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용팔이라고? 진짜 용팔이들은..."

일반입력 :2012/07/18 19:55    수정: 2012/07/18 22:07

남혜현 기자

우리가 용팔이라고요? 진짜 용팔이들은 진작 돈 벌고 떠났죠. 지금 용산서 PC 파는 사람 중 절반은 장사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에요.

재작년 그가 터미널전자상가에 PC 매장을 차릴 때만 해도 용산을 찾는 사람들은 꾸준했다. 장사가 힘들다고는 했지만 데스크톱PC라면 모를까, 노트북 매장은 승산이 있어 보였다.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나빠졌다. 손님들은 와서 왜 인터넷보다 비싸냐고 묻는데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손님은 날이 갈수록 줄었다. 사업 실패 후 용산서 PC장사를 시작하게 된 김정한(가명·39세) 씨의 이야기다.

가게를 빼는 곳도 점점 늘었다. 이 중 일부 매장은 아예 창고로 변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동시에 운영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재고 창고 용도로 사용한다. 한 때 '용팔이'라 불리던 호객행위도 사라진지 오래다. 뭐 찾는거 있으세요? 물어만 보고 가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는 곳은 아이파크몰에 위치한 카메라 매장이 거의 유일하다.

지금도 자본금이 있는 일부 매장들은 돈을 많이 벌죠. 그런데 영세한 상인들, 특히 전대나 전전대로 가게 얻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업이익이 수백만원 수준이에요. 앞으로가 더 걱정이죠. 사람들은 용팔이, 용팔이 하면서 이문을 많이 남긴다고 그러는데 그건 다 옛날 말이에요.

악재는 겹쳤다. 터미널전자상가가 내년 가을께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설 것이란 소식이었다. 터미널전자상가 측은 최근 이주 보상안을 마련, 세입자들과 협상에 나섰지만 일부 상인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관련기사: 용산전자 상가 세입자 상인들 멘붕...왜?]

용산구 한강로 3가에 위치한 터미널전자상가 철거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에 위치한 나진·선인·원효 전자상가 상인들도 복잡한 심경이다. 용산서 오랫동안 PC를 유통했던 A씨는 터미널전자상가는 서부티앤디라는 확실한 주인이 있어 보상 문제를 논의하기 그나마 쉽지만, 이보다 구조가 복잡한 다른 상가들의 경우 철거시 보상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것이란 우려를 털어놨다.

서울시는 지난 1987년 용산에 전자상가 단지를 조성하면서 전자랜드, 나진전자월드, 농협, 선인상가, 원효상가 및 삼안전자를 유통업무시설단지로 지정했다. 이 상가들은 관광터미널로 지정된 터미널전자상가와 달리 개별 시설주들이 임의로 건물을 개축이나 증축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재개발을 하기 위해선 시설주끼리 합의를 마친 후 서울시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주변 전자상가들은 아직까지 재건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다만 상인들 사이에선 재건축이 시작됐을 경우 벌어질 일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다. 기존 건물을 헐고 신축 상가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분양과 재입주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새로 짓는 신축건물에 기존 상인들이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입주비가 현재 전자상가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천정부지로 뛸 것이 분명해서다.

강평구 나진전자월드연합 상우회장은 전자상가가 새 상권으로 재개발 돼 지금과는 달리 화려한 건물이 들어설 경우 보증금이나 임대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영세상인들은 그런 화려한 건물에 비싼 돈 주고 들어가기 어렵다. 이 자리를 떠야 한다. 용산참사 문제도 있었지만, 권리금 문제도 이젠 인정해달라고 하기 힘들다. 다 옛날 소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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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과 연결된 아이파크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철거문제가 아니다. 아이파크몰은 지난 4월 6층에 위치한 서점 규모를 늘렸다. 이에 비례해 PC 등 IT 관련 매장의 비중이 줄었다. 관련업계에서는 백화점 측이 매출이나 이미지를 고려, 중장기적으로 PC나 IT 매장을 줄여가고 있다고 풀이한다.

강 상우회장은 대기업들의 IT 전문 매장이 늘어나고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재래시장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들게 됐다. 유통업은 사양길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며 상인들이 먼저 자기 돈 들여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기전에) 이전하기도 힘들고, 옮긴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집단상가가 다시 형성되려면 1~2년 이상 걸리는데 다시 손님들이 올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그 누구도 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