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IT개발자, 어떤 교감 이뤘나

일반입력 :2013/06/25 14:59

박원순 서울시장이 IT개발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한 청책토론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박원순 시장의 의견개진보다 참석한 개발자들의 발언이 주를 이뤘다. 열띤 발표 후 박 시장은 서울시의 시스템통합(SI) 발주사업 재하청 문제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24일 서울시청신청사 다목적홀에서 열린 ‘세상을 움직이는 IT개발자들의 목소리’ 청책토론회에서 박원순 시장은 국내 IT개발자를 직접 만나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토론회는 곽동수 숭실사이버대학 외래교수의 진행으로 IT개발자커뮤니티 노상범 OKJSP 대표의 기조발언, 개발자의 자유로운 의견개진, 박 시장의 마무리발언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장은 당초 참석예상인원인 150명을 훌쩍 뛰어넘어 가득찼다.

■'SI 재하청' 2억원 사업이 300만원짜리로 둔갑

기조발언에 나선 노상범 대표는 “IT개발자는 산업 전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선 우리나라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SI분야에 한정해 얘기해보려 한다”라며 “SI는 갑과 을이 존재하는 분야로 대부분 문제의 주범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벌어지는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무형의 자산으로 인식돼 있고, 기술보다 노동으로 본다”라며 “이는 SW의 가치가 평가받지 못하고, 가격산정을 어렵게 만들어 많은 부조리와 비리를 발생시킨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크게 ▲재하청 폐지 ▲단기계약파견 폐지▲야근비 지급▲개발자에 저작권 부여▲서울시와 상시 소통채널 마련 등의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는 “한 일화에 따르면, 2억원규모 6개월짜리 사업이 하청과 재하청을 거치며 최종엔 300만원에 2명의 단기계약직 개발자가 2달동안 밤을 새 마무리했다고 한다”라며 “무엇보다 현재 마련된 법대로만 잘 지켜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재하청과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달라

이어 개발자들의 자발적인 의견개진이 이어졌다. 가장 많이 거론된 문제는 역시 재하청에 따른 폐해였다.

한 개발자는 “갑이 을에게 주는 돈을 그대로 받는다면 밤샘작업도 가능하다”라며 “서울시만큼은 재하청을 줄였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발언 중엔 갑의 지위에 있던 담당자가 일을 그만두고 나와 중간 알선자 역할을 자처하며, 돈을 떼먹는 등의 행태가 고스란히 언급됐다. 대기업계열 IT자회사들이 자체 인력을 늘리기보다 하도급을 통해 돈만 벌려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 문제를 지적한 개발자는 “과정은 좋고, 결과가 나쁜 것보다 과정은 나빠도 결과가 좋은모양새는 그 순간은 좋을지 몰라도 산업분야엔 악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야근비 미지급 관행 역시 자주 거론됐다. 한 개발자는 “SI를 하면서, 야근 수당을 제대로 받게 해주면 좋겠다”라며 “작업지시서없이 이뤄지는 야근과 휴일근무에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보니 수당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야근과 휴근수당을 받도록 하는 근거자료로써 작업지시서를 받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야근과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서울시의 경우 먼저 수당을 개발자에 지급하고, 수행회사에게 받는 방법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일반적으로 작업지시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불공정한 문구를 집어넣은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의 불공정한 관행도 지적됐다.

프로젝트 중 발주자 요구에 의한 설계변경 문제도 언급됐다. 일반적인 SI사업은 비일비재하게 설계변경이 일어나 추가개발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미리 산정한 예산에 한정해 비용을 지불하므로 그에 따른 추가대가지급은 없다.

이를 지적한 개발자는 “올해 예정됐거나, 이미 진행중인 프로젝트부터라도 설계변경이나 중간 수정시 예산을 추가로 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발주 담당자의 전문성에 대한 문제지적도 있었다.

한 개발자는 “전문가가 없어서 소통이 안되고, 담당자가 바뀌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사업을 발주하는 공무원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개발자는 “1년 무상유지보수를 무조건 제공하는 관행이 문제”라며 “무상유지보수 기간동안 쓸데없이 공수가 들어가게 되는데, 개발자는 다른 개발을 하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정해줘야 한다”라고 덧부였다.

이밖에 현실성없는 펑션포인트 방식의 개발비 산정방식, 소프트웨어품질 정량화 방안 부족 등의 문제가 거론됐고, 서울시 행정데이터 웹접근성 개선, 개발자 중심의 서울시청 내 SW공학센터 설립 등의 방안이 나왔다.

■박 시장 재하청문제 공감, 의견청취 더 하겠다

박원순 시장은 개발자 발표를 수첩에 메모하며 청취했다. 박 시장은 발표시간 종료 후 약 10분의 시간동안 청취한 부분들을 언급하며 각 문제별 의견을 밝혔다.

그는 먼저 “IT산업은 수출품목으로 보면 30% 넘는 대한민국의 꿈을 이뤄주는 산업”이라며 “IT산업이 제대로 가려면 그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실질적인 악조건 속에서 희생하며 일하는 개발자가 핵심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하청을 없애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며 “하도급계약자에 대한 임금체불 방지시스템을 서울시에서 운영중이지만, IT분야는 하도급이 계속이어지는 것 그 자체가 문제란 걸 알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선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 등에 서울시 구매사업을 주고, 중소기업이나 프리랜서 개발자가 하나의 컨소시엄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서울시 과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봤다”라고 덧붙였다.

개발자 저작권 부여, 파견근무 시 통합작업실 마련, 패자부활프로젝트, 교육프로그램 마련 등의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로 좋은 발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년 무상유지보수는 기본적 하자에 따른 게 아니라면 불공정계약이므로 서울시가 좋은 발주자로서 역할하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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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으로 “앞서 누군가 희망을 달라고 말씀하셨 듯, 이 자리가 희망을 보기 위한 단서가 되길 바란다”라며 “많은 전문가들과 현장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서울시 정책과 절차가 개선되면, 나아가 정부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충분한 검토를 거치고, 추가적인 의견 교환자리도 만들어서 함께 희망을 만들어갔으면 한다”라고 말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