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병특 제외'...침묵속의 후폭풍

중소기업에 실질적 도움 못된다는 비판 거세

일반입력 :2013/12/19 13:49    수정: 2013/12/20 08:59

#1 모바일 벤처업체 A사는 병무청 산업기능요원 편입제도를 염두에 두고 대학생 2명을 채용해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개발 중이었다. 하지만 병무청이 내년도 산업기능요원 편입인원 배정에서 대학생을 배제해, 진행하던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내년 인력채용을 포함한 사업 계획 재검토에 들어갔다.

#2 자동차 IT전문 컨설팅업체 B사는 업무 공백이 생긴 프로젝트에 투입할 인력 1명을 급구 중이다. 올해 채용된 대학생 1명이 내년도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할 수 없게 됐다. 당사자는 아직 근무 중이지만 내년 2월까지만 일하고 현역으로 입영해야 할 처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산업기능요원 편입제도 평가결과가 100점 이상인 우수업체다.

#3 기업용 보안소프트웨어(SW) 업체 C사는 신입 채용시 대학생을 선호했지만, 올해 미리 사람을 뽑지 않고 관망했다. 내년 병무청이 특성화고 또는 마이스터고 출신의 편입 비중을 늘리면 대학생 인력을 배정받긴 어려울 듯해서였다. 인사담당자는 대학생 배정이 예전보다 어려워질 줄만 알았지 전면 배제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며, 오히려 안 뽑길 잘 했다는 눈치다.

#4 공장장비 자동화업체 D사는 병무청 산업기능요원 편입인원 배정이 발표된 뒤에도 학사 출신 인력들로부터 정말 지원이 불가능하냐는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 인사담당자는 고졸 출신 우대 방침이 중소업체들의 실무 인력 양성 부담을 높이고 대졸자의 대기업 지원 성향만 강화시켰다고 판단 중이다.

이달초 병무청이 발표한 내년도 산업기능요원 편입인원 배정 결과로 고질적 인력난을 겪고 있는 IT분야 중소업체들이 충격에 빠졌다.

현역 입영 대상자 가운데 이미 중소업체들의 실무에 투입된 고졸 출신자들만 산업기능요원으로 채용이 가능하고, 해당 분야 전공 대학생이나 졸업자들은 채용이 힘들다는게 핵심이다.

병무청이 내년도 현역 입영대상자 가운데 산업기능요원 편입 자격을 특성화·마이스터·기술사관 고등학교 출신으로 제한했다.

병무청 방침에 따라 각 기업들은 당장 현장에서 일하던 실무자를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출신 학생들만 산업기능요원 채용 인원으로만 배정해야 한다.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게임SW 업체와 앱 개발 업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내년도 산업기능요원으로 배정받으려고 대학생이나 대졸자들을 미리 뽑아놨는데, 이들이 빠지게 되면 운영자체가 힘들 수 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내놓고 할말을 하고 싶어도, 혹시나 있을 불이익 때문에 속앓이만 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A사 대표는 올해 1명, 내년 1명을 산업기능요원 인원배정 대상자로 예상하고 대학생 2명을 뽑아 6~8개월간 실무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 발표로 이들이 군입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돼 업무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란 명분은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C사 인사담당자는 회사가 산업기능요원 편입 대상자로 대학생을 받는 최대 이유는 당사자의 병역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중소업체에 제한된 우수인력 발굴 기회이기 때문이라며 상반기까지만 해도 병무청이 대학생 편입 인원 배정을 아예 안 할거란 얘기가 없었는데, 중장기 인력양성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학전공자와 고졸 학력자를 함께 채용 중이던 업체들도 병무청 방침이 단기적인 기업실무 측면이든 장기적인 사업방향 측면이든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B사 인사담당자는 지난해에도 산업기능요원 인원배정 신청 대상자를 채용할 때 대학 전공자와 함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출신 인력들을 검토해 봤지만, (고졸자 가운데) 채용에 필요한 자격을 갖춘 학생을 찾지 못했다며 이번 병무청 배정 방침으로 갑자기 업무 전담자가 빠져야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D사 인사담당자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다루는 IT분야 교육과정은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우리같은 전문업체 실무에 곧 적응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며 고졸자 2명을 그렇게 뽑았는데 각각 국가지원도 없이 교육에만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야 했고, 그나마 1명은 실무에 적응을 못해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병무청의 산업기능요원 인원배정 과정을 둘러싼 불투명성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2011년 6월 병무청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구호를 내걸고 산업기능요원제도 개선을 시작하면서 중소기업기술사관,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졸업생의 편입 비중을 늘린다고 예고했지만 내년처럼 모든 인원을 그쪽에 배정할 것이란 얘기는 사전에 알려진 바 없었다.

A사 대표는 병무청 담당자와 (인원배정 결과 발표) 1개월 전 대면했을 때도 이렇게 현역 입영대상 중 대학생 이상 학력자들에게 산업기능요원 편입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지금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인원배정 과정이나 대상업체 선정 과정이 불투명해, 밉보였을 때 받을지 모를 불이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산업기능요원 인원 배정을 담당하는 병무청 담당부서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조치가 중소기업들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대학생 이상 학력자들의 경우 3년 가량의 산업기능요원 복무 기간을 마친 뒤 복학하거나 졸업 후 이직하는 등 업무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출신자들의 경우 기간 만료 이후에도 계속 일할 것이라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취재에 응한 모든 IT업체 관계자들은 과연 이런 형태의 산업기능요원 배정 방식이 중소기업들의 전반적인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IT산업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에 투입할 인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 출신자들의 경험과 역량이 전반적으로 대학 관련 전공자들의 수준을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학 전공자 입장에선 어차피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도적으로 기회를 보장받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출신 인력들은 그만큼 기존 대학 전공자들 수준의 역량을 갖출 유인이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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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A사 대표는 대학에 입학한 현역 입영 대상자 입장에선 그나마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군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산업기능요원 제도의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병무청 조치로 중소기업들의 고급인력 유인책이 하나 사라진 셈이라 말했다.

D사 인사담당자는 일반 학사 과정에 있는 인력들의 산업기능요원 배정은 고급인력 찾기에 어려움을 겪어 온 중소기업들에 대한 일종의 배려로 인식되기도 했다며 왜 없어졌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고, 다른 산업계일지라도 이런 변화가 인력난 해소에 과연 도움이 될거라 여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