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애플-삼성 미공개 재판 기록 보니...

일반입력 :2012/08/29 13:02    수정: 2012/08/29 15:21

봉성창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에서 열린 특허 소송에서 애플에 완패한 원인을 두고 설왕설래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 배심원제도의 문제점부터 삼성 변호인단의 미숙한 대응, 심지어 배심원의 애국심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배심원들의 결정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에서 나온 내부 문서와 이메일 증거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미공개 재판기록 증거와 기존 공개된 증거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상대방 메일 서버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 법원의 명령에 의해 상호 조사과정에서 나온 것들이다.

애플이 제출한 증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배심원들이 직관적으로 알기 쉽다는 점이다. 애플이 배심원들에게 제시한 수십개의 증거 중 3번 증거는 아이폰 출시 전후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모양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9월 출시된 아이폰을 기점으로 이전 삼성전자 휴대폰의 모서리는 둥글지 않았다. 반면 이후 출시된 스마트폰은 점처 모서리가 둥글어 지다가 2010년 6월 출시된 갤럭시S 부터는 완벽한 직사각형과 둥근 모서리를 가진 형태로 바뀐다. 4번 증거인 아이패드 출시 전후의 태블릿 모양의 변화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이다.

이러한 직관적인 초기 이미지 증거는 배심원들에게 삼성전자가 아이폰을 모방했다는 심증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애플은 매킨토시를 만들때부터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디자인을 고집해왔다. 애플은 허리가 잘록한 유리병 모양이 코카콜라 고유의 디자인인 것처럼 이러한 모서리 둥근 직사각형 디자인을 자사 고유 디자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트레이드 드레스 개념이다. 트레이드 드레스는 아주 쉽게 설명하면 제품의 실루엣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적재산권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이 제출한 34번 증거는 2007년 9월 삼성전자 시스템 LSI 사업부에 작성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아직까지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립 AP 비즈니스예측 보고서’라는 이름의 내부 문건이다.

이 문건의 작성 시점은 아이폰이 출시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종합적인 플랫폼 관점에서 당시 주력 품목인 슬림 모뎀 대신 원칩 AP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고서의 첨부 문서 중 하나인 아이폰 영향 분석 부분이다. 이 보고서는 아이폰과 어떻게든 경쟁해야 한다면서 하드웨어(HW) 부분과 어플리케이션 및 콘텐츠, 연결성(connectivity)를 나눠서 분석했다. 그중 HW 부분은 ‘쉽게 모방(애플은 이를 easy imitation이라고 번역)’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보고서에서 ‘쉽게 모방’이 가능하다고 한 항목에는 터치스크린UI와 디스플레이 해상도, LCD크기, 멀티미디어 성능, 플래스 메모리 용량, 모션, 접근 조도 센서 등이 언급됐다. 이 증거는 배심원들에게 이미 삼성전자가 아이폰 출시부터 모방을 염두에 뒀다는 심증을 확신으로 굳히게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일명 신종균 이메일이라고 불리는 40번 증거에 와서 더욱 확신으로 굳었다. 2010년 2월 중 작성된 이들 이메일은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보낸 것이 아니라 무선디자인팀 UX 디자인 부서 간부급 실무 책임자들이 신 사장과의 간담회 및 회의 결과를 요약해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다뤘다.

이메일에서는 아이폰이 자주 언급되는데 대부분 아이폰과 비교해 우리 UX 및 디자인이 뒤떨어져 있으며 이제 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신 사장의 주문을 다루고 있다. 이메일 보면 신 사장은 그동안 노키아만 주목하느라 예상치 못한 경쟁상대인 애플의 아이폰과 비교했을 때 UX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 디자인의 위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외형에 있어서는 플라스틱한 느낌이 나지 않고 메탈릭한 느낌이 나도록 하고 UX는 나이, 직업, 교육수준에 관계없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하라는 지시가 들어있다.

같은 달 삼성전자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인 42번과 43번 증거는 구글의 시각까지 포함된다. 해당 증거에는 구글이 삼성전자에게 ‘애플과 너무 비슷하니 앞면부터 눈에 띄게 다르게 해달라’ 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43번에는 “S 시리즈의 디자인 유사건은 CMF(색상, 소재, 마감) 등으로 대응토록 하고...”라는 문구와 “구글은 P3에서 아이패드 대비 디자인 차별화를 요구 중”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이는 구글과 삼성전자 모두 애플의 제품과 디자인 유사성을 미리 인식하고 고의적으로 모방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향후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의 최종 판결에서 징벌적 배상금이 추가된다면 바로 이 지점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종균 사장과 구글의 주문은 그 다음달인 3월과 5월에 작성된 보고서에서 실제로 구체화 된다. 그야말로 결정타가 된 셈이다. 44번 증거와 46번 증거는 삼성전자 신제품과 아이폰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며 개선사항과 참고해야할 내용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배심원들이 전문적인 기술 지식이 없더라도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및 기능을 모방했다고 믿기에 충분할 정도로 직관적이고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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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애플 변호인단은 이러한 증거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심원들에게 마치 한편의 영화나 소설을 들려주는 것처럼 물 흐르듯 이야기했다. 특허 전문가들이 아닌 배심원들에 애플측 법률 대리인의 이 같은 변호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반면 삼성전자 변호인단은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준특허에 대한 기술적 이슈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했고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애플이 삼성전자에게 배상금을 한 푼도 안 줄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