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터넷, 부끄러운 대한민국 자화상

[연말기획]응답하라 2013 모바일 생태계

일반입력 :2013/12/31 12:10    수정: 2013/12/31 13:52

남혜현 기자

그 어느 해보다 파란만장했다. 인터넷 이야기다. 모바일로 빠른 전환은 인터넷 생태계를 단숨에 뒤흔들었다. 기회를 읽지 못한 기업은 한 순간에 도태됐다. 어떤 기업이 보다 편안한 모바일 사용자 환경을 불러오느냐에 운명이 갈렸다. 누군간 대박을 쳤고, 누군간 쪽박을 찼다. 지난 1년 모바일 생태계를 둘러보는 것은 내년을 위한 기본 준비다. 지디넷코리아는 올 한 해 어떤 인터넷 이슈가 있었는지를 포털, 콘텐츠, SNS, 온라인 쇼핑, 뉴스 및 콘텐츠 등 분야별로 살폈다.[편집자주]

[연말기획-1]오늘의 포털에 안녕을 묻는다면

[연말기획-2]주춤했던 전자책, 내년엔 빛보나

[연말기획-3]위험과 기회 사이 토종SNS…내년엔?

[연말기획-4]모바일 없인 유통 미래도 없다

[연말기획-5]2013 인터넷, 부끄러운 대한민국 자화상

가장 디지털화 된 곳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욕망이 들끓었다. 여권 중진 의원은 스마트폰을 통해 누드 사진을 검색하다, 야권 초선 의원은 카카오톡으로 불륜관계로 추정되는 여성에 사랑한단 메시지를 보내다 사진 기자 카메라에 걸렸다.

정치권 뿐만이 아니다. 카카오톡을 타고 연예인 또는 일반인들의 '몰카'가 횡행했으며 근거를 알 수 없는 사생활 찌라시들이 돌았다. 포털 뉴스 사이트는 성인 잡지 뺨칠만한 선정적 사진들과 문구로 도배됐다. 오프라인에 갇혀있던 집단 따돌림은 모바일 '그룹방'으로 확산됐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검색하게 한 모바일 인터넷은 편리함을 준 대신 지식과 지성을 앗아갔다. 전화번호 하나 외우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는 오래된 이야기다. 독서하지 않아도 검색 하나 만으로 정보를 쉽게 얻는다.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 사색과 성찰은 점점 멀어져간다.

문제는 모바일이 아니다. 모바일에 비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다. 문명 이기의 반작용이 불러온 이 부정적 문화는 2013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공부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은밀하게 훔쳐보는 관음증. 올 한 해 모바일, 포털을 둘러본 단상을 연말 기획의 마지막 편에 담았다.

■ 타계가 뭐야? 언어 파괴 넘어 언어 실종…성찰 없는 대한민국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던 날 국내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는 '타계'가 올라왔다. 주요 신문들이 만델라 대통령의 부고 소식에 일제히 '타계'란 단어를 쓴 탓이다. 고유 명사나 특정 사건이 아닌 '타계' 같은 일반 명사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은 올해 들어 심심찮게 보인 현상이다.

타계는 사람의 죽음, 특히 귀인의 사망을 이르는 말이다. 성인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 단어는 그러나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들엔 어려울 수 있다.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면 생소하게 느낄 가능성은 충분하다. 포털 검색창을 국어사전이자 백과사전으로 쓰는 디지털 키드들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성동규 교수는 모바일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지다보니 사회 전체적으로 심오한 사고를 하게 하는 환경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며 그 과정에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반적이었던 단어들을 이제는 굉장히 전문 용어처럼 느끼는 디지털 세대들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초반 PC 통신이 확산되면서 언어학자들은 '안냐세요' '방가' 등의 줄임말을 '언어파괴'라 걱정했다. 그러나 지금 언어 파괴에 대한 우려를 듣긴 어렵다. 오히려 단어들이 사라져가는 '언어실종'을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성 교수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적 세계에 있는 것들이 자꾸 변해간다. 지식의 가벼움, 경량화 현상이 너무 보편화되고 있다며 여기에 대한 사회적 성찰, 반성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문제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물론 어려운 단어, 또는 한자어를 모른다고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지식의 경량화가 불러오는 성찰 부재다. 연초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인문학의 필요성'은 이같은 사회 현상에 대한 불안의 방증일 수 있다.

검색어는 동시대인들이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지도 보여준다. 정권이 바뀐 올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이슈가 있었다. 일상에 긴밀한 변화가 일어난 한 해지만 실시간 검색어는 대부분 연예인 이슈들이 차지했다. 현기증이 날만한 일상의 가벼움이다.

■불륜 판치는 SNS, 성인지 뺨치는 포털 뉴스

모바일은 은밀한 영역에서도 새 지평을 열었다. 관음증이다. 한 때는 인터넷을 잘하는 사람들만 다운로드해서 보았던 'OO양 몰카'를 이젠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도 모두 본다. 무료 모바일 메신저란 문명의 이기가 불러온 어두운 뒷모습이다.

모바일 메신저 앱, 동창 찾기 앱이 새로운 불륜의 창구가 됐다는 보도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집전화나 컴퓨터가 가족들과 공유하는 자원이라면 스마트폰은 오로지 본인만 사용하는 매우 개인적인 기기다.

관음증은 포털 뉴스에서도 논란이 됐다. 네이버가 뉴스 선정성, 낚시성 기사를 없애겠다며 뉴스캐스트를 폐지하고 뉴스스탠드로 코너를 개편했으나, 고질적 문제는 더 기승을 부렸다. 종합지, 경제지조차 벌거벗은 여성의 사진, 또는 자극적 문구를 손님 끌기 용으로 대문에 걸었다.

독자들은 욕하면서도 해당 기사를 클릭했고, 신문사들은 홈페이지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호객용 기사를 양산했다. 악순환은 계속됐고 기사 신뢰도는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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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그룹 채팅 방에선 새로운 개념의 '왕따'가 양산됐다. 학급 단위로 카카오 그룹, 또는 네이버 밴드 등에 집단 채팅방이 만들어지는데 이 공간에서 공공연한 따돌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아이에 대한 정보를 집단 채팅방에서 공유하는 학부모들 역시 왕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불러온 일상의 혁신은 분명 편리함을 가져왔다. 인터넷이 처음 들어왔을 때 관념 속에서 걱정했던 일들이 이젠 현실의 문제로 커진 셈이다. 모바일 시대, 역사상 그 어떤 때보다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 사람들에 '성찰의 힘'이 더더욱 필요해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