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개발자도 '갑을'...표준계약서 생기나

일반입력 :2013/05/09 08:18    수정: 2013/05/10 09:35

소프트웨어(SW) 개발자 커뮤니티 OKJSP에서 '프리랜서들을 위한 표준계약서' 만들기 움직임이 한창이다. 하도급계약이 잦은 SW업체들간의 공정거래와 별개로, 제도권이 외면했던 사업자와 SW개발자간의 계약관계를 정상화하자는 취지다.

노상범 OKJSP 공동대표는 지난달말 공지사항을 통해 (회원들이)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작성했거나 받아본 계약서를 보내오면 이를 취합, 법무사와 노무사 의견을 반영해 'OKJSP 추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국내 SW개발자들에 대한 대우는 전반적으로 박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계약단계에서부터 충분한 보수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나 일을 마치면서 '뒤끝'이 안좋은 사례가 적잖아서다.

IT서비스 업계에 종사하는 프리랜서나 기업체 소속 개발자들은 대부분 실제 능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임금과 노동가치를 차등 적용받는 현실이 불만이다. SW기술자 노임단가제와 등급제는 진작 철폐됐지만 이를 기반으로 정보화사업에 동원할 인력 규모와 쓸 비용을 산정하는 관행은 고스란히 남았다.

고용주들이 개발자를 무리한 일정으로 내몰아 결과물의 품질이 떨어지게 만들면서도 그에 대한 배상 책임을 개발자들에게 덮어 씌우는 경우도 흔하다. 계약 당사자인 프리랜서들에겐 확연히 불리한 내용이 버젓이 계약서에 들어 있기도 하다.

■프리랜서 환영-과연 '갑'이 받아들일까

이에 프리랜서 활동 경험이 있는 회원들 반응은 한 마디로 '표준계약서 만들기 강추'다. 계약 내용에 관행적으로 쓰여왔지만 절대 없어져야 할 문구라든지 연장시 표준 조건 등에 대해 의견이 제안되고 있다. '갑'과 '을', 어느 한 쪽에 유리하지 않은 절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프리랜서 SW개발자들이 IT서비스 프로젝트 수행현장에서 받아온 열악한 대우를 개선하려면 이들의 불리한 입장을 보완해줄 계약서 도입이 중시된다. 궁극적으로 '갑'과 '을'이 서로 인정할 수 있고 현행 법규에 들어맞는 계약서를 만들자는 게 표준계약서 만들기의 취지라고 OKJSP 쪽은 밝혔다.

8일 노 공동대표는 계약서를 새로 만들더라도 물론 (협상력이 큰) 갑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면서도 표준계약서가 인력파견 전문업체들에게 수용되지 않더라도 이를 제외한 IT서비스 및 솔루션업체와의 계약에선 활용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이어 없던 제도나 법을 만들어 관행을 규제해 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법대로만 하자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들이 꼽는 '독소조항' 사례는 시간외수당은 커녕 초과기간에 대한 임금 정산을 불가능하게 한다든지, 결과물에 대한 배상 책임을 기본적으로 SW개발자가 지게 한다든지, 노동대가는 시간단위(맨먼스)로 산정하면서 '검수후 하자보증기간 몇개월' 같은 프로젝트단위 책임을 묻는 등 다양하다.

■왜 커뮤니티가 나섰나

이쯤 되면 표준계약서 도입은 공정거래위원회같은 공공성을 갖춘 조직에서 진행해야 할 사안에 가까워 보인다. 적어도 관련 노동조합이나 산업협회가 움직이는 것이 OKJSP같은 커뮤니티에서 뛰는 것보다는 더 자연스럽다.

실제로 공정위가 지난해말 SW업계 불공정관행 근절을 위한 'SW표준하도급계약서' 양식을 개정, 배포한 바 있다. 다만 이는 이름대로 '하도급거래'에 한해 적용된다. 즉 그 참여사업자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그 사업자가 고용하는 개발인력의 업무여건과 처우 및 보상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앞서 IT노조에서도 업계에 SW개발자를 위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지 오래다. 관련 계획을 잡아왔지만 그간 충분히 실행에 옮길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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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훈 IT노조 사무국장은 사업계획에 업계 표준계약서를 만들자는 구상은 이미 해왔으나 집행력이 부족해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OKJSP의 활동에 대해서는 뜻을 함께하는 업계 종사자들이 얼마나 많이 관심을 갖고 동참하느냐에 따라 실효성이 좌우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OKJSP는 현재 노 공동대표의 메일을 통해 프리랜서 경험이 있는 회원들의 실제 계약서를 수집중이다. 표준계약서 작성과 별개로, 가능한 사례를 모아서 이후 법무사 등과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 검토한 뒤 변호사 자문을 받아 가능하면 신고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