩 인터뷰를 하는데 그들이 열정도 있고, 기술에 순수하다는 인상을 받았죠. 정치적으로 움직이거나 꼼수를 부릴 거란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서 그의 현재 직책은 ‘PRINCIPAL SOFTWARE ENGINEER’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수석개발자’ 정도가 가까울 것 같다.

“회사 동료들은 제 나이를 잘 몰라요. 실제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라죠. 지금 우리 팀 매니저가 삼십대 독일사람이에요. 한국은 매니저가 나이 많은 부하직원을 거북해하는데, 여기는 그런게 전혀 없어서 좋아요. 또, 회사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인간적이어서 적응하는 시간동안 기다려주더군요. 요즘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계속 집중해서 코딩만 합니다. 요즘 회사가 창업한 뒤로 드디어 제품으로 매출을 거둬들이고 있어요. IPO로 가는 구부능선을 넘어선거죠. 분위기도 정말 좋고, 다들 신나서 일합니다.”

그의 하루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새너제이 집에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50킬로미터 떨어진 산마테오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리고 저녁 7시까지 개발을 한 뒤 퇴근한다. 하루 열두시간 가량을 SW개발에 쏟아 붓는 셈이다.

“오랜 만에 개발을 하다 보니 바뀐 게 너무 많더라구요. 자바도 다시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했고, 일하는 속도도 높여야 했어요. 십년만에 와보니까 미국의 SW 기술이란 게 전과는 하늘과 땅차이로 달라졌어요. 한국에 있을 땐 우리나라 SW도 꽤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피부로 느껴보니 정말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해서, 한국이 따라잡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스냅로직은 데이터통합기술인 ETL(추출, 변환, 적재)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는 회사다. ETL전문업체 인포매티카의 공동창업자 중 한명인 가라브 딜론이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스냅로직은 여러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나로 모아주는 ‘클라우드 통합’이란 개념을 앞세우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대형 기업들은 고객관계관리(CRM), 인사관리(HR), 영업 등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직접구축하지 않고, 세일즈포스나 워크데이 같은 여러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각각 흩어져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들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생겼다. 전사적자원관리(ERP) 같은 기존의 구축형 애플리케이션까지 더해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주는 게 클라우드 통합이다.

“아마 전세계서 애자일 개발이 가장 잘 이뤄지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픈소스 SW를 잘 활용해서, 자동화가 정말 잘 만들어져 있거든요. 수많은 오픈소스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놀라워요.”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얼굴은 생기가 넘쳤다. 그는 ‘코딩하는 지금이 너무 좋다’는 말을 수 차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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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들은 이르면 40대부터 SW개발보다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강요 받는다. 나이를 먹어도SW개발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그도 아쉬운 은퇴를 해야 했을 지 모른다.

“제 성격이 SW 개발이랑 맞아요. 임원이나 관리자는 몸에 안 맞더군요. 계속 개발자로 살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