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윈도8 '시작단추' 포기한 이유

일반입력 :2012/09/01 20:16    수정: 2012/09/02 14:59

최근 삼성전자는 독일 IFA2012 현장에서 윈도8 기반 태블릿 겸 노트북인 '아티브 스마트PC'를 선보였다. 아티브 스마트PC에 올라간 윈도8 운영체제(OS)는 기존 윈도7용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모두 쓸 수 있다. 이는 그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앞서 마르고닳도록 선보인 인텔 x86 프로세서용 윈도8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삼성이 윈도8기반 신제품을 새로 선보이기 하루전, 업계는 그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회사가 'S런처'라 알려진 프로그램을 탑재해 영영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윈도 데스크톱의 '시작' 단추를 되살렸기 때문이다.

공개된 스크린샷에 따르면 S런처는 데스크톱 모드 바탕화면 밑의 작업표시줄 가운데 바로 위에 2개짜리 단추가 놓인 모습을 보인다. 왼쪽 단추를 누르면 윈도7 '시작 메뉴'를 닮은 창이 화면 가운데 뜬다. 창은 사용자의 문서, 사진, 음악, 컴퓨터, 제어판, 장치 및 프린터, 도움말 및 지원 항목을 열거나 설치된 프로그램 메뉴 모음을 표시하는 등 기존 시작 메뉴와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플랫폼 개발업체 MS가 고심끝에 걷어낸 시작 단추와 메뉴를, 단말 제조사인 삼성은 왜 굳이 되살리려 했을까. 당연히 그게 제품 판매에 유리할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MS가 없앤 시작 단추-메뉴, 삼성이 'S런처'로 살릴 뻔

MS가 올 상반기 시작 단추를 없앤 윈도8 베타 버전을 내놓자 업계 반응은 뜨거웠다. 상당기간 OS의 상징에 가까웠던 기능이기도 했고, 당장 그에 따라 새로운 OS를 쓰기 불편할 것이란 우려가 사용자들 사이에 불거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MS는 일종의 암묵적 합의를 깨고 새 윈도에 기반한 태블릿 단말기도 선보였다. 회사는 연례 사업보고서를 통해 제조사들의 반발을 의식하면서도 애플처럼 자체 생산 단말기의 통제성과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자체 단말기 개발을 계획하겠다고 암시했다.

그 제조 파트너, 특히 노트북 신모델을 출시하려던 삼성은 어떻게든 자사 신제품을 MS 자체 태블릿과 차별화시켜야 했다. 일각에서 윈도8의 약점이라 지적한 시작 단추와 시작 메뉴를 살리는 것도 그 일환으로 고려했을 듯하다.

미리 S런처를 발견한 일부 외신들은 지난 28일 이를 보도하며 삼성 S런처가 윈도8에 시작 메뉴를 되돌려놨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9일 삼성이 아티브 스마트PC를 공식 소개할 때 S런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실수로 빠뜨린 게 아니었다. 미국 지디넷 블로거 에드 보트는 삼성이 '엔지니어링 샘플'에 보였던 S런처를 정식 출시 단말기에 넣지 않을 거라 답했다고 전했다.

S런처가 삼성 아티브 스마트PC에 탑재됐다면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윈도8은 윈도7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긴 하지만 사용자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MS는 스스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만큼 사용자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S런처의 시작 메뉴는 삼성 윈도8 태블릿을 타 제조사 제품과 차별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쓸만하지만…' MS와 관계 때문에 포기?

그렇다면 삼성은 대대적인 신제품 공개 행사를 통해 이를 알릴 절호의 기회를 왜 스스로 날려버린 것일까. 시작 메뉴 기능은 단순한 '시스템 경로 바로가기' 모음에 불과하다. 심각한 기술적 결함이 있었거나 완성도가 떨어져서는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2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우선 스스로 시작 단추를 없앤 MS와의 관계 문제다. S런처가 삼성 윈도8 단말기에 정식 탑재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 미국 지디넷의 PC담당 블로거 션 포트노이는 S런처는 삼성에게 주요 판매 특징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강조하기도 어려웠겠다며 그게 바로 MS의 입지를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MS는 자체 수집한 윈도7 사용자들의 인터페이스 습관 데이터를 근거로 '작업표시줄에 아이콘을 고정시키는 기능'은 널리 쓰이는 반면 시작 단추를 통해 여러 메뉴를 거쳐 들어가는 방식은 잘 쓰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윈도 시작 단추가 사라졌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은 윈도7 사용자일수도, 그 이전에 나온 윈도XP나 비스타 사용자일 수도 있다. 다수가 아니라 일부 목소리 큰 집단일 가능성도 있단 얘기다. 그런데 삼성이 S런처를 만들어 마케팅 요소로 삼아버리면 MS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셈이다.

■애플과 특허분쟁 미리 방지 가능성도

또다른 이유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아이폰을 놓고 애플과 벌이는 특허 전쟁과 관련된다. 삼성이나 MS가 윈도8용 S런처로 애플과 시비할 수 있는 빌미를 예상하고 그만뒀을 가능성이다.

앞서 삼성은 우리나라와 미국 법정에서 회사 갤럭시 스마트폰이 애플의 아이폰 UI와 트레이드 드레스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OS X 독의 겉모습과 작동방식을 닮은 S런처가 정식 출시된 윈도8 태블릿에 올라갔다면 애플이 가만 두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S런처 구동 화면을 잘 보면 아이콘 2개가 화면밑 가운데에 나란히 놓였는데 그 바닥에 입체적으로 묘사된 투명 선반이 보인다. 이 디자인은 애플 맥OS X 사용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독(Dock)'과 굉장히 비슷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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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보도에 따르면 S런처의 겉모습뿐아니라 작동방식도 OS X 독과 거의 같다. 앱이나 파일 아이콘을 끌어다 그 선반 위에 올리면 단축 실행 아이콘으로 '등록'이 되고, 올라간 것을 덜어내면 '해제'가 된다. 선반에 올린 아이콘들은 통상적인 작업표시줄 아이콘보다 큼직해 구별된다. S런처 선반 앞부분이 둥글게 처리됐다는 게, 선반 바닥이 밋밋한 OS X 독과의 몇 안되는 차이점이다.

최초의 '독'은 지난 1989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나가 세운 회사 '넥스트스텝'에서 만든 OS '넥스트(NeXT)'에 처음 등장했다.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해 잡스가 복귀한 뒤 독 기능이 OS X를 대표하는 UI로 자리잡게 됐다. 독의 디자인과 기능 역시 특허 등록이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