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여성인권 무대응…억울한 '청소년서체'

일반입력 :2013/05/25 09:31    수정: 2013/05/25 19:08

여성 권익 높이기에 힘써야 할 여성가족부가 지난 주까지 나라안팎을 떠들썩케한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나 며칠새 강도를 높여온 일본 정치인들의 '위안부 망언' 등을 외면해 주무부처가 제몫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일본 위안부 망언과 공직자 성추행 관련 사안에 침묵한 채 '청소년서체'를 만들어 무료 배포한 것에 대해 '세금낭비'란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확인 결과 여성가족부를 향한 여론의 공분은 불가피한 시점이나, 투입된 정부 예산 규모나 해당 사업을 맡은 주체를 엄밀히 따져볼 때 글꼴 자체는 시빗거리가 되지 못한다.

이달 초부터 지난주까지는 국제적으로 여성의 인권이나 사회적 권익 보호, 역사적 사실에 따른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권 보호 등 국가관계나 정부차원에서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 두드러진 시기다. 해당 사안들에 대한 주무부처로 인식된 여성가족부의 대응태도는 국민적 관심사에 무감각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큰 사안 하나는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기간중 불거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다. 윤 전 대변인과 성추행 피해자로 알려진 주미한국대사관 인턴 여성의 행적이나 현지 경찰들의 수사 진행상황, 그에 반응한 재미한인동포사회 등 국내외 커뮤니티동향을 포함해 쏟아진 국민적 관심은 지난주 내내 지속됐다.

다른 하나는 이달 중순 일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현지 시청 기자회견장에서 2차세계대전기간 우리나라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 동원한 위안부가 군대에 필요했다던 망언이다. 그는 이달초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해 논란을 낳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인식을 지지한다고까지 말했다.

■여성 인권-명예 실추에 '눈깜짝 않는' 여성가족부?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공직자의 성추행 혐의나 위안부 망언같은 사안과 관련해 어떤 논평이나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나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처럼 공식입장 표명을 꺼리는 모습은 '업무방기'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여성가족부와 이들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전부터 여성가족부는 여성발전기본법 제17조의2와 시행령 제27조의2를 근거로 성희롱예방사업 예산을 지원받았다. 그 내용은 공공기관 성희롱 방지조치 점검과 관리, 성희롱 예방교육자료 개발과 배포 등을 수행하는 것으로 윤 전 대변인같은 공직자의 성추행 혐의 시비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또 여성가족부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등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을 근거로 정부예산을 들여 국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지원한다. 월생활안정지원금, 별도 간병비, 정서적 안정과 건강치료비 등 치료사업 명목의 비용 지원, 명예회복과 역사관 정립을 위한 e역사관도 운영한다.

올해 여성가족부는 지난해보다 22.7% 늘어난 3천25억7천만원 예산을 받았다. 그 증액 취지에 '여성과 아동 성폭력 피해자'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확대'가 포함돼 있다. 해당 활동에 부처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특히 위안부 망언의 경우 미국 국무부가 충격적이며 불쾌하다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강제로 여성을 징집해 위안부로 데려간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심각한 범죄라며 피해자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발언하는 등 주변국이 직접 불쾌감을 드러냈다.

신조 총리마저 우리(일본 정부)는 (오사카 시장과) 입장이 다르다는 걸 말씀드린다며 수습에 나선 점에 비춰볼 때, 당사자인 우리나라 관련부처가 침묵으로 일관한 모습은 고이 넘기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 권익정책과 관계자는 우선 윤 전 대변인 관련된 질의에 처신의 본을 보여야할 공직자로서 성추행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범죄행위로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며 그간 사회인식이 미흡한 성희롱에 대한 예방교육 사업만 해왔는데 올해 늘어난 예산으로 폭력과 추행 관련해서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외교적인 사안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단일해야 한다는 게 공식방침이고 일본 쪽의 대외 발언에 대해서는 외교부가 그때그때 대응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위안부 망언에도 지난 15일 외교부가 대변인 성명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내용을 이루는 자구에 여성가족부의 입장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보다 맹목적 '청소년보호'…부처간 시비도 불사

거꾸로 여성가족부가 굳이 개별 사안에 공식입장을 밝혀야 하느냔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재작년이나 지난해 대단히 적극적이었다고 평가되는 여성가족부의 '셧다운제' 관련 행보를 되짚어볼 때 일관성을 갖춘 정부부처의 처신이라는 관점에서 다수 국민들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보호를 명목으로 타 정부부처의 주관사업이나 방침에 맞지 않는 정책 추진에 눈에 띄게 적극적이었다. 이는 부처 주무영역인 여성인권을 위협하는 성추행 사건이나 위안부 관련해 동맹국들과의 외교적 마찰까지 야기된 상황을 거의 방치하다시피해온 것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여성가족부는 몇년간 '인터넷중독'의 폐해를 근거로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온라인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도입을 추진해왔다. 도입후 헌법소원으로 이를 반대한 게임업계 움직임에도 헌법재판소에 관련 의견서 제출 등으로 발빠르게 대응했다.

당시 셧다운제 근거가 되는 청소년보호법은 게임소비층의 한 축을 이루는 청소년들의 야간 게임이용시간을 강제로 막는단 점에서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과 정면 배치됐다. 또 추가발의됐던 청보법 개정안에서 청소년회원가입시 요구하는 친권자동의 조항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법과도 마찰을 빚었다.

게임 업계와 이용자들이 느낀 여성가족부의 온라인 게임에 대한 몰이해와 강경입장은 '일방통행' 내지 '불통'으로 평가됐다.

이에 더해 지난주 여성가족부가 '제9회 대한민국청소년박람회'를 기념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됐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PC와 모바일 기기에서 쓰일 '2013 청소년서체'를 만들었다며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KYWA) 사이트를 통해 무료 배포한다고 알렸다. 그 모습이 정부부처가 소관과 직접 연관되는 국가적 사안에는 무심한 반면 중량감이 덜한 사업 홍보에는 쓸데 없이 공을 들였다는 부정 여론에 몰렸다.

사실 예산을 받아 글꼴을 제작한 곳은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KYWA다. KYWA가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이지만 그 활동예산은 대부분 기획재정부가 편성한다. 2천만원 수준인 글꼴 제작 비용도 최근 이슈와 관련되는 여성가족부의 성희롱예방 또는 위안부피해자 지원사업 예산 수십억원과 맞비교하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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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 배포는 앞서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캠페인이나 이미지 홍보 차원에서 추진했던 사업이다. 23일부터 여성가족부와 인천광역시에서 함께 주관하는 제9회 대한민국청소년박람회가 서체 공개의 모태가 되는 사업이다. KYWA 설명에 따르면 행사는 청소년의 창의적 역량을 개발하고 체험활동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는 자리로 기획됐다.

건강함이나 밝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던 산하기관의 글꼴배포사업이 여성가족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불필요한 비난에 시달리게 된 셈이다. 결국 KYWA만 억울한 입장이 됐다. 그 내부에선 좋은 취지로 담당 공무원들을 설득해 추진한 글꼴배포사업이 상급기관에 대한 부정 여론과 맞물려 뜻밖의 된서리를 맞자 향후 KYWA 현장 실무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