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와 하드웨어, '제로섬 게임' 시작

일반입력 :2012/09/25 08:22    수정: 2012/09/25 09:30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퍼블릭 클라우드가 IT업계의 태풍으로 부상하던 무렵, 서버업계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면 서버, 스토리지 등 하드웨어 사업이 위기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퍼블릭 클라우드가 IT업체의 하드웨어 사업을 갉아먹는다는 예상은 현재까지 맞아떨어졌다. IBM과 HP는 자체 클라우드 사업을 내놓은 시점에 즈음해 하드웨어 매출 감소를 보였다.

오라클은 최근 실적발표를 통해 사상 최저치의 하드웨어 매출 성적표를 내보였다. 오라클은 가장 극명하게 클라우드와 하드웨어 사업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가설을 증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데이터센터 하드웨어 사업을 벌여온 IBM, HP, 델, 오라클 등은 프라이빗 클라우드로 열풍을 이동시키려 마케팅을 펼쳤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클라우드 사업자, 호스팅업체 등 서비스 프로바이더(SP)에게 하드웨어를 판매해 매출을 보전하려 했던 시도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듯하다. 결국 전통적인 서버업체들은 지난해부터 자체적인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오라클, ‘클라우드냐, 하드웨어냐’ 선택의 기로에

오라클은 최근 회계연도 2013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역대 최악의 하드웨어 사업 성적표를 공개했다. 2년의 시간동안 오라클의 하드웨어 사업은 추락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다.

오라클은 지난 3개월동안 하드웨어 제품에서 7억7천9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대비 24% 줄어든 것이며, 6분기 연속 매출 하락이자 역대 최저 매출이다. 10억달러 대였던 이 회사의 하드웨어 사업은 어느새 7억달러 대로 주저앉았다.

마크 허드 오라클 공동사장은 이날 “엔지니어드 시스템과 엑사 제품군이 100%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4분기면 하드웨어 전체 사업이 성장할 것으로 본다”라며 “지난 18개월 동안 내놓은 제품들은 오라클이 하드웨어 사업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엑사데이터, 엑사로직, 엑사리틱스, T4, ZFS 등 신제품들은 성장을 이끌고 있고 점유율을 얻었다”라며 “이런 트렌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크 허드 사장의 설명과 달리 하드웨어 실적표에 나타나는 숫자는 정반대다. 오라클은 이번 분기에 주당 59센트의 순익을 냈지만, 매출은 81억8천만달러를 기록해 전년동기보다 줄어들었다. 매출 하락에 대해 오라클은 환율에 원인을 돌렸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매출이 부진했던 게 가장 컸다.

JMP 시큐리티의 애널리스트 패트릭 월러빈스는 6분기 동안 오라클 하드웨어 매출의 감소율을 막대그래프로 그렸다. 6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인 오라클의 하드웨어 사업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패트릭 월러빈스는 “실망스러운 오라클 실적의 가장 큰 근원은 하드웨어 제품 사업”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오라클이 2010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74억달러에 인수한 후 오라클의 첫번째 하드웨어 시스템 분기 매출은 12억3천만달러였지만 현재 7억7천900만달러로, 이는 전체에서 37%나 하락한 것”이라며 “오라클이 기존 썬의 코모디티 하드웨어 부분을 강조하지만, 우리의 실사결과는 엑사 사업 역시 내부 예상을 계속 놓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오라클은 퍼블릭 클라우드로 사업 초점을 이동하고 있다. 오라클은 작년 10월 ‘오라클 오픈월드 2011’에서 개발 플랫폼(PaaS)과 애플리케이션(SaaS)으로 구성된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개했다.

올해엔 인프라 서비스(IaaS)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오라클 클라우드에 IaaS를 추가하는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며 “CRM, ERP, HCM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베이스, 자바,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서비스에 IaaS가 오라클 클라우드에서 사용 가능해진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IaaS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던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또한 오라클이 클라우드로 초점을 이동한다는 사실은 이번 분기부터 나온 회사의 실적보고서로 드러난다. 이번 분기부터 오라클은 실적보고서에 소프트웨어 제품군별 매출을 표시하지 않고, ‘클라우드 서브스크립션’이란 큰 항목을 선보였다.

미국 지디넷 블로거인 래리 디그넌은 오라클이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클라우드란 단어를 34번이나 말했다라며 클라우드로 오라클의 초점이 이동하는 것을 지적했다.

하드웨어사업과 클라우드 사업은 서로를 잡아먹는 영역이다. 하드웨어 매출이 하락하는 동안 퍼블릭 클라우드를 내놓은 것이다. 오라클의 IaaS가 하드웨어 사업을 얼마나 함정에 빠뜨릴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두 사업이 완벽히 제로섬은 아니지만, 오라클 고객이 클라우드로 이동할 때 엑사 제품군 하드웨어를 구매할 확률은 낮아보인다.

월가는 오라클의 첫분기 하드웨어 매출이 8억9천900만달러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결과는 7억7천900만달러다. 하드웨어 사업 매출 감소세가 오히려 가속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클라우드 사업 진출과 연관성이 적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월러번스 애널리스트는 “오라클이 클라우드 컴퓨팅에 이르고 강하게 초점을 맞춰야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썬 인수와 엔지니어드 시스템 노력이 사업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고 여긴다”라고 비판했다.

■IBM-HP '클라우드는 하드웨어를 잡아먹는다'

IBM의 최근 1년 실적을 보면, 오라클과 유사한 현상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BM은 지난 6월 마감된 회계연도 2012년 2분기(4~6월) 실적에서 하드웨어사업부인 시스템테크놀로지그룹(STG) 매출이 9% 줄어들었다. STG의 매출 하락세는 3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IBM 회계연도 상으로 2012년 1분기엔 7% 하락한 37억달러였으며, 2011년 4분기엔 8% 하락한 58억달러였다. 이전까지 4% 상승한 45억달러(3분기), 17% 상승한 47억달러(2분기), 19% 상승한 40억달러(1분기) 등 상승세가 메인프레임 교체주기를 벗어나면서 급락세로 돌변했다.

2011년 3분기까지 IBM 하드웨어 매출은 메인프레임과 유닉스인 파워시스템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IBM의 메인프레임 매출은 2011년 2분기부터 줄어들었다. 파워시스템 매출은 4분기부터 주춤하기 시작했다. 2011년 4분기 IBM 파워시스템 매출은 전년동기보다 6% 늘었지만, 2012년 들어 1분기엔 0% 성장했고, 2분기엔 7% 감소했다.

x86서버인 시스템x 사업역시 2011년 3분기부터 1% 상승하는데 그치더니, 4분기엔 2% 감소했다. 2012년 1분기엔 0% 성장했으며, 2분기엔 8% 줄었다. 스토리지는 줄곧 마이너스다.

재밌는 사실은 IBM이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발표한 4월 이후 하드웨어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IBM은 작년 4월 ‘스마터 클라우드’를 발표했고 올해 들어 하이엔드 서비스를 강화한 두번째 버전을 발표했다.

IBM은 퍼블릭 클라우드 사업이 매 분기 20% 씩 성장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자세한 매출 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HP도 IBM과 사정이 다르지 않다. HP 회계연도 2012년 3분기(5~7월) 엔터프라이즈서버스토리지네트워킹(ESSN) 매출은 전년대비 4% 줄어든 51억4천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전인 2분기엔 52억1천100만달러로 전년보다 6% 줄었다. 1분기엔 50억1천800만달러로 10% 줄었다. 2011년 4분기엔 56억5천500달러로 전년보다 4% 줄었다. 마이너스 성장의 행진인 것이다.

세부적으로 유닉스 시스템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여기에 x86서버 매출도 동반 하락했다.

HP의 2012년 3분기 BCS사업(유닉스) 매출은 16% 줄었고, 2분기에 23%, 1분기에 27% 줄어들었다. 2011년 4분기엔 23% 줄었다. ISS 매출(x86)의 경우 2012년 3분기에 3%, 2분기 6%, 1분기 11% 줄었으며, 2011년 4분기에 4% 줄었다.

간간히 스토리지 매출이 1~5% 내외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마이너스 기록을 오가며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HP는 올해 5월 퍼블릭 클라우드의 오픈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계연도상으로 HP의 3분기 시점이다. 현재까지 HP는 어떤 성적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HP 클라우드에 대한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HP의 퍼블릭 클라우드가 뚜렷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IBM과 HP의 하드웨어 실적 하락의 시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 시점과 맞물린다. 이는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IT지출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비슷한 시기 아마존웹서비스 같은 퍼블릭 클라우드는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표를 보여줬다.

IBM이나 HP의 하드웨어를 사던 고객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퍼블릭 클라우드로 이동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빠져나가는 고객을 클라우드로 잡는다?

지난 13일 인텔이 미국에서 열었던 인텔개발자포럼(IDF)에선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다. 인텔의 다이언 브라이언트 부사장은 HP, 델, IBM이 차지하던 서버칩 매출이 75%를 2008년 차지하던 것이, 이제 8개사가 75%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8개사중 한 회사가 일반적인 서버업체가 아니라 내부용으로 서버를 제작하는 회사라면서, 이 회사가 5위권에 들었다고 언급했다. 이는 구글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퀀타, 슈퍼마이크로 등이 언급됐다. 더는 IBM, HP, 델 같은 회사의 서버가 대형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IBM, HP, 오라클은 기존 경쟁자들과 싸우지 않는다. 이들의 경쟁자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야후 같은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이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는 서버업체에게 고객이면서 동시에 경쟁자다.

고객으로서 인터넷 서비스업체의 구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IBM과 HP, 오라클이 퍼블릭 클라우드 영역으로 직접 진출한다는 것은 서비스업체에 빼앗기는 하드웨어 매출을 묶어두려는 시도다. 제품 공급 모델을 박스에서 웹서비스로 바꾸는 것이다. 클라우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SP를 적대하더라도 일반 기업고객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이 회사들의 판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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