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개발자의 별난 게임 이야기

일반입력 :2012/12/09 10:36    수정: 2012/12/09 12:12

“게임 깎는 노인, 저주받은 게임...”

지난달 게임빌을 통해 스마트폰 정통 격투 게임 ‘혈십자’를 선보인 별바람스튜디오의 김광삼 대표가 자신 스스로와 첫 모바일 게임을 두고 꺼낸 말이다.

예명 ‘별바람’으로 더욱 알려진 김광삼 대표는 게임 업계의 기인으로 통한다. 이미 게임 개발자 사이에선 유명 인물이고, 그를 기억하는 해외 개발자는 물론 그의 게임만을 기다리는 마니아 층도 적지 않다.

약력만 보더라도 의사를 지망하는 의학도에서 시작, 유명 1인 개발자, 대학 게임 교수,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등 화려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선보인 스마트폰 게임 ‘혈십자’를 통해 다시 화제에 올랐다.

김광삼 대표가 ‘혈십자’를 두고 저주받은 게임이라고 칭한 이유는 이 게임의 기획에서 출시까지 10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또 게임에 사용된 소재도 금기시 되는 세계 비밀조직, 그림자 정부, 밀교단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김 대표는 “게임 콘셉트부터 시작하면 17년이 걸렸다”며 “기획 당시 게임 기술력이 모자라 데이터 구조체 등이 어려워 실제 설계가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혈십자의 사연은 이렇다. 지난 1991년 ‘호랑이의 분노’를 통해 처음 게임 개발자로 데뷔한 그는 이 게임의 3번째 시리즈로 혈십자를 염두했다고 한다. 그 뒤 김 대표는 꾸준히 게임 콘셉트와 스토리를 갖추던 중 외국 게임 개발자를 겨냥, 국내서도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게임 출시까지 난항이 많았다. 휴대용 게임기를 염두에 두고 개발을 시작하면서 온라인까지 멀티 플랫폼을 노렸으나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려던 회사가 도산하고 말았다. 그 당시 2004년이다.

이후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준비하다가 덜컥 게임을 전공으로 대학 강단에 서게 됐다. 강의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도 좌절됐다. 또 국내 휴대폰 제조사가 게임 전용 폰을 만들려고 할 때 다시 게임 출시 논의가 진행됐으나, 그 회사가 게임폰 사업을 포기했다고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6년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을 맡은 이후로는 자신의 게임 개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과 태블릿 게임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모바일 버전 개발 계획만 세웠다.

“유튜브에 게임 영상을 올려뒀습니다. 본래 자체적으로 서비스하려고 했는데 게임빌 소싱팀에서 이 영상을 보고 연락이 와서 게임 출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현재 버전의 혈십자는 지난해 10월부터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 이상을 기다린 게임이 서비스되기까지의 사연도 기구하지만 게임 내용도 유별나다. 캐주얼 게임과 소셜네트워크게임(SNG)이 주류인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혈십자’는 일단 스토리텔링이 충분히 가미된 격투 액션 게임으로 요약된다. 천사의 혈통을 잇기 위한 혈십자계의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아수라’, ‘유저 대전’ 등 총 8개의 다양한 게임 모드를 지원한다. 특히 8명의 캐릭터가 선보이는 격투 기술이 1천200개에 이른다. 격투 기술을 A4용지로 출력하면 열장이 넘는다.

다양한 액션 기술도 눈길을 끌지만 게임 내 스토리는 일반 게임 이용자들이 놀랄 정도다. 이를 두고 김광삼 대표는 “개발자의 아이덴티티”라며 “스토리텔링을 중요시 하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전작 ‘그녀의 기사단’도 30만줄에 이르는 대사를 포함한다.

‘혈십자’ 내에는 단순히 대사만 많은 것이 아니다. 각 상황이 스토리로 이어지면서 앞의 조건에 따라 게임의 결말이 달라진다. 김 대표에 따르면, 게임 결말의 반전을 위한 실마리가 깔려있고 스토리 진행 가운데 선택항에 따라 해피엔딩으로 이를 수도 있고 새드엔딩으로 끝나기도 한다.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후배 개발자들이 한국적인 소재를 쓸 수 없다는 얘기를 하길래 이를 가쳐주고 싶었어요. 현대 판타지에 한국 전통 소재를 합쳤습니다”

무작정 스토리가 길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몇 년씩 걸린 스토리 구상에 더불어 올드 개발자의 자존심까지 담았다는 설명이다.

김광삼 대표는 그럼에도 게임 자체가 난이도가 높고 마니아 층을 겨냥했던 게임인 터라 대중적인 인기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저 별바람이란 개발자를 기억하는 마니아들과 자기를 알아주던 개발자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괄목할 성과가 보인다. 게임빌 측은 한국 외에 중국, 태국, 일본, 미국 등 해외 각국에서 호응이 높고 다운로드 수는 30만에 근접했다고 한다. 서비스 한 달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성을 고려하면 주목할 수치다.

“게임빌 소싱팀에서 알아봐준 것에 재미있게 생각합니다. 퍼블리싱 업체가 먼저 반응했다는 자체가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니까요. 개발자 입장에선 당연히 많은 사람이 즐겨주는 것이 중요하죠.”

유별난 개발자의 별난 게임이 대중을 향하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별난 이야기는 또 있다. 바로 게임 개발에 스스로 엔진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엔진 자체를 특허 출원하기도 했다. 이 엔진은 또 향후 무료로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혈십자에 딱 맞는 게임 엔진을 찾다보니 메모리 효율이 안 나오더라구요. 오래전 게임을 만들 때 트루컬러가 아닌 8비트 256 컬러를 지금 사용했어요. 몇가지 알고리즘을 통해 복잡한 장면도 간편하게 구현했습니다.”

마니아 게임에서 대중의 게임으로 다시 선 김광삼 대표는 새로운 목표를 드러냈다.

“우선은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욱 많이 즐겨줬으면 좋겠어요. 또 게임 내에 있는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도 충분히 좋아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의 중심인 격투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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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지금의 10대와 마흔을 넘어선 저와는 성향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노땅 개발자가 해야되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 우리 세대가 즐길 게임을 만들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30~40대 남성들이 이 게임을 찾아주길 바랍니다.“

게임 깎는 노인이 저주받은 게임을 두고 한 마지막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