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재설계, ERP 보다 먼저 할 5가지 이유

일반입력 :2013/01/22 08:43    수정: 2013/01/22 09:03

최근 전사적자원관리(ERP)업체들은 자사 소프트웨어(SW)가 업무프로세스를 최적화하고 일처리를 효율적으로 해주는 구조와 기반을 갖췄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 ERP시스템에 산업별 최적 시나리오를 녹여, 도입만 하면 곧바로 업무프로세스가 확 개선될 것이란 선전도 있다. 즉 혁신을 위해 업무프로세스재설계(BPR)를 걱정하지 말고 ERP 시스템을 도입하면 될거란 뉘앙스다.

한 컨설팅 업체는 이같은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ERP을 쓰려는 조직들은 시스템 업그레이드나 구축 이전에 반드시 BPR을 수행해야 한다는 반론을 편 것이다. 물론 BPR은 컨설팅업체에게 주요 사업기회인 만큼 무조건 수용하긴 어려울 수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환경에서 당연시된 ERP 기반의 조직운영과 업무환경 전산화에 참고해볼 만한 지적이다.

파노라마컨설팅의 에릭 킴벌링은 BPR없이 ERP로 혁신이 가능할것이란 주장은 매우 비현실적인데다 흠결이 많은 접근방법이라며 실제로는 ERP 사용자뿐아니라 그 구축을 수행할 시스템통합(SI) 사업자와 부가가치재판매업체(VAR) 입장에서도 BPR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고정보책임자(CIO)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BPR의 구성요소인 효과적인 업무프로세스관리(BPM) 도구와 '잘 설계된 업무프로세스'는 ERP 구축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 요인으로 꼽혔다고 덧붙였다.

물론 SW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업무프로세스를 재설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어떤 SW를 쓸 것인지 선택조차 할 수 없을 경우가 있다. BPR을 ERP 구축보다 선행할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답은 '그래야 하는 이유 5가지'로 설명된다.

ERP보다 BPR을 먼저 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ERP 시스템이 물론 엉망진창이고 일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ERP를 없앤다고 그에 기반해 굴러왔던 조직의 경쟁력이 두드러지진 않을 것이다.

BPR은 SW를 조율하는 작업 없이도 기존 경쟁우위를 살리면서 새로운 ERP를 선택하고 구축하는 일을 돕는다.

■ERP에서 길 잃을 수도

BPR을 선행해야 하는 둘째 이유는 현대적인 ERP시스템이 너무 유연하다는 사실이다.

SAP의 ERP를 예로 들면, 통상적으로 그 시스템에서는 일하는 방식의 시작과 끝을 잇는 '프로세스 흐름'을 재구성하기 위해 1만개 항목을 설정한다. 만일 업무프로세스를 개념과 문서로 정돈하지 않고 이를 시작하면 수천가지 설정은 현업과 무관한 SW기술자들에게 내맡겨진다. 서비스형SW와 클라우드ERP도 점점 더 유연해져가는 추세라 그걸 도입해도 같은 문제를 겪을 확률이 많아질 것이다.

셋째 이유는, ERP업체들이 흔히 주장하는 '베스트프랙티스(우수도입사례)'가 유니콘이나 산타클로스같은 미신이란 점이다. 즉 '사실이면 좋겠지만 언젠가 허구란 걸 깨닿는 대상'이다.

타 조직의 도입사례는 특정 ERP 업체의 SW가 당신의 조직에서보다 잘 돌아가는 사례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다른 산업개체를 흉내내는 대신 스스로 정의한 우수사례, 효율성, 경쟁우위를 활용하는 도구 '식스시그마'를 활용하란 지적이다. 식스시그마 활동에는 BPR방법론이 적용된 경우가 있다.

또한 ERP보다 BPR을 선행해야 업무프로세스 개선과 조직의 이익을 더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 새 ERP시스템을 고려하는 것은 자동화와 프로세스변경에만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성과는 ERP SW를 선택하는 것과 별개란 얘기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구매조달비용을 더 긴밀하게 통제하기 위해 주문승인 업무절차를 조율하고 싶다면 이를 자동화시킨 대다수 ERP시스템과 달리 이메일 검토 과정을 포함시킬 수 있다.

■바퀴를 새로 만들 필요도 있다

마지막 다섯째 이유는 BPR 없이 ERP를 구축시 기존 방식에 얽매여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개선된 업무프로세스정의에 실패한 회사들은 ERP 구축시 기존의 망가진 프로세스를 단순히 자동화하려는 쪽에 치중한다. 비싼 기술컨설턴트의 자문을 통해, 프로세스를 결정하거나 동의하는 매 순간마다 시간과 비용을 쓰기 싫어하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프로세스 정의에 시간을 들인 회사는 궁극적으로 BPR의 결과에 맞는 SW 설정 최적화에 집중해 IT자원에 투입할 기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충고는 '소몰이길 포장하기(paving the cowpaths)'라는 함정을 피하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소몰이길 포장하기란, 기존에 널리 쓰인 방식에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바꿔선 안 된다는 관용구다.

BPR은 기존 방식의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정의에 따라 ERP 구축에 앞서 고착된 관행을 깨뜨릴 단초를 맡는다.

킴벌링은 BPR을 'ERP 구축의 성배'라 치켜세웠다. 모두가 원하지만 이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는 측면에서다.

그는 조직들이 프로세스를 잘 정의해 ERP 구축에 반영하는 방법을 이해한다면 프로젝트 담당팀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또한 구축 기간을 줄이고 비용을 낮추면서 더 많은 직원들에게 그 결실을 누리게 할 방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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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부 금융권은 새해도 BPR을 겸한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계획했고 정부는 전자정부구축사업 일환으로 업무혁신을 꾀하는 BPR 사업을 발주했다. 일례로 행정안전부가 행정정보공동이용센터 주관으로 오는 3월중순 마무리될 빅데이터 공통기반 마련 및 활용을 위한 BPR과 정보화전략계획(ISP)을 발주해 사회적, 행정적 비용과 정책수립 소요기간을 줄이고 일자리 및 탄소저감 효과를 늘릴 뜻을 밝혔다. 사회복지통합망, 전자민원창구, 미환급금정보 통합제공서비스 등 범부처의 업무환경이 적잖은 변화를 예고한 가운데 실사용자인 공무원의 업무효율과 서비스 대상인 국민들의 편익 증진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 대기업과 정부 등 공공조직들이 ERP 그리고 BPM과 연계되는 BPR 중요성에 특별히 주목되진 않는 분위기다. 다만 모바일 등장과 폭증 데이터로 인한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ERP구축에 앞서 BPR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