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성 쌍둥이’ 네이버-카카오

일반입력 :2013/02/27 08:41    수정: 2013/02/27 22:37

전하나 기자

우리나라에서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천만명을 넘어선 게 2002년이다. NHN은 같은 해 ‘지식인’ 서비스를 내세워 포털 기업 1위 자리로 올라섰다. 이후 최근 10년 동안 승자로 군림했다. 급격한 위기는 지난해부터 찾아왔다. 모바일로의 흐름을 기민하게 읽지 못한 탓이다. 그 사이 새로운 승자가 등장했다. ‘카카오톡’으로 포털 1위 사업자 NHN을 위협하고 있는 카카오다.

NHN과 카카오, 두 기업 중 더 우위에 있는 강자를 가리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최종 승부를 피할 수는 없다. 격전지는 모바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시장을 두고 첨예한 경쟁 관계에 놓인 이들 회사가 서로 다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닮은 행보를 보인다는 점이다. 몸집을 키우는 방식은 물론 시장 내에서 지배적 사업자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과정까지 꼭 ‘이란성 쌍둥이’ 같은 모습이다.

■이해진-김범수 양대 수장부터 이어진 인연

두 회사가 함께 거론되는 데에는 이해진 NHN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라는 두 수장의 인연이 한몫한다. 이 의장과 김 의장은 국내 최대 인터넷포털과 게임포털인 네이버와 한게임을 만든 주역이다. 서울대 동문인 두 사람은 삼성SD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삼성SDS 사내벤처 창업열풍에 나란히 뛰어들었다.

그렇게 1998년 ‘한게임커뮤니케이션즈’가, 1999년에 ‘네이버컴’이 설립됐고 2001년 한게임과 네이버컴이 합병되면서 새로운 인터넷 역사가 시작됐다.

김 의장이 2007년 NHN을 떠나 차린 카카오에 NHN 출신 인재가 많다는 점은 두 회사의 닮은꼴 조직문화에 기여한다. NHN USA 법인장으로 일했던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는 비롯해 홍은택 콘텐츠사업 총괄 부사장, 이확영 기술담당이사, 조항수 디자인센터장 등 주요 임원이 모두 NHN 출신이다.

NHN과 카카오 모두 김정호 전 한게임 대표가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고용기업 ‘제이앤조이’에 인쇄업무 용역을 맡기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NHN에 뿌리를 둔 두 회사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적 유대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의 성장에 비추는 네이버의 그림자

현재 포털 네이버의 가입자는 약 3천700만명. 일 방문자수는 1천800만명 가량이다. 카카오톡 가입자와 일방문자수는 각각 8천만명과 2천800만명. 단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이미 네이버를 넘어선 수준이다. 카카오톡의 자매품인 카카오스토리도 가입자가 3천500만명에 육박하며 네이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포털과는 지향점이 다르다고 하지만 카카오가 NHN이 성장해 온 것과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지속적인 사용자 유입 요인을 필요로 했던 네이버와 막대한 트래픽이 요구됐던 한게임을 결합해 1위 사업자로 도약한 NHN처럼, 카카오도 사용자층을 모은 모바일메신저에 게임 콘텐츠를 얹으면서 플랫폼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애니팡’ 등의 성공 사례를 도출하며 플랫폼 파워를 입증한 카카오는 현재 게임 외에도 광고, 전자상거래, 쇼핑 등으로 서비스 분야를 계속해서 확장해가고 있다. NHN이 검색엔진으로 시작해 뉴스, 블로그, 메일, 쇼핑 등의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일각에서 카카오를 모바일 포털로 정의하는 이유다.

카카오가 궁극적으로는 검색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찬석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가 음악, 쇼핑, 콘텐츠 장터 등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좋든 싫든 장기적으로는 검색 사업까지 손을 댈 것”이라고 전망했다.

■NHN의 체질 개선 계기는 카카오톡?

국내 인터넷 시장을 10년 이상 주도한 NHN은 이달 초 몸집을 쪼개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네이버와 한게임을 분리하고 모바일 사업을 담당할 신규 법인 ‘캠프모바일’과 모바일 메신저 라인 사업을 전담 지원할 ‘라인플러스’를 설립하는 것이 골자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라인이라는 개별 서비스 사업이 하나의 법인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라인은 국내선 여전히 카카오톡의 인기에 크게 못 미치지만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등지에선 우리나라 카카오톡 못잖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지난달 전세계 가입자 1억명을 돌파했다.

업계는 라인이 카카오라는 강력한 적수를 만나 위기에 직면한 NHN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줬다고 평가한다. 또 앞으로의 NHN 미래에 있어서도 라인이 가장 핵심적인 축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업계 관계자는 “라인플러스 대표로 선임된 신중호 NHN재팬 이사는 이해진 의장과 이준호 최고운영임원(COO)이라는 1세대에 이어 NHN 검색 2세대를 이끈 인물”이라며 “검색 핵심 인력을 라인 사업의 수장으로 점찍은 것은 궁극적으로 라인을 통해 모바일 검색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NHN의 의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NHN에게 카카오와의 전면 승부는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다만 ‘벤처업체에 협력 혹은 인수라는 카드를 내미는 카카오와 달리 NHN은 벤처들의 아이디어를 베껴 무료로 뿌린다’는 세간의 따가운 시선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한 유틸리티 앱 개발사 대표는 “NHN이 가계부, 메모, 알람 등 분화된 앱을 대거 쏟아내고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모바일 트래픽을 끌어 모으는 전략을 취해 허탈하다”며 “플랫폼 생태계에선 다양한 콘텐츠제공자(CP)와의 협력이 필수인데 모바일서도 PC처럼 닫힌 행태를 고집하다가는 외면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톡 천하의 이면

이런 이유로 국내선 카카오톡의 경쟁력이 한 수 위라는 의견도 있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 박사는 “NHN과 카카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모바일 플랫폼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라인이 카카오톡의 성공 모델을 쫓아가는 모습”이라며 “특히 카카오는 외부의 다양한 개발사들과 공존이 가능하다는 그림을 제시했기 때문에 플랫폼으로의 진화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네이버가 그랬듯 모바일이 ‘카카오톡 천하’가 되는 일에는 역시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과거 이동통신사의 가입자풀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CP들은 스마트폰 보급 초창기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생태계에서 콘텐츠를 주무기로 경쟁 우위에 설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다시금 포섭되면서 이전에 추구할 수 있었던 수익의 최대치를 포기하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네이버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수수료를 챙기고 다른 업체들의 성장을 도태시켜 왔다’는 비판을 카카오가 이어 받지 말라는 법은 없단 얘기다.

실제 카카오가 게임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이전 시장에는 컴투스(컴투스 허브), 게임빌(게임빌 라이브), 네오위즈인터넷(피망플러스), 네시삼십삼분(포유) 등 차세대 게임플랫폼을 목표로 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존재했다. 현재 이들 업체는 대부분 자사 플랫폼을 강화하는 대신 카카오톡에 게임을 공급하는 식으로 전략을 우회 수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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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바일게임 개발사 대표는 “카카오톡은 누적 다운로드와 사용자풀이 미미한 게임업체가 초기 시장에 진입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돼 주지만 결국 추가 수익 배분 등으로 마진 하락의 어려움을 낳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카카오 플랫폼이 CP들에게 가져다 주는 기회 이면에 있는 종속에 대한 우려다.

이 때문에 국내 플랫폼 생태계 방향키를 쥔 카카오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자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헤게모니를 갖게 되기 때문에 갑을관계의 논리를 쥐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면서 “카카오가 플랫폼이 비대해질수록 의도치 않게 콘텐츠 가두리 양식장이 되는 것을 해결하는 게 우선 과제”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